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 방식으로 제작된 <그라인드하우스>
이런 열악한 극장 시설에서 무슨 영화를 보고 추억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도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시상영관은 폭넓은 관객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때문에 영화관을 넘어선 낭만과 추억이 공존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기억된다. 특히 개봉관과 달리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비용으로 두 편 혹은 세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개봉이 된지 몇 년 후의 영화들까지 오랫동안 상영을 했기 때문에, 그 시절 영화광들에게 동시상영관은 끓어오르는 영화 보기의 욕구를 해소하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과거 영화 관람 문화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동시상영관은 어떤 이유로 시작이 되었을까? 그 배경과 유래에 대해서 짚어보자.
동시상영관의 유래
동시상영관의 시작은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극장주들에 의해서 뿌리를 내렸다. 미국 경제 대공황의 시기, 영화 관람은 시민들의 중요한 문화생활의 하나로 기능을 했고, 이 시기 유성 영화들이 등장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장르의 다양성이 대두될 수밖에 없었다. 극장주는 수입을 올리기 위해 더 많은 영화들을 상영하기를 원했고, 그에 따라 저예산으로 제작이 되는 B급 영화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A급 영화를 메인으로 걸어놓고 교차 상영을 하는 식으로 초기 동시상영관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시작은 뉴스릴이나 관광 홍보 영상, 단편 영화들이 많았지만 수요가 많아지면서 점점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다. 물론 영화 2편을 상영한다고 해서 두 배의 가격을 받은 것은 아니다.
로저 코먼의 <갈가마귀>
그 결과 저예산 B급 영화를 전문적으로 제작을 하는 프로덕션이 생겨났고, 이윤 극대화를 위한 할리우드 메이저사들은 자신들이 제작한 A급 영화를 팔면서 B급 영화를 끼워 파는 형태의 일괄계약을 극장주에게 요구하는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이 관행은 1948년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불법이라고 판결을 내리면서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종말에 일정 부분 기여를 했다.
그런 가운데 드라이브인 씨어터와 같은 작은 규모의 독립 극장들이 생겨나면서 동시상영의 장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동시상영 방식이 처음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1960년대 이르러 동시상영 영화들은 드라이브인 씨어터가 아닌 도심의 극장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이때 베이비붐과 맞물리면서 이 새로운 영화 환경은 급격히 성장하게 된다.
동시상영의 메카 ‘드라이브인 씨어터’
베이비붐 시대를 맞이하면서 드라이브인 씨어터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부모가 영화를 보러 갈 때 아이들을 집에 놔두고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얘들을 차안에 태운 채 그냥 영화를 볼 수 있다는 편리함은 부모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실제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홍보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시끄러운가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극장"이라는 형태로 대중들에게 알렸고 이것은 꽤나 잘 먹혀들었다. 또한 50~60년대에는 십대 청소년들이 데이트 장소로 가장 좋은 공간으로 드라이브인 씨어터를 이용했다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들의 경우 영화도 보지만, 주변에 보는 사람도 없으니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는 이점이 크게 작용을 했을 수도 있다. 영화가 상영 중인 곳에서 차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베이비붐 시대에 큰 성장을 이루었다는 주장은 실제로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인기가 높아질 때 많은 지역에서 유모들이 드라이브인 씨어터가 자신들 직업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데모 집회를 가진 것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 동시상영은 제임스 본드 영화 같은 스파이 장르,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같은 시리즈물들이 후속편을 개봉할 때 전작과 동시에 상영하는 식으로 많이 이루어졌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 유행한 선정성 짙은 영화 즉 ‘익스플로이테이션 무비’들은 드라이브인 씨어터용으로 제작이 되기도 했고, 이때 동시상영 방식으로 자주 선을 보였다.
헌데 왜 동시상영 방식이 유행하게 되었던 것일까? 이것은 당시 배급 시스템의 구조상 자연스럽게 형성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주류 영화들의 경우 제작사나 배급사에서 영화 상영 날짜를 4주 정도의 시간을 잡았다. 도심에 위치한 극장에서는 필름 유통 과정에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경우 주로 도심 외곽에 위치를 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다. 상대적으로 주민들의 수가 적은 외곽이나 시골 지역에서 영업을 했기 때문에 영화 상영 1주차에서는 지역 주민들로 붐비게 되지만, 2주차로 접어들면서 관람객의 수가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책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즉 주류 영화 상영보다 주기가 짧지만 빨리 빨리 교체를 할 수 있는 영화들이 시급했고, 그 자리를 저예산 B급 영화들이 메워주기 시작했다. 극장주 입장에서도 잦은 영화 교체 상영이 수입과 곧바로 직결되었기 때문에, 저예산 B급 영화들의 활성화는 생존을 위한 최선책이었다. 빠른 회전과 다양한 프로그램의 도입의 필요성에 동시상영 방식은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영광은 그리 오래 지속이 되지 못했다.
동시상영관, 추억속으로
첫 째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 텔레비전의 보급률이 폭발적으로 성장을 하면서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멀어지기 시작했고, 세 번째 70년대부터 영화 검열이 강화되면서 가족이 즐기기에 적당하지 않은 영화들이 상영이 된다는 지적이 늘어났다. 더욱이 일부 극장들이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포르노까지 상영을 하는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비디오 시장과 교외 지역 정비로 인해 더욱 위기에 처했고,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드라이브인 씨어터는 지금도 운영이 되고 있지만, 동시상영은 어느덧 구시대의 문화로서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미국 전역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일본의 경우는 지금도 동시상영이 활발하게 진행이 된다. 주로 애니메이션 장르에서 동시상영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지브리의 경우 자사의 작품들을 동시 상영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얻기도 했다. 반면 국내의 경우 미국과 비슷한 형태로 동시상영관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단관 극장들이 멀티플렉스로 교체가 되었고, 할리우드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을 한 와이드릴리즈 방식의 대규모 배급과 상영 형태로 변화되면서 동시상영은 설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지금도 지방 곳곳에 동시상영으로 운영이 되는 소극장들이 일부 남아있지만, 영화 프로그램은 선정적인 비디오 영화들로 채워지는 등 원래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제 특별한 이벤트나 영화제가 아니면 영화 관객들은 과거 <백 투 더 퓨처> 1, 2, 3편을 한 극장에서 몰아서 보던 기회는 없을 것이다. 비디오와 케이블 TV, DVD 등으로 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 행복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영화 상영 사이에 틀어주던 예고편 영상을 수놓던 센스 만점의 카피들, 코믹과 액션, 호러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싼 가격으로 볼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의 동시상영관에서 즐기던 영화들의 느낌은 정말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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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상영관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쉬리와 간첩 리철진이였는데...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4500으로 영화 두편보기!! 그당시가 진
짜 낭만과 로망이 있었는데... 지금 멀티플렉스가 되면서 영화보기는
참 편해졌는데 무언가 낭만은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당시 T2와 쥬라기 공원을 보려고 온가족이 서울극장 앞 매표소에 그 긴
줄을 서서 비 쫄딱맞으면서 거의 두시간에 육박하는 시간을 기다려서
표를 샀던 기억이 아련히 나네요...
낭만이 없는 멀티플렉스.. 상영 끝나고 나면 우루루 퇴장을 해야 하는.. 옛날엔 좌석에 남아서 수다떨고 왔다갔다 하곤 했었는데 ㅠ.ㅠ
저도 T2와 쥬라기 공원, 서울극장 기억나네요(...) 멀티플렉스는 편리하긴 하지만, 그만큼 로망도 줄어든 것 같아요. 그렇다고 다시 그 시절 동시상영관 가서 영화를 보라고 하면 살짝 으음...스럽기도 한 것이... ^^;
네.. 멀티플렉스가 깨끗하고 영화 보기엔 쾌적한 공간이지만 말씀하신대로 로망이 많이 줄어든거 같습니다. 이젠 익숙해져서 옛날 그 시절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가 쉽진 않을거 같네요. 사람이 아무래도 편하고 깨끗한걸 찾을테니.. ^^;
동시상영관이 모래내...은좌극장...이대에 대흥극장..주로 이곳에서 천녀휴혼.13일의 금요일..헬레이저.헬 바운드..주로 공포영화..홍콩영화..야한 영화..를 하루종일 봤던 기억이 나네요...그때 참 즐거웠는데..지금은 그 감흥이 사라져서 아쉽네요..추억의 동시상영관 하나 생겼으면...
그 당시 줄서서 2시간 기다리는 건 기본이고 람보 2와 인디아나 존스도 파고다 공원까지 줄섰던 기억이 납니다..^ ^
표를 사려고 줄서서 한시간씩 기다리던것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었네요. 쥬라기 공원 보려고 1시간 30분 줄을 섰던 기억이 있느데.. 그 기다리는동안 영화에 대한 설레임이...ㅎㅎ
마지막으로 갔던 동시상영관에서 해 준 영화가 '글래디에이터'랑 '데스티네이션'이었는데 전날 밤을 홀딱 새서 졸린 바람에 두 영화 모두 타이틀 시퀀스 밖에 보질 못했습니다.
그 전엔 '샤만카'랑 '폴라엑스' 동시상영을 보러갔다가 잔뜩 실망하고 온 기억도..ㅎㅎ
전 마지막으로 본 동시상영 영화가 어떤건지 기억이 안납니다. 대구에서 한번 심야에 미션 임파서블2,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하피 3ㅕㄴ을 동시에 상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무슨 이벤트로 상영을 했었던거 같은데.. 마지막 동시상영을 뭘 봤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ㅠ.ㅠ
전 쌍문동의 동광극장(나중에 신성극장으로 바뀌고 얼마 후 사라져 버린)이 기억에 남네요. '후라이트 나이트','브루스 브라더스' 동시상영으로 했었는데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지요. 그때의 감흥은 이젠 느낄 수 없고 아련한 추억만이..
잊을 수 없는 영화 후라이트 나이트 ㅠ.ㅠ 지금은 죄다 추억속으로만.. 가끔씩 그때가 그리울때가 ..
부산 온천장에 동성극장이 유명했죠..
제 중학교 시절.. 2편에 500원.. 나중에 천원으로 오르긴했지만..
극장 스크린과 객석수는 상당히 큰 규모였지만..
특이한건 여기서 일본애니 아키라를 상영했었다는점. 국내에 아키라 상영한 몇 안되는 극장중의 하나였음..ㅎㅎ
폭풍소년 포스터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싼 가격으로 영화 두 편 보는 매력이 상당했었는데.. 그래도 영화 무지 골라서 보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어릴적 헐크호건이 좋아서 헐크호건의 죽느냐사느냐를 동시상영극장에서 본 적이 있지요.
물론 재미없었지만^^;
그때 동시상영으로 본 엑설런트 어드벤쳐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o-;
저는 동시상영으로 잊을수 없는 것이 백투더퓨쳐 1.2.3을 한번에 몰아서 해주었던.. 보통은 액션 하나에 에로 하나 끼어서 할때가 많아서 미성년 시절에 정말 많이 봤었네요..
이수역 이수극장, 신림동 이름모를 극장, 노량진 일미일극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중 이수극장이 가장 오래 살아남았고, 지금은 놀라운 사운드로 유명한
씨너스 이수가 그곳에 들어섰으니 격세지감일 따름이네요^^
동시상영극장에서 본 가장 인상깊은 영화는 신림동 이름모를 극장에서 본
당시 초화제작 '쇼킹 아시아' 되겠습니다^^; (학생신분으로 보느라 고생했다는...ㅋ)
아.. 쇼킹아시아 추억의.. ^^; 저는 지방에서 그 영화를 보러 갔었는데 예상을 깨고 여성 관객들이 대부분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ㅎㅎ
저도 이수씨네마 기억나네요^^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결국 생각만 한 4년 하고 못갔죠...ㅡ,.ㅡ;
동시상영환은 예전에 송파에 호수극장(고3때쯤 문을 닫았죠)...에서
우뢰매 시리즈를 감상했었구요~
가장 최근은~ 스피드와 압솔롬 탈출이었네요^^ 당시3천원이었던걸로 기억나네요^^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촌형이랑 갔었는데... 그때의 추억이 기억에 남네요^^
아~ 제 여친은 동시상영관을 모르더군요~
그라인드 하우스 설명해주면서 이런극장이 있었다~ 라고 가르쳐 줬더니
모르더라구요~ㅎ
서울 목동 삼보극장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동시상영관들중 최근영화를 가장 빨리 걸어놓는 극장으로 기억하고있는데요
타 동시상영관보다 훨 싼 입장료로 학교 땡땡이칠때 자주 죽때리던 극장이였습니다
2편....500원에 볼수있었다는^^
모~~가끔 영화 상영이 중단되고
오프닝이 나오다 갑자기 THE END...가 나와 극장에서 땡땡이치던 많은 양아치들의 비아냥을 듣기도했었습니다
삼보티내냐???
500원냈다고 무시하냐??
이것도 극장이냐??
모 이런식의 쿨럭!!
아!!!지금 기억나는건
겨울 실내 난방을~~~~
연통난로로 했던 기억이 ^^
터미네이터1.깊음밤갑자기.인디아나존스..백퓨더퓨처.람보.13일의금요일1.2.3.4
버닝등등
수많은 영화들을 삼보극장에서 봤었네여 ^^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면 터미네이터1편이였습니다 그 시끄럽고 퀘한냄새가나던 극장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갔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