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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액막이 (1)
제2장 액막이 (2)
제2장 액막이
할머니는 이런 이야기들을 틈만 나면 속삭였고 진희는 그것들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뭔가 일어나선 안 되는, 이상하고도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다.
아무튼 죽은 삼촌들의 표정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진희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얼굴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공포도 공포지만 생전에 삼촌들이 보여준 따스한 미소를 다시는 떠올릴 수 없다는 사실이 진희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다.
진희는 오늘도 달력을 확인했다. 그녀가 보는 건 달력에 큰 글씨로 적힌 양력이 아니라 그 아래의 조그만 음력날짜였다. 예전엔 음력이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진희가 음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지난 달 큰삼촌이 죽은 다음부터였다.
그날도 진희는 학교에 갔다 오자마자 함께 방을 쓰는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삼촌들이 죽은 후 엄마는 진희에게 삼촌들 방을 쓰라고 했다. 지금껏 할머니와 함께 방을 써온 진희에겐 태어나 처음으로 자기 방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지만 전혀 내키지가 않았다. 엄마는 그 방을 쓰던 삼촌 둘이 모두 죽어서 겁을 먹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때문이 아니었다.
진희는 할머니 곁에 있고 싶었다. 삼촌들이 잇따라 죽은 후 할머니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고 방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아 자신이 곁에 남아 지켜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할머니가 진희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달력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할머니, 뭘 보는 거야?”
그제야 할머니가 고개를 드는데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왔니?”
“달력은 왜?”
진희가 묻자 할머니가 다시 달력을 쳐다보며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둘 다 그믐이야.”
“그믐?”
할머니는 마치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곤 진희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니 삼촌 둘이 죽어나간 날이 전부 그믐밤이라고.”
“그믐이 뭔데?”
할머니가 쭈글쭈글한 손가락으로 달력에 있는 작은 글자를 가리켰다. 진희는 달력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날짜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할머니는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날짜를 가리키며 진희에게 설명해주었다.
“봐라. 지지난달 네 작은삼촌이 죽은 날도 음력으로 치면 29일이고 이번에 큰삼촌이 죽은 날도 여기 음력으로 29일이잖아. 꼭 한 달 만이야.”
“그게 왜?”
진희는 여든이 넘은 할머니의 눈이 그토록 투명하게 빛나는 걸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엄마, 아빠에겐 말하지 마라. 그믐밤은 음기가 가장 강한 날인데다 달빛도 없어서 귀신이 돌아다니기에 안성맞춤인 날이거든.”
너무 뜻밖의 말이라 진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머니를 쳐다봤다.
“그럼 큰삼촌과 작은삼촌이 죽은 게 귀신 때문이란 말야?”
“네 아빠는 쓸데없는 소릴 한다고 화를 내고 펄쩍 뛴다만 삼촌들이 죽던 날 밤에 난 이상한 기운을 느꼈어. 성국이가 죽던 날에 초저녁부터 이상하게 집안 공기가 서늘한 것 같아서 춥다고 보일러를 틀라고 했더니 네 아빠가 이제 9월인데 뭐가 춥냐고 했거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성일이 죽던 날 저녁에도 추위를 느꼈고 똑같은 소리를 했지, 뭐냐.”
그러고 보니 진희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작은삼촌 죽던 날은 몰라도 큰삼촌 죽던 날은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할머니가 춥다고 보일러를 틀라고 했고 아빠가 벌써 보일러를 틀면 겨울에는 어떻게 지내려고 하느냐며 할머니에게 옷을 더 두껍게 입는 편이 건강에도 낫다고 했던 것이다. 그날 밤의 일을 기억하는 건 진희도 할머니와 똑같이 한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희는 그걸 감기기운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진희가 겁먹은 음성으로 물었다.
“할머니! 귀신이면 어떡해?”
할머니는 마치 보이지 않는 누가 듣기라도 하는 양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귀신이 붙은 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니? 천연두가 틀림없어. 내가 어릴 적엔 천연두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다. 셋이 걸리면 하나가 죽었어.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난 사람들도 얼굴에 너희 삼촌들처럼 그런 흉터가 남았지. 똑같아. 그건 천연두자국이야. 귀신의 짓이 아니고서야…….”
할머니는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진희는 그날부터 생전 보지 않던 음력날짜를 챙겨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밤이 할머니가 말하던 음력 29일의 그믐밤이었다. 기분 탓인지 진희는 초저녁부터 또다시 한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춥다는 얘기도 안 했고 오늘이 그믐밤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별다른 내색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할머니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금방 고른 숨소리를 냈다.
하지만 진희는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정이 다가오면서 엄마, 아빠 방에서도 텔레비전을 끄는 기척이 들려왔다. 잠시 후 유리로 된 미닫이문으로 비치던 거실 불빛이 사라졌다. 거실의 불이 꺼지자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 집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바깥과 면한 창문으로도 한 줌의 빛조차 스며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믐에는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 일직선에 위치하고 혼자서는 빛을 낼 수 없는 달이 태양빛을 반사하지 못해 달빛이 사라진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달빛이 사라진 그믐밤에 귀신들이 삼촌들을 데려간 것 같다고 했다.
정말 삼촌들을 데려간 게 귀신일까.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자 겁이 나서 오줌이 마려웠다. 진희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할머니의 앙상하고 쭈글쭈글한 팔에 매달렸다. 거실의 괘종시계가 새벽 1시를 알렸다.
그때 자고 있는 줄 알았던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잠이 안 오니?”
“할머니, 안 잤어?”
“넌 왜 안 자니?”
“그냥…… 무서워서.”
할머니가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다가 말했다.
“아까 저녁 때 너도 추웠지?”
진희는 어둠 속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할머니를 보고 물었다.
“할머니도 추웠어?”
“그래. 추웠지. 뼛속까지 추웠다. 지금도 추워.”
실은 진희도 그랬다. 지금 두꺼운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있는데도 냉장고에서 나오는 바람 같은 서늘한 한기가 연신 잠옷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진희가 침을 꼴깍 삼키자 기다렸다는 듯 온몸에 깨알 같은 소름이 돋아났다.
그때 집 안 어디에선가 ‘흐으흑.’하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출렁이는 물결처럼 어둠을 타고 방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할머니…….”
진희는 할머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할머니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불 속에서 나오면 안 된다!”
진희는 대답할 용기조차 없어 이불 속에서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여자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또렷해졌을 때 이번에는 대문 밖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마치 안에서 우는 여자의 울음소리에 대답이라도 하듯 기이한 소리를 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람이 아닌지도 몰랐다.
“캑! 캑! 캑!”
계속 여자를 부르는 것처럼 소리를 내던 정체 모를 누군가가 급기야는 ‘쿵! 쿵! 쿵!’하고 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진희는 앙상한 할머니의 팔을 있는 힘껏 움켜잡았다. 할머니가 신음하듯 말했다.
“대문이 닫혀 있으니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게다.”
하지만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방의 미닫이문이 스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방엔 엄마, 아빠밖에 없는데. 그럼 엄마, 아빠도 저 소리를 들었단 말인가. 아니다. 엄마, 아빠가 아니었다. 안방에서 나온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었다. 놀랍게도 안방에서 나온 사람은 그 소름끼치는 울음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여자의 음산한 울음소리가 미닫이문을 사이에 두고 거실에서 들려왔다. 엄마, 아빠 말고 대체 또 누가 안방에 있었단 말인가.
진희도 할머니도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온 신경을 바깥으로 내몰았다. 안방을 나온 여자가 마당으로 내려가는 기척이 들려왔다. 할머니가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대문을 열어주면 안 되는데!”
“할머니, 무서워요. 저 여자 누구예요?”
진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삐걱 하고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진희도 할머니도 훅 하고 숨을 삼켰다. 어디선가 불어온 세찬 바람 한 줄기가 집 안을 휘감았고 잠시 후 거실 할머니 방 바로 앞에서 ‘캑! 캑! 캑!’하는 예의 그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두 손을 더듬어 진희의 얼굴을 꼭 끌어안았다. 진희는 여자와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온 뭔가가 문 바로 앞에 서 있는 기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곧 할머니 방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방문이 열리자 이불 속에서도 단번에 느낄 만큼의 차가운 냉기가 방으로 밀려들었다. 할머니가 쥐어짜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누……누구야?”
“캑! 캑! 캑!”
소리는 바로 진희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할머니가 힘껏 진희를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우리 진희는 안 돼!”
진희는 이불 속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흐느끼면서도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틀어막았다. 할머니가 숨이 가쁜 것처럼 꺽꺽거리는 소리를 냈다. 팔이 부들부들 떨렸고 다리가 요동을 쳤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진희를 감싸 안고 있던 손을 놓지 않았다.
한동안 소리 없이 발버둥을 치며 경련을 일으키던 할머니는 긴 한숨이라도 내뱉는 것처럼 마지막 숨을 토해냈다. 진희는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젖어오는 것도 알지 못하고 할머니만 끌어안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더 이상 진희를 끌어안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몸은 이미 힘없는 나무토막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진희에게 그 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장 무섭고 긴 밤이었다. 아침에 엄마, 아빠가 들이닥칠 때까지도 진희는 이불 속에서 나오질 못했다. 할머니의 얼굴에도 삼촌들과 마찬가지로 곰보자국이 생겨났고 그렇잖아도 앙상하던 팔다리는 더욱 야위고 오그라들어 있었다.
3
선일은 ‘레테의 강’ 창가에 앉아 바깥 거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제 막 오후 4시를 넘겼을 뿐인데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처럼 잔뜩 흐려 있었다. 날씨 탓인지 기분이 우울하고 가슴 한가운데 구멍이라도 뚫린 듯 마음이 허전했다. 레테에도 손님이 없었다. 소연은 아까부터 테이블 구석에서 리포트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아르바이트하며 장학금까지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수정과 찬수는 점심 전에 이선자라는 영과 함께 그녀의 집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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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완전 몸에 힘 꽉주고 봤네요.
다음편부터는 진희네 집에 있었던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건가요.
호기심이 물컹물컹 일어나네요ㅎㅎ
요번펀은 좀 무섭네요...그 귀신의 정체가 궁금하네요.. ^ ^
재미있습니다..
몰입하려는데 딱 끊기는 ^^;
가엾은 할머니 ㅠㅠ 무섭지만 반면 흥미진진합니다. 다음편 기다리기가 너무 힘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