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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액막이
1
북 카페 레테의 강.
저승으로 가는 망자가 그 물을 마시거나 강을 건너면 이승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다고 알려진 망각의 강, 레테. 완전한 죽음은 이승의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인가. 카페 ‘레테의 강’은 저승에 존재한다는 바로 그 강물에서 따온 이름이다.
레테의 낮 시간은 여느 북 카페와 다를 바 없다. 레테는 근처 복잡한 대학가를 벗어나 한적한 거리에 자리 잡은 작은 카페다. 따스한 늦가을의 햇살이 절묘하게 거리를 밝음과 어둠으로 나누며 길게 안쪽까지 뻗어 들어온다. 같은 길이라도 햇살이 닿은 곳과 그늘진 곳은 전혀 다른 공간이나 차원의 세계처럼 보인다.
카페 창가에 앉아 연녹색의 블라인드 사이로 드러나는 거리를 보면 묘한 상념에 빠지게 된다. 평소엔 하지 않던 무겁고 진지한 상념, 이를테면 삶과 죽음 같은 문제에 대한 고민을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되는 것이다. 레테를 찾는 손님들은 왜 이곳에만 오면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람들이 그런 기분이 들 때 카페를 찾는 것인지, 정말로 레테에 들어서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 레테에 그런 신비한 기운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이곳은 저승에 있다는 강과 이름이 같은 공간이고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떠올리며 진지한 상념에 잠기곤 한다.
북 카페인 ‘레테의 강’을 찾는 사람들은 무척 다양하다. 강의시간의 빈틈을 이용해 리포트를 작성하려는 대학생,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사색과 독서를 즐기려는 직장인이나 주부, 거의 매일 아침에 와서 해가 저물 때까지 노트북을 두드리며 글을 쓰다 가는 소설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레테만의 이상한 매력에 빠져드는 것이다.
레테엔 언제나 벽면을 가득 메운 책 냄새와 은은한 커피 향이 감돈다. 낮 시간에 레테를 지키는 사람은 서빙을 하는 아르바이트생 소연과 주방에서 커피와 간단한 토스트 등을 만드는 찬수다. 소연은 이번에 대학에 입학해 아직은 교복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풋풋하고도 예쁜 여학생이고 찬수는 차수정과 함께 이 카페의 사장이다.
찬수가 수정을 알게 된 건 그가 운영하던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서였다. 거긴 남들이 못 보는 것, 즉 망자의 영을 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물론 찬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우연히 동호회에 대해 알게 된 수정이 소설 《귀신전》의 취재를 위해 찬수에게 연락을 해왔다. 실제로 《귀신전》에는 찬수를 비롯한 동호회 회원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찬수는 이후 수정이 쓰는 소설을 모니터링 해주고 도움을 주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왔다.
카페 얘기를 먼저 꺼낸 건 찬수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함께 고민을 털어놓고, 또 저승에 들지 못한 채 방황하는 영혼을 인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존재들이 찾아올 수 있는 쉼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것이다.
처음 그런 아이디어에 대해 말했을 때 수정은 찬수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 만약 그런 공간이 있다면 흥미롭기도 하겠지만 《귀신전》을 쓰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카페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소재와 취재거리가 쏟아지고 신기한 일들이 매일 일어날 텐데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결국 수정은 카페를 여는 데 부족했던 자금을 투자하고 찬수와 동업자가 됐다. 그렇게 탄생한 카페 ‘레테의 강’은 충분히 어둠이 내린 늦은 밤 시간이 되면 그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밤 10시. 정상적인 영업이 끝나면 카페 ‘레테의 강’은 잠시 문을 닫았다가 한 시간 후인 11시에 새로 오픈을 한다. 그 시간 카페를 지키는 사람은 찬수와 수정 그리고 장선일 법사 세 사람이다.
선일은 낮 시간 대부분을 카페 2층 사무실에서 보내다가 정상영업이 끝나면 카페로 내려와 찬수와 함께 새로운 손님을 맞기 위한 변신을 돕는다. 연녹색의 블라인드는 붉고 두터운 커튼으로 가려 바깥에서는 카페 내부를 볼 수 없도록 한다. 카페 밖에는 영혼을 부르는 주문이 적힌 붉은 불빛의 연등 수십 개를 내건다.
거기엔 귀신을 보지 못하는 수정을 위해 1)연지(臙脂)화장을 시키는 일도 포함된다. 목 뒤에 2)경면주사(鏡面朱砂)로 붉은색의 주문을 적은 다음 연지화장을 하면 잠시 동안 귀신을 볼 수 있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지화장과 주문만으로 모든 사람이 귀신을 볼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수정의 경우는 사이코메트리를 행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정은 하루 중 그 시간을 가장 기다리고 좋아했다.
그 모든 준비가 끝나면 카페는 특별한 손님을 기다린다. 이 이상한 카페의 영업시간은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며 사람이든 귀신이든 그 합이 셋이 되면 문을 닫고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야간에 문을 여는 ‘레테의 강’은 단 세 명의 손님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인 것이다.
이제 카페는 죽음을 상징하는 저승의 강, ‘레테’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내고 있었다. 선일과 수정, 찬수는 각자 테이블에 앉아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멀리서 찾아올 사람 혹은 영을 차분하게 기다렸다. 찬수와 수정은 각자 책을 펴들고 읽기 시작했고 선일은 여느 때처럼 테이블에 화투를 늘어놓고 패를 떼기 시작했다.
카페 입구에 걸어놓은 풍경(風磬)이 찰랑거리며 소리를 냈다. 그 풍경은 영에게만 반응하는 귀물로 박두칠 영감이 선일에게 준 것이었다. 풍경소리에 세 사람이 일제히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카페에 들어선 영은 30대 후반 정도의 여자였고 죽을 당시 사고를 당했는지 온몸이 피투성이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카페를 둘러보는 동안 영은 생전의 모습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풍경소리에는 영이 카페에 머무는 동안 생전의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세 사람을 차례로 보며 망설이던 영이 수정에게 다가가더니 그 앞자리에 앉았다. 수정이 책을 덮고 말했다.
“편안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하세요. 한이 있으면 풀고 부탁이 있으면 저에게 얘기하세요. 대신 이 카페를 나가면 더 이상 이승을 떠돌지 않겠다고 약속해야만 해요.”
영이 가만히 수정을 쳐다봤다. 음산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소리는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울렸다.
[난 이선자입니다. 나이는 서른일곱이고 죽은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승에서의 주소는…….]
카페 입구에는 영들이 읽을 수 있도록 안내문을 붙여놓았는데, 그 첫 번째가 상담을 받으려면 인적사항부터 얘기해달라는 규칙이었다. 그에 따라 영은 자신의 인적사항을 말했고 수정은 그걸 노트에 받아 적었다. 그렇게 적은 인적사항은 영의 한을 푸는 데 사용하기도 했고 나중에 천도를 위해 칠성장의사 박 영감에게 보낼 때 함께 보내는 자료이기도 했다. 박 영감은 그런 식으로 ‘레테의 강’에서 보내온 영들의 업장을 풀어주고 매주 한 번씩 천도제(薦度齋)를 올려 영들을 천도시켰다.
마침내 영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영은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게 서툴고 소리를 낼 수도 없다. 영의 감정이나 소리는 공기의 파동이나 정신감응(精神感應)이라고도 불리는 텔레파시를 통해 전해진다. 말보다 더 생생한 영의 감정이 공기의 파동을 통해 고스란히 수정의 마음속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생전에 난…… 비록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우리 가족은 행복했습니다. 그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교통사고였어요!]
수정은 파동을 통해 영의 안타까움과 슬픔을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우리 애들은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입니다. 난 남편과 함께 작은 식당을 하고 있었어요. 생각해봐요, 내가 죽고 나서 우리 집이 어떻게 변했을지. 남편은 심지가 약한 사람이라 내가 죽자 사는 걸 포기한 사람처럼 변했어요. 또 공부 잘 하고 똑똑하던 우리 애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고요. 내가 모든 것을 바쳐 소중하게 지켜온 내 식구들이 그렇게 무너지는 걸 보고 어떻게 저승으로 편히 들겠습니까?]
영은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와 식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 마지막으로 영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그 얘기만 전해주면 한을 풀고 저승으로 들겠다고 했다. 수정은 영의 집을 방문해서 가족들에게 말을 전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음 이야기
제2장 액막이 (2)
주2) 경면주사(鏡面朱砂): 중국의 경면산(鏡面 山) 꼭대기에서 나는 단사(丹砂)로 부적을 쓸 때 사용하는 붉은 색의 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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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 거로군요. 회가 지날수록 점점 더 재미있어 지는 것 같습니다. '레테의 강'카페, 마음에 드는데요^^
영.들을 위한 카페라....앞으로 갈수록 점점 흥미진진해 지네요...
오오~~ 어쩌다 들어오게됐는데 ㅋㅋ 하루만에 다 읽었어여..^^
넘 잼나요~~ 어렸을때부터 귀신얘기 엄청 좋아했눈데.. ㅋ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