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고독한 분위기를 잘 살린 영화
어설픈 악령 묘사와 반전이 아쉬워
<메이드>를 만든 켈빈 통이 홍콩으로 건너 와 만든 영화입니다. 원래 각본은 싱가포르를 무대로 하고 있었지만 환경이 좋지 못해서 홍콩에서 제안이 들어오자 거기서 만들었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경찰이 나오기만 해도 각본검열을 받는다네요. 홍콩에서야 경찰들이 어떻게 그려지건 아무도 신경 안 쓰고.
영화의 도입부는 <엑스 파일> 식 시리즈의 파일럿 같습니다. 연쇄살인마를 쏴죽이지만 그러는 동안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이형사는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유령을 목격했다는 보고서를 쓴 통에 한직이라는 잡무과(雜務科)로 배정됩니다. 곧 퇴직을 앞둔 황형사가 관리하는 이곳은 절도나 강도와 같은 정상적인 신고가 아닌 2퍼센트를 처리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영화가 그리는 그 2퍼센트는 대부분 초자연적 현상입니다. 영화의 제목인 '제1규칙'은 잡무과의 가장 중요한 규칙으로 '귀신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규칙과는 상관없이 잡무과 사람들은 모두 초자연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지요. 그들의 일은 신고한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은폐하는 것입니다.
싱가포르 감독이 만들었지만 홍콩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화입니다. 좁고 낡고 쇠락한 자본주의 도시에서 버티고 살아남은 도시인들의 우울함과 고독이 담뿍 담겨 있지요. 가끔 그 감상주의와 폼이 지나치고 노골적인 음악이 그 분위기를 오히려 깨버리긴 하지만 원래 대부분의 홍콩 영화들이 그렇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유령 이야기 역시 그 배경에 썩 잘 어울립니다. 도시의 틈바구니에서 잊혀지고 낙오된 사람들의 서글픈 잔재인 것이죠. 고참 형사 역을 맡은 정이건 역시 이들을 다루면서 적절하게 조율된 홍콩 분위기를 살려내는 데 그 감각이 아주 좋습니다. 신참 형사 여문락과의 관계 묘사도 좋아서 정말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텔레비전 시리즈가 만들어져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텔레비전 시리즈에서는 분위기가 제대로 살지 못할 테니 삼부작 영화여도 괜찮고. 물론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죠.
제 생각에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영화가 스토리를 끌어가기 위해 도입한 연쇄살인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세 가지 문제가 걸립니다. 우선 이 영화의 악령은 어떤 매력이나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 졸렬하고 추잡한 존재입니다. 척 봐도 그냥 일회성인데 영화는 그 무게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어요. 이럼 맥이 풀리죠. 두 번째 문제는 이 악령 스토리를 통해 보편화시킨 귀신의 규칙이 지나치게 엄격해서 자연스러운 맛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잘 쌓아놓은 멜랑콜리한 분위기와도 맞지 않고요. 세 번째 문제가 가장 심각한데, 영화의 반전이 굉장히 나쁩니다. 전 화술에 이용한 트릭을 좋아하고 <유주얼 서스펙트>와 같은 영화도 페어플레이를 했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제1규칙>의 화술은 암만 봐도 공정치가 못해요. 그냥 게으른 반칙입니다.
기타등등
영어로 잡무과는 Miscellaneous Affairs Department 그러니까 줄여서 MAD죠.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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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5 - [기획 / 특집/칼럼] - 싱가포르 호러의 저력 '제1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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