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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밍량의 페르소나 이강생의 연출작

나는 처음 극장에서 차이 밍량의 <애정만세>를 보았던 때를 기억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양귀매는 오래 걸어서 공원의 한 벤치로 가서 앉는다. 그리고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그 기나긴 롱테이크 장면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왜 그렇게 타이페이의 거리는 황량한 것일까? 그 양귀매와 함께 나왔던 이강생은 왜 그렇게도 ‘없어’ 보였을까? 차이 밍량의 영화에 이강생은 계속 출연을 했다. 이강생이 없는 차이 밍량 영화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런 이강생이 영화감독이 되었다. 그의 데뷔작은 <The Missing>이었다고 하는데 못 보았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영화인 <도와줘 에로스>(Help Me Eros)가 싱가포르에서 개봉했고 단 두 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다.

이강생이 연출한 이 영화의 Executive Producer는 바로 차이 밍량이다. 어찌되었든 이강생은 차이 밍량의 영향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이다. 언뜻 보아도 이강생의 영화는 차이 밍량의 작품들과 닮아 있다. 이강생은 주연을 겸하고 있는데, 이제 그도 나이가 든 티가 난다. <청소년 나타>나 <애정만세> 때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가는 세월을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는 여전히 ‘없어 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한 때 증권으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빈털터리가 된 남자. 바로 이강생이 연기하는 캐릭터이다. 그는 차이 밍량의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말도 거의 하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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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집에 대마를 키운다. 살아가는 유일한 낙은 대마를 피우고, 대마를 심은 화분이 있는 곳에 머리를 들이밀고 그 향기를 맡는 것뿐이다. 물론 혼자 살고 있는 남자인 만큼 그는 성적인 판타지를 안고 있다. 그는 자주 상담원에게 전화를 건다. 뭐 인생문제를 상담하는 곳인 것 같다. 그의 전화를 받는 여자는 뚱뚱하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안지 않는다. 대신 젊은 남자를 집으로 데려와 같이 살고, 그 어린 남자와 여장을 하며 좋아한다. 고독과 소외에 시달리는 뚱뚱한 여성은 역시 고독하고 소외된 남성에게 용기와 격려를 보내야 한다. 일이므로.

이강생은 자신의 전화를 받아주는 여자가 뚱뚱한 여성의 동료인 이쁘고 날씬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를 따라다니기도 한다. 고독과 소외와 더불어 오해까지 겹쳐지는 삶인 것이다. 이강생에게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만의 타이페이는 좀 독특한 형태의 판매대가 있다. 이 영화에서 나도 이것을 처음 보았다. 길가에 있는 가라오케 앞에서 매우 야한 옷을 입은 여자가 앉아 있다. 지나가던 차가 멈춰 서서 담배나 과자 비슷한 것을 달라고 하면 그것을 파는 여자들이다. 복장만 본다면 사창가에 있는 여자들인데 그렇다고 매춘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 사람들에게 가라오케 안으로 들어가라고 권유하지도 않는다. 단지 담배나 대만식 과자 같은 걸 팔기만 한다. 이강생은 그 여자들 중의 한 명과 거의 서커스에 가까운 체위로 섹스를 한다. 그 체위는 요가의 대가 혹은 서커스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한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 같지만 당연히 그 관계도 오래 가지 못한다.

소외된 사람들의 외로운 이야기

차이 밍량의 영화도 그렇지만, 이강생의 영화에 나오는 타이페이의 거리는 정말로 황량하다. 그 풍경 자체는 서울이나 홍콩, 싱가포르, 방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큰 도로가 있고 밋밋한 건물들이 서 있으며, 새로 지은 현대식 쇼핑몰이 있다. 큰 도시라면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내면의 풍경이 황량하기 때문에 그 도시의 풍경 역시 황량할 수밖에 없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강생은 가지고 있던 노트북과 텔레비전을 전당포에 팔고 그 돈으로 로또를 산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리의 여자들과 섹스를 하고 대마초를 피우고 로또를 사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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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생의 영화는 차이 밍량의 작품들처럼 느린 흐름과 롱테이크 장면들도 가득 차 있다. 성적인 판타지를 표현하는 장면은 얼마 되지 않고, 섹스를 하는 장면도 몇 개 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어기적어기적 힘없이 걸어가는 이강생의 모습과 황량한 거리 풍경들이 이어진다. 영화의 메시지를 채우는 것은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요리나 동물에 관한 프로그램들이다. 큰 생선을 잘라서 만든 요리가 접시에 담겨졌는데, 생선의 입은 계속 움직인다.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그 생선이 하는 말이 “Help me!"일 것이라고 말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 역시 ‘Help me!"라고 외치지만, 그 누구도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전화상담원처럼 죽지 말라고 말하면 매우 성의 있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제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도 상영된 것 같다. 과연 한국에서 정식 개봉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타이페이와 서울은 그 황량함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서울은 사람을 고립된 후 혼자 있지 못하게 하고 광장으로 뛰쳐나오게 만드는 정부가 있다는 것이,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곳이긴 하다. 이강생은 또 다른 차이 밍량으로서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 같다. 어쨌든 이 영화를 본 후 그의 다음이 어떨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Posted by Ryu Sang 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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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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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콜드케이스 2008/07/21 19:26

    좋은 내용은 언제나 감사하다

  2. 이미지 2008/07/21 20:44

    스틸 이미지들이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인물들이 굉장히 쓸쓸하게 느껴지는... 개봉이 될까요?
    매번 류상욱님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Ryu Sang Wook 2008/07/21 22:17

      차이 밍량의 영화들이 꾸준히 소개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혹시 한국에도 개봉이 될지 모르겠군요. 싱가포르의 극장에는 아마도 대만에서 이주했는지 모르는 중국인들, 특히 나이든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러 왔더군요. 현대적인 도시에서 더 쓸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차이 밍량과 이강생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은 쓸쓸해질 겨를이 없어보이는 도시이긴 하지요. 그리고 댓글 고맙습니다.

  3. 지옥인간 2008/07/22 16:37

    제 취향에 잘 맞는 영화 같습니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으련만.. 한국 개봉도 기대해 보죠. 좋은 영화 소개 감사합니다.^^

  4. 조조할인 2008/07/23 09:26

    삶이 공허하다고 느낄땐 이런영화들이 위로가되죠~ ^^
    이참에 차이 밍량 영화들도 한번 접해야겠네요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