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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모녀귀> <이프>로 유명한 이종호 작가의 호러 & 판타지 <귀신전>은 7월 21일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출간 되었습니다. 익스트림무비에서는 작가분과 출판사와의 협의를 거쳐 독점 연재로 공개됩니다. 절대로 퍼가시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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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귀사리
제2장 액막이 (1)
제2장 액막이 (2)
제2장 액막이 (3)
제2장 액막이 (4)
제2장 액막이 (5)
제2장 액막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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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액막이


공표는 이런 때 엄마가 제일 많이 생각났다. 옹색한 저녁상도 그렇지만 엄마가 있었다면 아빠와 자신이 지금보다 훨씬 밝게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묵묵히 텔레비전만 보던 동철이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공표는 듣지 않아도 아빠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공부 잘 되냐?”

공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도 잘 다니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고2니까 이젠 정말 열심히 해야 돼. 대학 못 가면 사람 행세도 못하는 세상이야!”

동철은 아들한테 말할 때나 범죄자를 심문할 때나 그 목소리에 별반 차이가 없다. 형사가 되기 전부터 그랬는지 형사라는 직업 탓에 그렇게 변한 건지는 공표도 알지 못했다. 공표가 세상에 나왔을 때 아빠는 이미 경찰이었으니까.

공표가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퍽치기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야?”

동철이 눈을 흘겼다.

“니가 왜 그런 걸 신경 써?”
“그냥…… 퍽치기 잡아야 아빠가 집에도 자주 들어오고 쉴 수도 있을 테니까.”
“세상에 잡아야 할 범죄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깟 퍽치기 하나 잡았다고 형사가 집에서 쉬어? 학생은 밤낮없이 공부하고 형사는 밤낮없이 범인 잡고. 그래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거야. 설마 다 큰 놈이 아빠 보고 싶어서 그런 소리 하는 건 아닐 테고.”

식사를 다 끝내기도 전에 동철의 핸드폰이 울렸다. 통화내용을 듣던 공표는 알아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아입을 옷 챙길게.”

공표는 아빠의 가방에서 입은 옷들을 꺼내 세탁기에 넣고 가방 안을 다시 깨끗한 옷가지와 양말로 채워 넣었다. 초등 3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공표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동철이 옷을 갈아입고는 가방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지난번에 떨어진 성적 이번엔 만회해야지!”
“아빠는 오랜만에 본 아들한테 공부 얘기밖에 할 게 없어?”

순간 그가 무안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곤 말했다.

“그럼 무슨 얘기할까?”
“할 얘기 없으면 사건 얘기라도 해.”
“그건 안 돼!”
“작년에 그 강도사건 때도 내가 단서 찾아줬잖아. 나도 웬만한 탐정 못지않게 추리할 수 있다구!”
“아빠가 얘기했지? 이쪽 일에는 관심 갖지 말라고. 네가 할 일은 공부야. 알았어?”
“요즘은 대학 안 가도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단 말야!”

공표는 무심코 말을 내뱉고 아빠를 보다가 숨을 훅 들이켰다. 그가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철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말하면 혼날 줄 알아!”
“알았어.”

공표가 힘없이 대답했다. 가슴에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처럼 답답해졌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적어도 아빠는 공부와 관련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벽창호다. 무녀였던 엄마의 불행했던 삶과 죽음 때문인지 동철은 공표가 지닌 능력을 알면서도 일부러 인정하지 않고 외면했다. 그는 공표가 귀신을 보는 것도,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철은 공표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초능력자이며 아무도 그의 능력을 막을 수도, 감출 수도 없다는 건 알지 못했다. 동철은 다짐하듯 공표에게 한 번 더 눈도장을 찍고 돌아섰다. 마음 같아서는 그 등에 대고 ‘세상엔 공부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훨씬 많아!’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소리는 공표의 머릿속에서만 울리다 힘없이 사라졌다.

공표가 멀어지는 아빠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소리가 났다.

“니네 아빠 너무 심하지 않냐?”

돌아보니 목에 시커먼 손자국이 선명한, 교복을 입은 혼령이 서 있었다. 공표와 나이가 같은, 아니 같은 나이에 죽은 묘화였다. 묘화는 자신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죽었다는 것 말고는 생전의 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다. 가슴에 붙어 있는 이름표가 아니었으면 ‘묘화’란 이름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나마 성이 있어야 할 부분이 떨어져나가 이름밖에 알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혼령인 셈이었다. 생전의 기억이 없으니 업장을 풀 수가 없어 저승에도 들지 못한 것이다. 묘화는 외롭게 이승을 떠돌다 우연히 공표를 만난 후 찰싹 달라붙었다. 공표는 수정에게 부탁해 그녀의 기억을 찾아주려 했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린 혼령은 잔류사념이 남아 있지 않아 기억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기억이 없으니 묘화가 언제 왜 죽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목에 있는 시커먼 손자국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녀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으리란 짐작만 할 뿐이었다.

“함부로 우리 아빠 욕하지 마!”

공표가 소리를 질렀다.

“치! 자기가 나보다도 더 싫어하면서.”
“니가 뭘 알아? 그리고 갑자기 불쑥불쑥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지?”
“하하! 너도 내가 겁나는 거야?”

묘화가 섬뜩하게 눈을 치켜뜨고 비웃듯 노려보았다.

“겁나는 것하고 놀라는 건 달라! 아무리 겁이 없는 사람이라도 갑자기 눈앞에 귀신이 나타나면 안 놀랄 사람이 어딨어?”
“놀라는 거나 무서워하는 거나…….”
“그게 어떻게 같아? 내가 너 따윌 무서워했으면 지금 옆에 있게 내버려두지도 않았어!”
“오늘은 되게 까칠하네?”
“알면 건들지 마!”
“장 법사님하고 차 작가님 보러 갈 거야?”
“가야지!”
“그러다 너네 아빠 알면?”
“알 리가 없어.”

막 돌아서던 공표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묘화가 물었다.

“왜?”

공표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옆집 2층 창문에서 누가 쳐다보고 있지?”

묘화가 고개를 돌려보곤 말했다.

“그러네. 누가 창문 옆에 숨어서 몰래 보고 있는데? 쟤…… 이번에 니네 반으로 새로 전학 온 애 아냐? 맞아, 이름이 오인하라고 했지? 얼씨구, 쟤 너한테 관심 있나 보다?”

공표가 말없이 집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쾅 닫자 묘화가 문을 그대로 통과해 따라 들어왔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공표가 소리를 빽 질렀다.

“바깥에선 나한테 말 걸지 말라고 했잖아!”
“나한테 왜 화풀이야?”
“너 때문에 사람들이 날 점점 더 이상하게 쳐다본단 말야!”

공표는 더 얘기를 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그게 묘화 잘못이 아니란 걸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귀신은 그런 존재이다. 멀쩡하던 사람도 죽어 귀신이 되면 어린애처럼 단순해지고 변덕이 심해진다. 귀신은 그때그때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쉽게 삐치기도 하고 화도 잘 내며 질투와 눈물도 많은 것이다.

그런데 왜 묘화에게 화를 낸 걸까. 공표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난 인하를 좋아하지 않아. 공표는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까봐 늘 두려웠다. 자신이 평범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하가 전학을 오고부터 막연하던 두려움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혼자서 누구랑 그렇게 말을 하는 거야?’

며칠 전 인하가 했던 말이었다. 귀신이 붙어서 옆에만 있어도 괜히 으스스하고 기분이 나쁘다는 소문이 난 이후 공표는 늘 왕따였다. 그런 공표에게 인하가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공표는 기절할 것 같던 당시의 흥분을 아직도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다.

‘애들이 너한테 귀신 붙었다고 그러던데, 그거 정말이야?’

당시 호기심 가득하던 그녀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빛보다 더 초롱초롱하고 아름다웠다. 아무리 태연하려 해도 뺨이 화끈거렸고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벌렁거렸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난 평범하고 따분한 건 싫어. 만약 네가 정말로 귀신을 볼 수 있고 귀신과 말을 할 수 있다면 솔직하게 나한테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그런 얘기 너무 재미있고 신기할 것 같아. 절대로 소문내지 않을게.’

거기다 인하가 이사 온 집이 하필이면 공표의 바로 옆집이었고 그녀의 방은 2층이어서 1층인 공표의 방과 마당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였다. 혼자서 누구랑 말을 하는 거냐고 물었던 것도 공표가 방에서 묘화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인하는 공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지켜보기 시작했다. 공표로서는 바늘방석이 따로 없었다. 좋은 모습만 보여도 시원찮을 판에 혹시라도 인하가 이상한 광경을 보지 않을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인하가 계속 공표 주변을 맴돌다 보면 묘화가 언제 해코지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주로 공표가 모르게 해코지를 하기 때문에 사전에 막을 수도 없었다. 1학년 때도 공표를 괴롭히던 3학년 짱을 묘화가 골려줘서 혼비백산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그것만 놓고 보면 고마운 일이지만 묘화가 공표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용서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아무리 화를 내도 그때만 울고불고 빌 뿐이었다.

그런 일들이 몇 차례 계속되면서 공표에게 가까이 오는 애들도 없었고 ‘귀신 붙은 애’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것이다. 묘화는 공표가 자신처럼 외롭게 지내길 바랐다. 하긴 묘화마저 없었다면 공표의 학창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외롭고 끔찍했을 것이다. 묘화가 몸의 절반을 집밖으로 내밀고 말했다.

“아직도 그대로 있는데? 진짜 저 기집애가 너 좋아하는 거 아냐? 내가 일기장이라도 훔쳐보고 올까?”
“됐어. 내가 경고했지? 괜히 또 쓸데없는 짓하면 더 이상 내 옆에 못 있도록 쫓아버리겠다고.”

공표의 위협에 묘화의 얼굴이 금방 어두워졌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게 바로 그 말이었기 때문이다.


7

고속도로만 네 시간을 넘게 달린 선일과 수정이 진희라는 여자아이 집에 도착한 건 땅거미가 어스름하게 깔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휴일이라 고속도로에 차가 많이 막힌데다 외진 마을이어서 집을 찾는 데 시간을 많이 허비한 탓이었다. 주소를 확인하며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던 수정이 소리쳤다.

“이 집인 것 같아요!”


다음 이야기
제2장 액막이 (8)



(일러스트: 이자정)

Posted by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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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망부석 2008/08/11 12:37

    공표한테는 전속 귀신이 있었군요! 어쩐지 묘화때문에 다른 사건이 또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ㅎㅎ 책 사러 갔다가 서점에 직원이 없어서 실패하고 그냥 왔네요. 주말 내내 뜬눈으로 기다렸습니당~ㅋㅋ

  2.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묘한 영이군요. 기억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산사람과 같은 감정 표현도 할 줄 알고 ㅎㅎ

  3. 넘 넘 재밌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