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은 좋지만 뒷심이 부족해
<쉬버>의 주인공 산티는 포르피린증 환자입니다. 현실세계의 뱀파이어인 거죠. 약한 햇볕에 노출되어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 있는 병이라, 산티는 번역가인 엄마 훌리아와 함께 햇빛이 적은 북쪽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갑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가축 살해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죠. 마침 산티가 이사를 왔을 때 그 사건은 살인사건으로 번지고, 마을 사람들은 산티를 의심합니다. 산티는 동네 형사 딸인 앙헬라와 도시 친구 레오의 도움을 받으며 진실을 추적합니다.
중반까지 영화는 흥미진진합니다. 모습을 보이지 않고 소음과 흔적만으로 존재하는 살인마는 섬뜩하죠. 미스터리는 범인이 밝혀질 때까지 관객들의 시선을 끌고요. 주인공 산티와 친구들은 모두 귀엽고 호감가는 사람들이며 컴컴한 계곡 마을의 분위기는 근사합니다. <프레데터>에서부터 <블레어 윗치>까지 먹성좋게 모방하는 스타일은 조금 뻔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잘한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살인마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맥이 좀 풀립니다. 설정은 나쁘지는 않아요. 하지만 살인마가 물리적으로 위협적인 존재로 보여지지 않아서 문제가 있지요. 여전히 과거에 일어난 살인사건은 섬뜩하지만 정체가 밝혀진 뒤에도 주인공들이 그 살인마를 제압하지 못한다는 건 믿겨지지 않는단 말입니다. 각본도 그 사실을 알아서 또다른 비밀을 제시하긴 하지만 그래도 설정 자체의 문제점이 커버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영화는 야심이 참 없어요. <엑스 파일> 단독 에피소드로 하나로 충분한 이야기입니다.
제 생각에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인공 산티의 병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다는 것 같습니다. 도입부의 설정을 제공하고 중간중간에 위기상황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이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야기는 끝까지 달리긴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비어있는 느낌입니다.
기타등등
복사골에서 봤는데, 다른 채널들의 사운드에 비해 전면 대사들이 너무 작게 들려서 불편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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