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으로 한 교훈극
탁월한 스토리와 캐스팅
영화 시작하기 전에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는 자막이 뜨는데, 그 말 맞습니다. <파고>처럼 막연하게 비슷한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정도가 아니에요. 정말 영화 속에서 일어난 것과 아주 흡사한 사건이 2001년 10월 26일 텍사스에서 있었어요. 샨테 자완 말라드라는 흑인 간호보조사가 나이트클럽에서 술도 마시고 약도 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그레고리 빅스라는 백인 노숙자를 차로 받아버린 거죠. 남자의 몸은 충돌로 차창에 박혀버렸고 그녀는 그 상태로 집까지 운전한 뒤 차를 차고에 집어넣었습니다. 말라드는 경찰이나 병원에 연락하지 않은 채 빅스를 방치했고 빅스는 차창 안에 끼인 채로 죽었습니다. 말라드는 친구들을 불러 시체를 공원에 버렸는데, 몇 달 뒤 그만 파티에서 백인 남자를 차로 친 적이 있다고 떠드는 통에 발각되었지요.
스튜어트 고든은 <스턱>에서 이 사건의 기본 설정을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합니다. 주인공 브랜디는 말라드처럼 간호보조사이고 말라드와 아주 비슷한 상황에서 교통사고를 내죠. 단지 브랜디는 백인이고 이 영화에서 빅스 역할을 하는 토머스 바르도는 방세를 내지 못해 방에서 막 쫓겨난 화이트 컬러 실직자로 설정이 바뀌었습니다. 첫 번째는 불필요한 인종적 이슈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장치일 텐데, 그래도 영화를 보다보면 미나 수바리가 흑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가끔 듭니다.
물론 진짜로 달라지는 건 사고 당시의 상황이 아니라 사고가 일어난 이후의 전개입니다. 바르도가 정말 빅스처럼 죽어버린다면 드라마는 <C.S.I.> 에피소드가 가 되어버리겠죠(실제로 이 사건은 2시즌 에피소드 'Anatomy of a Lye'의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바르도는 쉽게 죽지 않습니다. 끈질기게 살아남아 고통을 겪고 브랜디를 자극하지요. 드라마가 생기는 겁니다.
이 영화의 브랜디는 실제 사건의 말라드보다는 관객들이 동조하기 쉬운 인물입니다. 약하고 술마시고 전화까지 걸면서 운전을 한 건 정말 나쁜 짓이고 차창에 사람이 박혔는데도 그대로 집으로 돌아온 건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나쁜 짓이지만, 영화는 브랜디의 행동이 사악함보다는 어리석음과 공포, 무책임함에 기인하고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영화 중간중간에 브랜디는 병원에 잠시 들르기도 하고 전화를 걸려고 시도하기도 해요. 그것들 중 어느 하나만 했어도 파국은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교차로에서 계속 나쁜 쪽만 선택하다보니 일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립니다.
그러나 브랜디가 겪는 고통은 토머스 바르도가 겪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르도의 드라마는 거의 카프카적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한 회사에서 존경받는 일을 하던 양복쟁이 지식 노동자가 회사에서 잘려 노숙자가 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그만 벌레처럼 남의 차 유리창에 박혀버린 겁니다. 그러면서도 아직 살아있어요. 피를 철철 흘리고 고통을 겪으면서요.
영화는 일차적으로 브랜디와 바르도의 대결을 다루고 있지만 진짜 대립은 바르도와 우주 사이에서 벌어집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전우주가 바르도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아요. 그에게 엄청난 고통과 모욕을 주는 것만으로 모자라 약간의 희망을 주었다 빼앗았다 하면서 계속 그를 자극하지요. 매저키스틱한 실존주의자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음울한 삶의 은유인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보다 현실적인 교훈담이기도 합니다. 브랜디도 그렇고 바르도에게 잠재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던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 이런 상황은 결코 보편적이어서는 안 되지요. 아무리 우리가 각자의 입장 때문에 이기적인 방관자로 빠지기 쉬워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고든은 이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회학적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에 영화는 고든이 속해 있는 현대 미국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 역할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차창에 벌레처럼 박혀버린 남자의 이야기이니 그렇게 영화적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든과 공동각본가 존 스트리식은 이 제한된 설정 안에서 최대한의 드라마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후반부에 가면 지금까지 얽어놨던 모든 문제들을 한 방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티가 나긴 해요. 하지만 그 한 방 역시 논리적이고 거기까지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설득력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선을 돌리기가 힘들죠. 그만큼 아슬아슬하고 웃기고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특히 마지막은 주의하시길. <스턱>은 주류 공포 영화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스튜어트 고든이 피투성이 육체를 가지고 노는 버릇을 포기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세계의 있을 수 있는 고통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 더 아프죠.
배우들, 특히 두 주연배우 미나 수바리와 스티븐 리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이상적으로 캐스팅되었고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지요. 리야 원래부터 좋은 배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미나 수바리가 이처럼 좋았던 영화는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기타등등
1. 아미커스가 제작한 스튜어트 고든의 2007년 신작이라니... 시간여행이 괴상하게 얽혀 있는 것 같아요.
2. 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라는 샨테 자완 말라드도 이 영화를 한 번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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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리...설마 저기서도 경찰은 아니겠죠..^^; 워낙 인상깊어서..
교통사고 당해서 죽을 때까지 생고생하는 실직자 역할이라던데요..^^
토요일 마지막회 막차탔어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