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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막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얼마 전 일본작가 오츠 이치의 <고스>(Goth)란 소설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를 통해 판매 금지 결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아직도 ‘금서’가 있나, 란 생각이 들었다. 포르노가 아닌 책을 강제로 판매금지 시킨다는 것은, 80년대에나 있었던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틀렸다. 지금도 가능하단다. 성인이 무엇을 볼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여전히 간행물윤리위원회 같은 곳에서 재단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일단 <고스>란 작품을 보자. 오츠 이치는 최근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신진 작가이고, 추리소설과 공포소설 등 엔터테인먼트 문학을 쓰는 작가다. <고스>는 일본의 미스터리 대상을 받은 작품이고, 평가도 좋았다. 즉 일본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어느 정도의 작품성도 인정받은 소설이라는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고등학생인 주인공은 엽기적인 살인이나 끔직한 사고 같은 것들에 이끌린다. 즉 인간의 어두운 면에 매혹되는 인간이다. 그는 가끔 살인자들의 마음에 동조하고, 가끔은 그들의 욕망에도 수긍한다. 어쩌면 자신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어봤다면, 주인공이 무조건 그들에게 동조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고스>에는 살인이 많이 등장한다. 끔찍한 광경도 많이 나온다. 엽기적인 것에 탐닉하는 고등학생도 나온다. 그런 <고스>에 대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반인륜적’이라는 이유로 판매금지를 시켰다. 아예 책을 팔 수 없게, 성인도 볼 수 없게 막은 것이다. <고스>의 내용 일부가 흔히 생각하는 인륜에 어긋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금지시킨다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현실에는 수많은 반인륜적인 범죄, 법적으로 걸리지는 않지만 비인간적인 행동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현실에 이미 존재하는데, 그런 것들을 보지 말고 밝은 것만 보라고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세상에는 아동을 유괴하고 살해하는 악인들이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그런 악인들에 대한 정보를 알리고 조심하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일단 알아야 그들을 조심하고, 피하고, 대항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반인륜적인 범죄를 다룬다고 해서, 소설이나 영화를 금지시킬 수는 없다. 또한 이미 청소년들 사이에서 ‘섹스’는 현실적인 문제다. 초등학생 집단 성폭력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무조건 ‘하지 마라. 섹스는 나쁜 것이다’라고 가르치는 것이 좋을까? ‘지금 섹스는 좋지 않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면 피임을 해라’라고 가르치는 것이 나을까? 현실을 알려주고 대처방법을 가르치는 것과 현실을 일체 부정하고 대화를 막아버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현실적으로 청소년에게 극도로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와 소설 등을 금지시키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청소년이 모든 것을 자주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미리 어른들이 판단하여 극단적인 작품들을 멀리 하도록 만드는 제도적 장치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청소년에 한해서다. 성인이라면, 당연히 자신이 무엇을 볼 건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극히 일부를 제외한 모든 성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전제가 깨지게 된다. 개인의 자유의지와 결정권을 무시하고, 국가가 옳고 그름을 모두 결정하여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북한처럼 유일사상만을 강조하는 전체주의 사회가 되는 것이다.

더욱 어리석은 것은, 반인륜적인 소설과 영화 등을 봄으로써 인간이 그렇게 변한다고 믿는 단순한 사고방식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너 바보야, 라고 말한다고 해서 정말 그렇게 믿는 사람은 없다. 영화나 소설을 보고서 그것을 현실과 착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살인범들이 반인륜적인 소설을 보고 반인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인륜적인 행동을 하는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반인륜적인 내용을 다루는 소설과 영화가 나오게 된다. 죽음이나 어둠, 공포에 매혹된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자살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매혹은, 역으로 삶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 철학과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의 하나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다. 어둠의 정체를 알아야만 불을 켜고, 어둠을 직시할 수 있는 것이다. 막는다고, 부정한다고 공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Posted by makeneko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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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쉬링의 생각

    Tracked from shiry's me2DAY 2008/08/11 13:13  삭제

    나는 금서를 가지고 있다. 우후훗-_-;; (기뻐해야 하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티엘린 2008/08/09 10:39

    요즘들어 금서가 유행이군요..

    국방부 금서도 우습던데....

    공안정국이 따로없는듯 ㅠㅠ

  2. 브이포벤데타나 이퀄리브리엄이 먼나라 이야기기 아닙니다.

  3. 멋진 신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쩝...

  4. 콜록콜록 2008/08/09 17:18

    흠...정말 당황스럽네요.하다못해 비닐 껍질 씌워 파는 방법도 있지 않나-_-;;
    이제까지 국내 출간된 책들 중에 더한 것도 있을 법 한데 말이죠(이 소설을 안 읽어봐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지금 서점에 가봐도 전부 건전 소설만 있는 것도 아니고.)...왜 새삼 이러는겨.참 새삼스런 일이 많은 요즘...-_-;;;

  5. 청소년과 성인의 구분에 관한 단락은 사족인듯 하네요.

  6. 방랑자 2008/08/09 18:48

    에혀, 세상이 워찌 될려고 이런 일이...

  7. 자유인 2008/08/12 18:42

    노벨문학상이라도 타야... 뭔짓을 해도 예술인거지요...

    아, 이놈의 나라는 정말... 검열 정말 싫어요...

  8. 도서관전쟁 이라는 애니를 요즘 보고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가 그렇게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양서와 금서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며 단순히 몇사람의 판단으로 인해 책의 좋고 나쁨이 판별되는 것도 조금 우습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