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하다고 죽이진 마라.
* 스포일러가 노출된 글이다. 워낙 한심한 영화라 알아도 별 상관없는 스포일러이긴 하다만, 이런 글을 쓸 때마다 스포일러를 까발렸다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글을 절대 읽지 않기를 권한다.
배우들의 우물거리는 대사와 혼란스러운 도입부를 조합해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모아서 특별 수업을 진행한단다. 스무 명의 학생과 세 명의 지도교사, 경비가 학교에 남겨진다. 수업 도중 갑자기 수조에 갇힌 여학생의 모습이 교내방송으로 중계되고, 우울한 목소리가 중간고사를 새로 실시하겠다고 선언한다. 문제를 맞히지 않으면 매번 누군가가 죽을 거라는 예고와 함께.
문제를 내고 그걸 맞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누군가의 목숨을 거는 게임은 새로울 게 없다. 살인의 생중계 또한 근작 <킬위드미>에서 <고사>보다 백배는 더 숨 막히게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장르영화에서 새롭지 않은 걸 꼭 탓할 필요야 있겠나. 사실, 영화를 보러 가면서 그런 걸 기대하지도 않았다. 내가 <고사>에서 보고 싶었던 건 아주 단순하다. 연쇄살인범이 왜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놓고 거래하는지를 조금만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면 만족했을 터다. 결과는 비참했다. 예상했듯이 어떤 즐거움도 구하지 못했다
연출을 맡은 ‘창’은 호기롭게도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호러와 스릴러의 결합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그는 피칠갑을 한 얼굴을 느닷없이 삽입하면 호러가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는 몇 가지 설정만 적당히 버무려놓으면 스릴러가 알아서 굴러갈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호러는 어둠과 죽음을 대면해야 하는 장르다. 유한한 생명은 인간에게 근원적인 공포여서, 타자에 의해 자기 목숨이 갑작스레 혹은 서서히 위협받을 때 인간은 극도의 공포를 체험한다. 거기에 어둠처럼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주어지면 그 공포는 가중된다. 그런 점에서, 어리석은 죽음만 지겹도록 반복되는 <고사>는 공포영화가 아니라 그냥 살인극이다. <고사>가 얼마나 한심한 공포영화인지 알기 위해선 도입부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살인을 보는 것으로 족하다.
멍청한데다 포악한 선도교사와 교내 1등을 자랑하던 못된 성질의 여학생이 1, 2번 희생자의 이름이다. 생각해보자. 백주 대낮, 도심의 학교에 멀쩡한 정신을 가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왜 그들은 난리법석을 떠는 걸까? 감독이 자기 입으로 리얼리즘에 입각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으니 <고사>에 초능력을 가진 괴물이나 무시무시한 혼령이 나올 리 만무하다. 기껏 핸드폰이 안 터지고 전화가 불통인 게 다인데, 밉살맞은 애들부터 꽉 막힌 선생까지 줄줄이 세상이 끝장난 것처럼 행동한다. 요약하자면, 지도교사란 것들이 아이들 몇 명과 어울려 학교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돌아다니는 게 <고사>의 전부다.
탁 트인 운동장을 놔두고 미덥지 않은 교실과 기숙사를 들락거리고, 함께 모여 있어도 모자랄 판에 뿔뿔이 흩어져 지랄들을 하고, 잡혀간 애들은 목숨이 위태로운데 다른 인간들은 문제를 풀기는커녕 간식을 먹다 집단으로 잠을 처자는 형국이다. 그러다가 희생자의 죽음이 닥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떼거지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괴성을 질러댄다. 정말 놀고들 있다. 보는 관객도 감정이입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고사>에서 제대로 설명되는 인물은 거의 없으며, 아이들에 대해 알려진 정보라곤 등수 정도가 고작이다. 그런 인간들이 언제 어떻게 잡혀갔는지 모르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시체가 되어 돌아오니 무서워하거나 슬퍼할 여지가 없을 밖에. 이 지경에 이르면 공포를 맛보겠다는 생각은 없어진 지 오래고, 목구멍으로 올라온 짜증을 식힐 생각 외엔 없다.
공포가 부재하는 상황이 쪽팔렸는지, 창은 전직 뮤직비디오 감독의 특기(!)를 살려 더 웃기는 굿거리를 한다. 덕지덕지 분장을 한 귀신들(그 중엔 좀비도 있다. 와!!!)을 뜬금없이 밀어 넣어보고, 카메라 조작을 통해 현실의 캐릭터를 기이하게 변형시켜보고, 눈두덩이 퀭한 미친 소년의 에피소드를 억지로 만들어보기도 하지만, 극의 전개와 당최 어울리지 않는 그런 설정들이 공포를 불러일으키리라고 생각하면 바보 아닌가. 그나마 그런 유치한 설정들이라도 제대로 보게 해주면 안 되나?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영상을 번개처럼 집어넣었다 빼버리는 편집 꼴이라니. 이런저런 철지난 효과들이 비웃음을 사기에 딱 알맞다.
스릴러로서도 <고사>는 꽝이다. 앞뒤가 하나라도 맞아야 긴장을 느낄 텐데, 애초에 머저리들의 에피소드 모음집 같은 영화에선 그런 걸 기대하지 말아야 했다. <고사>의 스릴은 ‘문제를 풀지 못하면 죽는다.’는 설정에 있다. 그런데 칼자루를 쥔 연쇄살인범부터 그 규칙에 충실할 마음이 없다. 문제를 못 맞히면 학생을 죽이겠다던 그는 문제를 맞힐 경우에도 살인을 저지른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그는 문제를 푸는지, 문제를 맞혔는지 확인하는 데 관심이 없으며, 살인범과 문제를 맞히는 집단 사이엔 의사의 통로조차 없다. 그리고 모든 문제의 답을 조합해야 한다던 협박성 전제조건은 영화 후반부로 가면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진다. 스릴러가 아이들 장난인가? 영화가 먼저 스릴을 해체하는 꼴이다.
관객의 몰입을 막는 것 중 하나는 ‘문제’ 자체다. 문제의 정보가 거의 없어서 그것을 푸는 과정에 전혀 개입할 수 없으니, 관객은 주인공들이 얼렁뚱땅 문제를 푸는 과정을 멍하니 넋을 놓고 쳐다봐야한다. 수조에 적힌 1번 문제는 (내가 보기에) 복잡한 수학 문제였는데, 심지어 극중 인물들도 그 문제를 거들떠보지 않는다(당연히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한자숙어, 영어 문장 구성, 수학 연산 같은 것들은 고등학교 중간고사 문제라고 하니 그렇다 치자. 그러나 최소한 문제를 푸는 재미라도 줘야하지 않나. 주인공들의 문제 풀이 현장은 보는 사람들의 맥을 푹푹 빠지게 만든다.
격에 안 맞는 역할을 맡은 배우를 떡하니 등장시키면서 영화가 범인을 스스로 노출한 건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헐크 정도의 힘과 맥가이버 정도의 두뇌는 있어야 가능한 범죄와 범인의 초라한 행색을 구태여 비교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결말부에서 밝혀지는 범행의 동기를 보노라면, 감독의 현실 인식 수준에 어이가 없다. 아무리 연예인들과 놀고먹던 뮤직비디오 감독이라고 하지만, 사회 시스템을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보면 안 되는 법이다. 살인이 벌어져도 스르르 묻혀버릴 정도로 한국의 학교가 무법의 공간이더란 말인가. 아무리 부패한 인간들이 설쳐대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최소한의 법질서조차 무시하는 사회를 의미하진 않는다.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을 무참히 살육할 때에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이유는 있어야 한다. <고사>는 정체불명의 범인이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돌아다니는 슬래셔 무비가 아닌 한국형 복수물이 아니던가 말이다. 나는 범인이 왜 아이들을 먼저, 그리고 순서대로 죽이려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감독은 하이틴물과 게임의 재미에 영화를 억지로 끼워 맞추기보다 인간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듣자 하니 혹자는 <고사>가 한국의 교육현실을 언급한 점을 평가하는 모양인데, 굳이 그런 영화를 보겠다면 이 땅의 고등학생들이 직접 만든 단편영화를 보길 권한다. 기본도 안 된 하이틴 호러물인 <고사>에서 그런 주제를 찾는 사람들은 번지수부터 제대로 확인하길 바란다.
★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몇 장면이 아주 재미없게 인용되고 있다.
* 1등부터 차례로 죽인다고 해놓고, 3등의 죽음 뒤에 갑자기 6등 하던 애는 왜 죽이는지 모르겠다. 하긴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다 물었다간 날이 샐 게다.
2008/07/31 - [개봉작 / 예정작] - 고死: 피의 중간고사 (2008) by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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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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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 입니다
글 하단에 포스팅 하신 분 아이디가 ibuti님으로
돼있는 걸 보실 수 있을 거예요..^^
ibuti님은 제5영화관 블로그를 운영하시면서
익스트림무비 팀의 일원으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비밀댓글 입니다
영화가 겁나 재미없나 보군요... ㅎㅎ
원래 볼 마음도 없엇지만.. ㅎㅎ
엄청난 악평이군요
영화가 대체 어느정도길래.. -_-
예고편보면 재미나게 보였는데 ..
출발비디오여행에서도 볼만한거 같았고
다 뻥이군요...
한국 공포영화 정말 싫다... 시러.. ㅠ.ㅠ
"고사" 출연배우가 "호평"하는 것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니
영화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당연히 그냥 넘어갈 수 있더라도
"고사"에 전혀 출연하지도 않은 "한국영화배우"가 "고사"를 "호평"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일....
이부티님의 분노가 느껴지는 글이네요.
국산 호러에 기대는 안합니다만..도대체 어느 정도로 막나가는 영화인지 보고 싶어지는군요.
만들지 말라는 얘기!! 이런저런 개봉작 다 봐서 볼라 그랬는데 그냥 다크나이트나 2, 3번 봐야겠네요.
철 없는 신입사원의 큰 실수에 몹시 화가 난 과장님 같은 리뷰네요.
얼마나 엉망인지 보러가고 싶어져요.
나름 노이즈 마케팅 효과가 있는 듯.
8살난 제 여동생이 이 영화재밌겠다고 하던데....
말려야겠군요 -_-;;;;(어차피 15세등급이지만;;
뭐, 저기 맨 마지막 스틸보고 웃음이 빵 터진 저로서는 기대도 안했지만;;;;;
남규리가 이 영화 개봉일정 앞당긴다고 뉴스 떳더군요.
그래서? 감히 다크나이트랑 월E랑 붙어보시겠다?
한국 공포영화들 정말 욕나온다..
아직도 정신 못차렸나 보군요...
에휴... 정말 한숨만 나오는...
어쩌면 매년 이렇게 똑같은 결과가 나올까요..
신기해요 ㅠ.ㅠ
안봐도 비디오네요 뮤직비디오감독 출신이라 비쥬얼에만 신경쓰셔나~~
뭐 어차피 볼맘도 없었지만...내년 이맘때 케이블tv에서 봐야겠어요
정준호씨가 엄청 호평하던데 제식구 감싸기 인가보죠
뭐 다 읽어보니 결론은 쓰레기란 말씀이군요.
혹시나 추석/설 특집으로 티비에서 하더라도 보지말아야겠습니다.
"고사"가 흥행에서 그럭저럭 본전을 건진다면
"한국의 2002년 월드컵4강 신화""트랜스포머의 흥행 기록을
추월한 디 워의 흥행 기록"을 능가하는 "미스터리"가 되겠군요.
시원 시원하네요!!!
그건 님생각이지 그렇지 않은사람도 몇몇 있습니다..
물론 그쪽이 생각한게 더 많겟지요.
하지만 감히 그런말 할 수 있습니까?
뷁!
님들이야 말로 정신차리셈
님들이 만들어보셈,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떡밥 무는 것 같아 그렇기는 하지만,만들지 않으면 평가도 못하는겁니까? 영화 감독이 아니면 그 누구도 영화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리네요. 정치인이 아니면 정치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말라는 정도까지는 쉽게 확장할 수 있을테고.
정말 영화를 보고 오셔서 그렇게 분노를 하신건지 모르겠지만, 좋은 점을 조목조목 집어주세요.
이런 논리만큼은 어디에서도 보고 싶지 않네요.
영화 보는 관객이 적선하냐.. 영화도 하나의 상품인데 영화보고 나면 평가란게 당연히 있는거지.. 내 돈주고 영화 보는데 좋은걸 봐야지.. 그래서 영화 보기전에 이런 평론이 필요한거 아냐..
이런말까지는 안하고 싶은데요.. 저 이 영화 봤는데 무슨 생각이 드냐면요.. 그냥 내가 만들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_-;; 너무 못만들어서... 영화 혹시 보시고 그런 글 쓰신건가요?
전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리뷰만 보자면 영화를 저렇게 만들기가 더 어렵겠네요.
백점보다는 영점이 더 받기 어려운 것과 비슷한 이치겠네요.
저런걸 내놓고 관객 지갑을 털려고 하다니..
너무하는거 아냐!!! 정말 시원시원한 평이에요
요즘 영화잡지들은 이상한 평을 해서
영화를 보라는건지 말라라는건지 판단력을 흐리는데
짱입니다요..
이거 참 영화평듣는데 난감하군요.
글쓰신분이 상당히 화가 나신것 같아요.
과연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지녔길래.
여기 매일 들어와서 글만 읽고 가다가 오늘 글 처음 올리는것 같은데
댓글들도 장난아니네요.
진짜 호러와 스릴러는 쉬운 장르가 아닌데 감독들이 저예산으로도 만들수 있기때문에 함부로 손대는것 같습니다.
어느영화든지 비현실적인 설정일수록 더욱더 현실적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정체불명의 영화들을 만드는것을 보면 정말 안타까울뿐이예요.
주연배우인 이범수님이 비슷하게 개봉한 다크나이트와 맞짱을 뜬다는 기사를 보고 나서
얼마나 자신있길래 그런 기사가 나올까 란 생각을 했는데 어제 다크나이트를 극장에서
긴장하면서 보고 온 터라 더욱더 궁금하군요.
ㅎㅎㅎㅎㅎ
머 저도 무료 티켓으로 보게됬지만 정말 가기 싫더군요.
여고괴담 3편이후 이런 공포물은 별로여서 가기 싫었지만 주변사람들이 가자구 해서 가서 보긴했습니다.
첫장면 부터가 과간이더군요. 위에 쓴내용 처럼 좀비물. 거기다가 문제 풀라고 해놓고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 문제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이건뭐 뒤죽박죽 소리만 질러대고... 한 남학생은 학교 시설물을 꾀듯이 알고있고 개연성도 없이 지나가는 이야기 전개에 보는내내 한숨만 나오더군요.
고사는 전반적으로 도전 골든벨을 보는것과 같았습니다. 전개도 엉망진창 연기도 엉망진창..
이범수가 이영화에 무슨생각으로 출현을 했는지지 모르겠군요 ㅡㅡ;;
더 열받는건 이딴게 흥행중이라는거 ㅅㅂ
우리반 애들 이거 보러 간다는거를 마렸습니다~
저 잘한거 맞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