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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새로운 영웅상을 제시한 배트맨

지난 7월 18일 북미에서 개봉한 <다크 나이트>는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단지 흥행기록만이 아니다. 각종 매체의 비평에서도 찬사 일색이고, 세계 최대의 영화정보 사이트 IMDb에서도 역대 1위였던 <대부>를 누르고 최고 평점을 기록했다. <배트맨>의 팀 버튼을 시작으로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와 <스파이더맨>의 샘 레이미가 슈피히어로 영화, 코믹스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놓기는 했지만 <다크 나이트>의 엄청난 성공은 어리둥절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코믹스 영화라는 장르가 이제는 갱스터, 필름 누아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느낌이다.

<다크 나이트>는 야심만만하게도, 낮 장면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첫 장면의 주인공은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다. 팀 버튼이 <배트맨 2>에서 펭귄맨을 중심에 세운 적이 있긴 하지만, <다크 나이트>의 전략은 그것과 다르다. 슈퍼히어로의 신화를 뒤틀린 엽기 동화로 대체하는 전략을 썼던 <배트맨 2>와 달리, <다크 나이트>는 코믹북의 이미지에서 여전히 머물렀던 슈퍼히어로를 완벽하게 현실로 이끌어낸다. <다크 나이트>를 보고 있으면 조커이건, 배트맨이건 그들이 이 세상 우리들의 곁에 있다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럴 듯하다, 란 느낌을 넘어서 거의 완벽한 리얼리티를 구현한다. 현실의 어디에선가 그들을 보았던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배트맨은 외계에서 오거나 기이한 사고로 초인이 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슈퍼히어로를 택한 존재다. 악당에게 부모를 잃고, 복수의 일념으로 자신을 단련하여 ‘초인’이 된 사나이. 공포의 존재인 ‘박쥐’를 자신의 상징으로 사용한, 선과 악의 경계에서 흔들리며 고뇌하는 슈퍼히어로. ‘보이 스카우트’의 정의를 구현하는 수퍼맨과는 대조적으로, 배트맨은 악의 근원을 쫓아가며 때로 악에 물들기도 하는 ‘탐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초월적인 영웅이 아니라, 우리도 능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슈퍼히어로가 바로 배트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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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배트맨’이란 캐릭터는 슈퍼히어로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배트맨이 처음 등장했던 1930년대 말은 미국의 갱단이 사회 곳곳으로 한창 세력을 넓혀가던 시점이었다. 일상에서 갱단의 폭력을 목도했던 시민들에게는, 정말로 배트맨과 같은 ‘자경단’이 필요했다. 수많은 무술을 익히고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배트맨은, 국가권력이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악을 스스로 처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자경단’이다. 경찰이 세상의 모든 악을 없애지는 않는다. 권력이 정해 놓은 법질서의 바깥에서 암약하거나 슬쩍 빠져나가 버리는 악이 너무나도 많다. 경찰이나 검찰이 부패한 경우도 있고, 법의 한계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런 경우를 볼 때마다, 우리는 배트맨을 원하게 된다. 나에게 힘만 있다면, 당장 거리에 나서 악당들을 처단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정의를 위한 것인지, 그런 행동으로 과연 완전한 정의가 도래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박쥐가면을 뒤집어쓰고 거리에 나선 순간부터, 배트맨은 고뇌할 수밖에 없다. 왜 경찰이나 검찰에게 맡기지 않고, 배트맨은 스스로 정의의 수호자가 된 것일까? 만약 그가 정당하다면, 왜 그는 가면을 쓰는 것일까? 어쩌면 배트맨은 단지 사적인 복수를 위해서, 아니 부모를 죽인 악당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해소하기 위해 악당들을 물리치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크 나이트>의 고담 시민들도 그런 의문을 품는다. 배트맨이 악당을 잡는 것은 맞지만, 똑같이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는 배트맨을 어떻게 볼 것인가? 단지 정의라는 목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위법을 용납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크 나이트’라는 제목이다. <배트맨> <배트맨 포에버> <배트맨과 로빈> <배트맨 비긴즈>로 대중에게 이미 익숙해진 ‘배트맨’을 버리고 왜 <다크 나이트>로 제목을 바꾸었을까? 그 이유는 1986년에 발간된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 있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배트맨은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우는 어둠의 전사가 된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배트맨이라는 슈퍼히어로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하며, 철학과 정치적인 논쟁을 일으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최근 국내에도 출간된 앨런 무어의 <왓치맨>과 함께, 코믹스라고 불리던 미국 만화를 성인들의 ‘그래픽 노블’로 끌어올린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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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는 어둠의 기사, 밤의 기사라는 뜻이다.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은 정의로운 검사 하비 덴트를 ‘화이트 나이트’라고 부른다. 하비 덴트는 고담시의 악당 절반을 감옥에 집어넣고, 조커를 잡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건다. 배트맨은, 자신이 아니라 하비 덴트가 시민들의 영웅, 고담시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비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배트맨은 무엇이든 한다. 하지만 ‘화이트 나이트’는 성공하지 못한다. 오히려 혼돈과 악의 화신인 조커에 의해, 그의 내면에 있던 광기가 분출하며 새로운 악당 ‘투 페이스’가 되어버린다.

투 페이스는 어쩌면, 배트맨과 조커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조커는 완벽한 광기와 혼돈의 상징이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돈에도 욕심이 없고, 권력에도 욕심이 없다. 단지 그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여 버리는 데에만 열중한다. 그런 조커가 배트맨에게 말한다. 절대 너를 죽이지 않을 거라고. 너와 노는 것이 가장 신나기 때문에. 네가 있어야만 내가 완성된다고, 그 말의 의미는, 조커의 극단에 배트맨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린 조커와 달리, 배트맨은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다. 복수를 위해 시작한 ‘자경단’이지만, 배트맨은 결코 선을 넘지 못한다. 누구도 죽이지 않고, 무엇도 파괴할 수 없다. 배트맨은 모든 것을 지켜야만 한다. 다만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하면 제대로 악을 처단할 수 없기에, 스스로 세간의 비난을 받으며 묵묵하게 정의를 수호하는 ‘다크 나이트’를 자임하는 것이다.

<다크 나이트>는 현실적이면서도 만화적인 캐릭터 배트맨을 필름 누아르와 갱스터의 공간으로 과감하게 밀어 넣는다. 초현실주의적인 판타지로 <배트맨>을 재구성했던 팀 버튼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를 재해석한 것이다. 그렇다면 악을 멸하기 위해 폭력이라는 위법을 택한 배트맨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정의를 위해 싸우면서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모순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현존하는 상황이다. 슈퍼히어로는 단지 가상의 존재가 아니다. 현대의 슈퍼히어로는 21세기 대중의 이상이며, 그들이 갈구하는 새로운 영웅 신화다. <다크 나이트>야말로 가장 완벽한 비극적인 영웅이고.


관련 리뷰
[개봉작 / 예정작] - 다크 나이트 - The Dark Knight (2008) by DJUNA
[개봉작 / 예정작] - 다크 나이트 - The Dark Knight (2008) by Loomis

Posted by maken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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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닭나이트!

  2. 방랑자 2008/08/10 14:10

    어제 8/9일자 토요일 조조편으로 보고 왔습니다.

    과연 명불허전! 승리의 다크나이트!!!!!!

    재관람하러 또 가야겠어요 ㅠㅠ

    [관람후에 관객들이 두 선박 부분에서 감동적이었다하더군요]

  3. 쥬에르노 2008/08/10 15:26

    왓! 저도 토요일 조조로 봤는데...

    아침인데도 관객이 정말 많더군요. 2시간 30분이 금방 지나가버렸어요. 영화 끝나고 화장실에서 일보는데 옆에서 어떤 고등학생은 미이라3이 훨씬 재미있었다고 하더군요. 흐흐. 뭐랄까. 관객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인듯. 저도 한번 더 볼 생각입니다.

  4. 아키라군 2008/08/10 18:30

    쿠쿠 저는 토요일 저녁에 봤네요.
    미이라3가 재미따라; ㅋㅋ

    뭐 수준차이겠죠.
    오랜만에 온몸에 소름이 돋을정도의 영화를 본거같습니다.
    설마설마설마하면서 보면볼수록.. 최고작인거같습니다.
    한번더봐야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언제 이정도의 스토리와 퀼리티를 갖추게될까요.
    아직도 조커의 몸짓과 행동이 잊혀지질않는군요.
    잭리콜슨과는 다른 캐릭터의 조커 다 훌륭한거같습니다.
    다만 이제는 볼수없다는게 슬플뿐입니다.

  5. 두시간반이 전혀 아깝지 않던 영화! 손꼽아 기다린 보람이 있었어요!!! 몇번 더 보러갈 생각이예요 ㅎㅎ

  6. 이건뭐 소문보다 더 대단하던데요 어제 두번째 봤는데 확실히 영화가 엄청난 짜임새가 있음

  7. 헐 다크나이트 최고던데요!!!
    전 용산까지가서 아이맥스로 즐겼습니다. 조커 쩝쩝 아주 그냥 소름이... 으으

  8. 순수한 중2 2008/08/11 01:38

    전 8월10일 조조로 8시30분에 혼자봤는데 제가 영화를 무지 좋아해서 조조로 혼자보는데요 배트맨이 제일 슈퍼히어로 중에서 가장 현실에 가깝다고 생갑해요

  9. 영화 아주 죽인다... 근데.. 미이라3 좋다는 고딩은 머야...
    고딩이 되기 시러진다...

  10. 글 잘 봤습니다. 헐리우드의 영웅이 진화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11. 나이트 2008/08/11 08:33

    미이라3 가 더 재밌다는데 뭔 수준차이가 나오나요
    취향차이지

  12. 친구들과 보러 온 어떤 아가씨가 '결말이 말도 안되더라'고 지껄이는 소리도 들었는데요 뭘.
    역시 취향 차이겠죠. 그냥 '그래 너는 그렇구나 난 재밌더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