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감동이 있는 명작 SF 애니메이션
<월-E>의 시대배경은 머나먼 미래의 지구입니다. 지구인들은 오래 전에 오염된 고향별을 떠났고 버려진 대도시에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청소로봇 월-E가 아직도 작업 중입니다. 700년 동안 쓰레기들을 압축해 큐브로 만들어 쌓아올리는 일을 계속하던 월-E는 어느 날 하늘에서 정체불명의 우주선이 내려오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그 우주선에는 아이팟처럼 하얗고 매끈하게 디자인된 아름다운 로봇 이브가 타고 있었죠. 아직도 태양계 궤도 어딘가를 떠도는 여객선 액시엄에서 온 이브는 뭔가 아주 심각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구를 방문한 것입니다.
이 설정이 얼마나 이치에 닿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지구의 오염과 도시화는 얼마나 심각한 겁니까? 과연 단 하나의 식물도 살아남을 수 없는 정도였나요? 탈출한 지구인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 걸까요? 설마 우주선 액시엄의 승객들이 유일한 생존자들은 아니었겠죠? 그리고 그들은 초광속 여행을 할 줄 알고 700년 넘게 자급자족이 가능한 우주선을 갖고 있으면서 왜 태양계 궤도만 뱅뱅 돌고 있었던 겁니까? 왜 월-E가 일하는 폐허에는 멀쩡한 80년대 물건들이 그렇게 많은 거죠?
그러나 끊임없이 발견되는 미심쩍은 논리에도 불구하고 <월-E>는 훌륭한 SF입니다. 그냥 좋은 영화인 SF물이 아니라, SF 장르의 장점이 최대한으로 활용되어 좋은 영화라는 거죠. 논리와 과학을 다루는 방식엔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풍부한 상상력에 바탕을 둔 장르 세계의 활용은 그들을 커버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에는 우주선에 매달린 월-E가 토성의 링을 손으로 어루만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과학에 엄격하다면 "저건 말도 안 돼. 토성의 링을 이루는 구성물들은 저런 크기와 밀도로 존재하지 않는단 말이야!"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건 얼마나 재미없는 반박입니까? 평생 버려진 도시에서 청소만 하던 지적인 존재가 처음으로 우주에 나와 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신세계를 탐험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월-E>는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경이와 경외감의 감정을 능숙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할 줄 아는 영화입니다. 보고 있노라면 그냥 울컥해지는 장면들이 한 둘이 아니에요.
<월-E>는 지금까지 나온 픽사 애니메이션 장편들 중 가장 진지하고 밀도 높은 드라마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이유는 로봇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어휘와 행동이 제한된 기성품 로봇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영화는 포스트 모던한 농담이나 장르 꼬기와 같은 기존의 픽사 테크닉을 활용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이들의 감정과 행동을 최소한의 대사만으로 전달해야 해요. (이 영화의 초반 30분은 대사가 한 마디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유일한 해결책은 드라마가 다루는 주제를 아무런 의심없이 믿고 진지해지는 것입니다.
기성품 로봇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로봇들 중 특수하게 제작된 로봇은 단 하나도 없어요. 월-E나 이브, 모와 같은 사람 이름들을 갖고 있긴 하지만 이들은 모두 지루한 상품명입니다. 월-E는 Waste Allocation Load Lifter-Earth-class의 약자이고 이브는 Extraterrestrial Vegetation Evaluator, 모는 Microbe Obliterator의 약자죠. 영화의 매력은 바로 그 기성품들이 고유의 개성을 가진 사람들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역시 보면 울컥하게 돼요. 시스템에 갇혀 자신의 이름과 개성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월-E와 이브에 감정이입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관객들 중 월-E나 이브처럼 운좋은 사람들은 없겠지만.
이 기성품 로봇들의 모험담은 로맨스에도 닿아있습니다. 아니, 그냥 닿아있는 게 아닙니다. <월-E>는 올해 나온 할리우드 영화들 중 가장 훌륭한 로맨스 영화이고 밀도나 감정 면에서 인간들이 나오는 웬만한 고전들을 능가합니다. 월-E와 이브의 이야기는 그만큼이나 절절해요. 제 생각엔 오히려 로봇이기 때문에 더 절절한 것 같습니다. 그들의 감정이 우리의 것과는 달리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거든요. 월-E만 해도 그런 감정을 익히기 위해 7세기가 넘는 시간을 학습하지 않았겠습니까? 이 네모난 청소기계가 아름다움이나 사랑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지 누가 압니까?
월-E와 이브가 느끼는 감정과 드라마는 중반 이후 인간 캐릭터들에게도 전달됩니다. 지금까지 아무런 존재 의미 없이 찰나적이고 안전하기만 한 삶을 살아왔던 인간들은 월-E와 접촉하면서 주변 세계의 아름다움, 감정의 쾌락, 행동의 가치에 대해 배웁니다. 그리고 월-E와 인간들의 세계가 만나면서 영화의 최종 클라이막스는 두 배의 의미를 갖게 되지요. 인간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일대일로 비교하자면 로봇들의 이야기가 인간들의 이야기보다 훨씬 좋아요.
이런 개념이 성공적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훌륭한 로봇의 존재가 필수적인데, 영화는 여기에서도 거의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월-E와 이브는 그냥 훌륭한 로봇이에요. 디자인이 좋기도 하지만 개념과 활용, 둘의 조화도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인간적이에요. 동그란 스크린 위에 뜨는 간단한 그래픽과 눈의 각도만으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들을 표출하지요. 이 영화를 보고 두 손 들고 반성해야 할 인간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기타등등
<월-E>는 실사 인간이 등장하는 유일한 픽사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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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건데 듀나님은 스컬리 같아요..ㅎㅎ
설정의 합리성과 논리를 따지는 게 때로는 필요한 경우도 많죠.
하지만 좋은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되고
좋지 않은 영화는 '그렇기 때문에' 가 되는게 쉽게 이해는 안 되는데요?
때론 걍 영화는 즐기는 게 좋을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넘 따지면 피곤하자나요 ㅎ
그렇게 따질 필요가 없이 보자고 한 것이 글의 취지같은데...(SF팬들이 때론 장난으로, 때론 진지하게, 때론 재미로, 그리고 아주 가끔은 정말 쓸데없이 설정에 태클을 걸곤 하니깐요) 즉 민님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 글은.
아우, 올 여름은 꽤 짭짤하네요.

놈놈놈도 재밌게 봤고, 동생이랑 코난극장판도 재밌게 봤었고 =ㅅ=;;;
이 번의 월E랑 닼나 사수까지 쩝니다.
(원래 토요일에 케로로 극장판 동생이랑 같이 보려고 했는데 그냥 이틀연속 닼나 조조관람해야겠습니다;;
언제나 마음을 움직이는것은 진심.
그것이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더라도
7살 5살짜리 애들 데리고 볼만한가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 정서에 안좋은 장면은
없었던 것 같네요.
어른 입장에서도 굉장히 멋진 작품인데
아이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개봉하면 데리고 가서 봐야겠군요.
지난번 쿵푸팬더를 보고 너무들 좋아해서 종종 데리고 다녀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주 보러가는데ㅋㅋㅋ
어떻게 끝이 날지 예상되었지만 그래도 울뻔했어요 ㅎㅎ 월E 쵝오~
작년에 트랜스포머가 있었다면 올해는 월E가 있다.
가장 미래의 로봇에 대한 논리적인 설정...
기다림만큼 행복을 준 영화였다.
끝나고 극장 밖 나오니 자연스레 하늘을 올려다 보며 별을 찾게 되더라는..
영화 포스터 영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