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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귀사리(鬼思里)
물속은 생각보다 차가웠고 시야도 탁했다. 용만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온 헤드랜턴의 불빛 한 줄기가 컴컴한 물속으로 위태롭게 뻗어나갔다. 헤드랜턴은 평소 운동과 레저에 관심이 많던 용만이 마음먹고 장만한 장비로 방수는 기본이고 고휘도 고효율의 최첨단 LED 랜턴이었다. 하지만 그런 랜턴의 불빛으로도 물속 시야는 채 15센티미터도 되지 않았다.
용만은 차체를 잡고 운전석 앞쪽으로 이동했다. 차는 저수지 바닥에 완전히 거꾸로 처박혀 있어 운전석 쪽은 의외로 수심이 깊었다. 그는 흙탕물을 휘저으며 저수지 바닥 운전석으로 다가가 손으로 더듬다시피 하면서 운전석 쪽의 문을 찾았다. 차창을 통해 어렴풋이 운전자의 형체가 보였다. 운전자의 시신은 차 안에 갇혀 물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용만은 손잡이를 찾아 문을 열었다. 차가 처음 물에 빠졌을 때는 차 문을 열기 어렵지만 차에 물이 완전히 들어차 안팎의 수압이 같아지면 비교적 쉽게 문을 열 수 있다. 문이 열리자 갇혀 있던 운전자의 시신이 부력에 의해 밖으로 밀려나왔다.
슬슬 숨이 가빠오자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한 용만은 시체를 위로 밀어 올리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남자가 번쩍 눈을 떴다. 물에 퉁퉁 불어 허옇게 변색된 남자의 얼굴이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놀란 용만이 참고 있던 호흡을 뱉어내자 입 안으로 한꺼번에 물이 들어왔다. 용만은 달라붙는 운전자의 시신을 밀어내려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눈을 뜬 남자는 엄청난 힘으로 용만의 목을 휘감고 매달렸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떼어낼 수가 없었다. 팔을 풀면 다리를 감아왔고 다리를 풀어내면 어느새 팔이 목을 감아오고 있었다.
스물일곱 해를 살아오며 온갖 기이한 일을 겪었지만 이토록 무서운 경험은 처음이었다. 입 안으로 계속 물이 밀려들어 오면서 점점 숨이 막혀왔다. 비명도 지를 수가 없었다. 탁한 물속 어둠 저편에서 무수히 많은 뭔가가 용만을 향해 헤엄쳐오는 게 보였다.
물에 붇고 물고기에게 뜯겨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을 한 무수한 시체들. 그들이 용만을 향해 다가와 하나 둘 손을 뻗어 매달리기 시작했다. 축축한 그들의 손길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 전해졌다. 용만은 절망적인 심정으로 수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5
물속에 들어간 용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선일은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무작정 저 컴컴한 물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그는 수영도 하지 못했다.
도로 쪽에서는 무시무시한 비명과 울부짖음이 들려왔고 섬광이 번뜩였다. 도로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수정은 도로변에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그녀 주위를 투명한 막이 둘러싸고 있었다. 박 영감이 은형법으로 결계를 쳐놓은 모양인데 그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소리쳐서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수정이 대답하는 순간 결계가 깨질 위험이 커 그럴 수도 없었다.
검이 운 것은 저수지 물이 갑자기 요동치며 거품을 뿜어내기 시작했을 때였다. 사인검에 새겨진 스물일곱 글자에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선일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간절하게 호소하는 그 느낌은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검이 울자 그 느낌은 더욱 생생하고 간절하게 변했다. 선일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검을 들고 노려보았다.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바로 검이란 생각이 들었고 용만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리란 짐작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일은 정말로 물이 질색이었다. 어린 시절 물에 빠져죽을 뻔했던 후로는 물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더더구나 저수지에 고인 이런 물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안 돼. 난 못해. 설혹 들어간다 해도 저런 컴컴한 물속에서 어떻게 그를 찾아?”
선일은 고개를 내저으며 마치 검에게 애원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다시 검이 울었다. 그 울음에 마음이 너무 아파 선일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싫어! 그만 해! 물속에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니깐!”
선일은 미친 사람처럼 혼자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발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맹세코 발을 내민 적이 없는데 몸이 주인의 의사에 반해 스스로 움직인 것이다.
“안 돼! 싫어!”
하지만 그의 발은 어느새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차가운 물의 감촉이 피부에 와 닿았고 발이 푹푹 빠지는 미끈거리는 바닥의 느낌이 너무도 끔찍했다. 선일은 다시 비명을 질렀다. 몇 발자국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물은 어느새 가슴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선일은 공포에 사로잡혀 황급히 심호흡을 하고 물속으로 머리를 담갔다. 물론 그의 의지는 아니었다. 섬뜩한 물의 기운이 전신을 휘감아왔다.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칠흑처럼 컴컴한 물속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려웠다. 금방이라도 뭔가가 더 깊은 물속으로 끌고 들어갈 것만 같은 공포가 일었다. 선일은 다시 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허우적거렸다. 검을 내던지려고 마구 손을 내저었다.
바로 그때 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사인검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이 탁하고 어두운 물속 시야를 환하게 밝혔다. 시야가 트이자 이상하게도 공포심은 사라졌고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제야 선일은 용만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았다. 용만은 불과 3, 4미터 앞에서 무수한 수귀(水鬼)에게 둘러싸여 버둥거리고 있었다. 물거품 속 용만의 얼굴은 공포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선일은 자기도 모르게 용만을 향해 더 깊은 물속으로 나아가 검을 휘둘렀다. 아니, 선일보다 검이 먼저 움직였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물속에서 검의 움직임이 그토록 빠를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무시무시한 검의 움직임에 수귀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선일은 용만의 손을 잡아 끌어올렸다. 잠깐 멈칫하는 순간 알 수 없는 기운이 두 사람을 수면 위로 밀어 올렸다.
간신히 물 밖으로 나온 용만은 격렬하게 구역질을 해댔다. 그들의 등 뒤에서 저수지의 물이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선일이 소리쳤다.
“여기 있으면 안 되겠어! 위로 올라가야 해!”
용만이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숨을 헐떡였다.
“난…… 못해요. 못할 것 같아요!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숨을 잘 쉴 수가 없어요!”
용만이 인상을 찡그리며 윗옷을 잡아 찢었다. 놀랍게도 그의 몸엔 손바닥모양을 닮은 시커멓게 멍든 자국이 무수히 남아 있었다. 용만이 몸을 떨며 말했다.
“온몸이 너무 아파요! 움직일 수가 없어요!”
“젠장맞을! 이건 영적인 상처야! 여기선 쉽게 치유할 수가 없다구!”
등 뒤에선 부글거리며 끓기 시작한 저수지물이 어느새 밖으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선일이 들쳐 업으려 했지만 용만의 덩치가 워낙 커 두 사람 모두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용만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아, 진짜 미치겠네!”
선일도 어쩔 줄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고통스러워하던 용만이 일순 잠잠해졌다. 선일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그래? 괜찮은 거야?”
하지만 용만은 바닥에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선일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다가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그의 몸이 얼음처럼 차가웠던 것이다. 천천히 일어나는 용만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눈에는 흰자위가 가득했다. 빙의나 환영을 당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했다.
그가 저수지를 향해 돌아섰다. 선일은 저수지와 용만을 번갈아보다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왜……왜 그래? 정신 차려!”
그러나 선일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용만은 저수지를 향해 발을 내밀었다. 놀란 선일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미쳤어? 저기 들어가면 다신 못 나와!”
하지만 용만은 선일을 밀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멈춰! 오용만! 정신 차리란 말야!”
힘으로는 도저히 당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용만이 물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였다. 다시 사인검이 울기 시작했다. 바닥에 꽂아놓은 사인검이 파르르 떨며 길게 울음소리를 냈다. 용만이 움찔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서자 선일은 얼른 달려가 검을 뽑아왔다. 선일이 검을 용만의 손에 쥐여주며 소리쳤다.
“자네 검이야! 이 검이 자넬 지켜주고 있으니 제발 정신 좀 차리란 말야!”
검을 손에 쥔 용만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잠시 몸을 떨던 용만은 고개를 들고 선일을 바라봤다.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온 그의 눈엔 뜻밖에도 물기가 고여 있었다.
“이제 정신이 드는 거야?”
용만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선일은 조용히 그를 물 밖으로 이끌었다.
“괜찮아?”
“예. 이 검이…… 제게…… 속삭이며 말을 걸었어요!”
“뭐라고 했는데?”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했어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고.”
선일도 검이 속삭인 그 말의 의미를 알 수는 없었다.
“그래. 아무튼 그 검은 보통 검이 아냐! 그런 명검의 주인이 이렇게 쉽게 주저앉아서는 안 되겠지!”
용만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비틀거리며 한 발씩 걸음을 내디뎠다. 선일이 그를 부축해 도로로 끌고 올라갔다. 그들이 힘겹게 도로 위로 올라섰을 때 수정이 달려왔다.
“괜찮아요?”
“난 괜찮아요. 그보다 영감님이!”
박 영감은 도로에서 악귀들과 대치 중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들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다. 박 영감은 결계를 치고 앞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영들을 온몸으로 막으며 힘겹게 버티는 중이었다. 뒤쪽에도 적지 않은 수의 영들이 있었다. 영들이 다가오는 것을 막고 있는 투명한 막에서는 푸른색의 기운이 출렁이고 있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채 끝도 없이 밀려드는 영들은 빛을 두려워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그대로 막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소멸하곤 했다. 영들의 음산한 비명소리가 어둠을 휘저었다. 영들이 소멸할 때마다 박 영감을 둘러싼 막의 빛은 희미해졌고 불안정해졌다. 저런 식이라면 결국 방어막은 무너질 것이다.
박 영감 역시 힘겨운 기색이 역력했다. 선일도, 용만도 엄청난 수의 영들에 완전히 압도당해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선일이 입을 열었다.
“내 평생 저렇게 많은 영들을 한꺼번에 보는 건 처음이야! 게다가 영들이 소멸된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결계에 자신을 내던지다니! 아무래도 영들을 조종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영감님이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아요!”
선일이 주머니에서 부적들을 꺼내며 말했다.
“저 많은 영들을 물리치는 건 불가능해. 혹 물리친다 해도 영들을 한꺼번에 소멸시킨 그 업장을 어떻게 다 감당할 거야!”
“그렇다고 이렇게 지켜볼 수만은 없잖아요!”
“물론! 일단 영감님 뒤쪽에 있는 영들이라도 물리쳐서 퇴로를 확보해야지! 어이, 차수정! 자네는 차를 빼서 갖다 대! 지금 우리한테 최선은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는 거야!”
선일이 먼저 도로 위로 올라섰고 그 뒤를 용만이 따랐다. 선일이 부적을 날리며 주문을 외우자 공기의 움직임이 변하며 영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부적이 뿜어낸 기운이 영들을 두렵게 만들고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 영감의 뒤에 몰려 있던 영들이 동요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용만이 사인검을 앞세운 채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용만은 달려드는 영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 모습은 마치 지옥의 야차 같았다.
선일이 소리쳤다.
“영감님! 얼른 오세요!”
박 영감은 주문을 외워 결계에 한 번 더 기운을 실은 후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가 물러나자 결계의 장막은 금방 흐릿해지고 불안정해졌다. 선일에게 온 박 영감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제 곧 결계가 무너질 거야! 다시 결계를 칠 기운도 없지만 있다 해도 저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어. 결국은 우리가 지는 싸움이야!”
“알아요! 지금은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최선이죠.”
그때 수정이 차를 그들의 앞으로 갖다 댔고 박 영감과 용만은 황급히 올라탔다. 선일은 부적으로 또 다른 방어막을 쳤다. 선일이 바닥에 부적을 깔고 주문을 외우자 순식간에 도로를 가득 메우며 불길이 치솟았다. 물론 현실의 불이 아닌 영적인 존재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다른 차원의 불길이었다. 선일이 차에 올라타며 소리쳤다.
“전속력으로 달려!”
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박 영감의 결계가 무너졌다. 그러자 영들이 봇물처럼 밀려들었다. 영들은 선일의 불길에 몸을 내던졌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불덩이로 변한 영들이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리거나 소멸되는 끔찍한 장면이 이어졌다.
엄청난 굉음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저수지에서 물기둥이 솟구쳐 오른 것이다. 물기둥은 마치 괴물처럼 꿈틀거리며 도로를 덮쳤다. 선일이 쳐놓은 불의 장막이 물기둥에 의해 단번에 무너졌다. 선일의 방어막마저 무너지자 영들은 무서운 기세로 그들을 쫓기 시작했다.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앉아 있던 박 영감이 경직된 음성으로 말했다.
“저건 단순한 잡귀들의 장난이 아니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서운 일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어. 세상의 악의 기운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단 말야. 어쩌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불길한 일이 곧 시작되려는 것인지도 몰라.”
용만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까 사인검도 비슷한 소리를 제게 속삭였어요!”
“저렇게 엄청난 수의 영들이 저승으로 들지 못하고 뭉쳐 있다는 건 저승에 변고가 생긴 게야. 저승에서 일어난 변고가 이승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모든 영들이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저렇게 똑같이 움직이는 것도 유례가 없어. 정체는 알 수 없지만 거대한 악의 세력이 뒤에서 조종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지. 머지않아…….”
“저기 밖에!”
선일의 외침에 박 영감이 입을 다물었고 모두의 시선은 일제히 차창 밖으로 향했다. 저수지의 물이 성난 바다의 그것처럼 요동치고 있었고 그 위로 먹구름 같은 거대한 기운이 뭉쳐지고 있었다.
“대체 저게…… 뭐죠?”
용만이 얼빠진 음성으로 물었다. 박 영감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더니 대답했다.
“이 땅에 악의 기운이 본격적으로 창궐하려나 보다. 귀사리가 바로 그 근거지이자 통로인 게야, 저승과 이승을 이어주는. 저 기운은 저승에서 넘어온 기운들이야!”
“저승이라구요?”
용만이 반문했다. 선일은 바싹 쫓아온 영들을 돌아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더 빨리!”
수정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자꾸 재촉하지 말아요! 이러다 사고 나서 먼저 죽겠어요!”
실제로 차는 지금도 위태로워 보였다. 안개가 자욱한데다 폭우까지 퍼붓는 도로를 시속 100킬로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차는 커브를 돌 때마다 바깥으로 밀려나 도로를 이탈할 것처럼 아슬아슬한 순간을 연출했다.
안개가 자욱한 뒤쪽에서 불빛이 번뜩였다. 승용차보다 높은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연신 뒤에서 깜빡거렸다.
트럭이었다!
박 영감이 구자인법의 장벽으로 물리쳤던 바로 그 트럭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수정이 소리쳤다.
“저거 아까 그 트럭 아니에요?”
선일이 뒤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맞아. 그 트럭이야! 영감님, 이제 어떡하죠? 언제까지…….”
선일이 조수석에 앉은 박 영감을 돌아봤지만 그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기운의 소모가 생각보다 훨씬 컸던 모양이었다. 하긴 환갑에 가까운 사람이 그 많은 영들을 혼자서 막으며 버텼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트럭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왔다. 차량과의 거리는 급격하게 좁혀졌다. 급기야 트럭은 바로 꽁무니까지 다가와 일행의 차를 들이받았다. 충격과 함께 수정이 비명을 질렀고 차가 휘청 하고 방향을 잃었다. 뒷좌석의 선일이 황급히 핸들을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똑바로 앞을 봐!”
차는 위태롭게 흔들리다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용만이 소리쳤다.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트럭이 정말로 우리 차를 들이받을 수가 있어?”
수정이 백미러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또 와요!”
돌아보니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오고 있었다. 현실에선 절대로 불가능한 속도였다.
“밟아! 더 힘껏!”
“못하겠어요!”
“할 수 있어!”
트럭이 그 거대한 몸체로 막 차를 들이받는 순간이었다. 전면에 ‘귀사리 2Km’라는 이정표가 시야에 들어왔다. 트럭이 차를 들이받은 충격이 전해지자 수정도 용만도 선일도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차는 무서운 속도로 이정표를 지나쳤다. 그런데 이정표를 지나치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도로에 자욱하던 안개가 사라졌고 폭우도 거짓말처럼 뚝 그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트럭에 받혔을 때의 강력한 충격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정표를 지나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던 차의 속도도 갑자기 떨어졌다. 선일이 소리쳤다.
“수정아! 브레이크!”
차는 위태롭게 회전하며 미끄러지다 간신히 멈춰 섰다. 잠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봤지만 그 어디에도 트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 정신이 들었는지 조수석에 앉아 있던 박 영감이 문을 열고 내렸고 다른 일행들도 모두 뒤따라 내렸다.
저 앞에 ‘귀사리 2Km’라는 이정표가 환상처럼 서 있는 게 보였고 그 이정표 너머에서는 여전히 푸른 안개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정표는 안개 속으로 묻히듯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정표가 사라지자 그 너머의 안개도 흩어지며 사라졌다. 마치 이정표를 경계로 서로 다른 세상이 공존하는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었다.
박 영감이 힘겹게 이정표를 향해 걸음을 옮기자 일행들도 그 뒤를 따랐다. 박 영감은 이정표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말했다.
“저 너머는 다른 세상이야. 귀사리엔 이승과 저승이 공존하고 있는 게 확실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수정이 물었다.
“네? 그럼 우리가 방금 저승 땅을 밟았단 소린가요?”
“엄격히 말하면 저승 땅은 아니지만 점점 저승 땅으로 변하고 있어!”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원래 귀사리는 이승 땅이었지만 지금은 저승의 존재들이 점거를 하고 저승의 기운이 그 통로를 통해 흘러들고 있으니 점점 저승 땅으로 변하고 있다고 봐야지. 영적인 존재에 불과한 트럭이 우리 차를 물리적으로 들이받을 수 있었던 것도 저곳에 이승과 저승의 차원이 공존하기 때문이야. 말하자면 귀사리라는 공간 자체가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셈이고, 앞으로 그 경계는 점점 넓어질 게야!”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금 저승의 존재들이 이승으로 쳐들어와서 땅을 빼앗고 있다는 얘긴가요?”
“땅이 아니야. 공간이지. 무슨 이윤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군. 어쩌면 이승과 저승 간에 영적인 전쟁이 일어날지도 몰라!”
일행의 얼굴에 공포감이 서렸다. 선일이 물었다.
“귀신들과 전쟁을 해야 한단 소리죠? 하지만 이승엔 그런 영적인 전쟁을 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도 않고 그럴 만한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까?”
박 영감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멀쩡해 보이는, 귀사리로 들어가는 도로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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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액막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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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개 읽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읽느라고 취침 시간을 넘겨버렸네요ㅎㅎ 마치 현실 어딘가에서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어요ㅎㅎㅎ
항상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소재가 흥미롭군요.^^
박노협/ 늘 응원의 글 올려줘서 고맙습니다^^
망부석/ 독자에게 그런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반갑네요.
지심/ 네, 즐겁게 읽으시길...
귀사리 다음편은 언제 연재되나요? 너무 궁금한데...혹시 액막이랑 내용이 합쳐지는 건가요??ㅎㅎ~재밌게 잘 읽고있습니다~^^
다음편 기대 되요. 짱 재미있습니다.
근데 읽으면서 느끼는거지만 퇴마록시리즈랑 넘 흡사한것 같네요
칼도그렇고, 사건뒤 그걸 보는 능력도 그렇고..... 인물하나 하나 능력도 그렇고 .. 퇴마록 전집을 다봤거든요
그래도 나름 색다르고 넘 잼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