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공포의 세계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뿌리째 뽑힌 고목이 창문을 뚫고 작업실로 날아 들어오고 옆집에서는 잘난 척하던 변호사가 애지중지하던 자동차가 박살이 난다. 그러나,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는 일어난 이 아닌 밤중의 난리법석은 마치 태평양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시작한 나비의 비행처럼 대재앙을 알리는 작은 소동에 불과한 것이었다. 진짜 비극은 폭풍우처럼 요란스럽지 않게. 오히려 소리 없이 다가와 우리를 에워싼다. 그리고 세계는 천천히 변화되어 간다. <헬레이저>의 핀헤드가 그토록 염원하던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주인공 데이빗(토마스 제인)은 갑작스런 폭풍우가 몰아친 다음 날 식료품을 사기 위해 어린 아들 빌리(나단 갬블)와 옆집 변호사와 함께 장을 보러 나간다. 자신이 보게 될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아내에게 사랑스런 인사를 건네고 시내로 향한다. 간밤의 폭풍우로 인해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인 그곳에 갑자기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뛰어 들어온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안개-이 마트 주위를 뒤덮는다.
그 남자는 안개 속에 정체불명의 무엇이 있다며 사람들에게 마트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두 아이를 집에 두고 온 한 여자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돌아가겠다고 얘기하지만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바래다주려 하지 않는다. 자욱한 안개 너머로 그녀는 사라지고 마트 안에 남은 사람들 사이에는 안개보다 더 침침하고 음산한 절망감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영화 <미스트>가 주는 공포는 슬래셔 영화의 그것처럼 머리카락을 쭈뼛하게 만드는 찰나적인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전면적이고도 압도적인 공포의 세계다. 어둠이 빛을 삼키듯 안개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 모든 세계를 삼키고 완전히 다른 세계로 바꿔 놓는다. 마트 안에 갇힌 사람들은 폐쇄공포증에 시달리지만 그들이 밖으로 나갔을 때 그것이 전지구적인 광장공포증으로 바뀔 것이라는 황당한 사실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카모디(마샤 게이 하든) 부인이 이끄는 광신도들을 뒤로 하고 탈출한 데이빗 일행이 느끼는 절망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시각적인 측면에서 <미스트>는 대단한 스펙터클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개 속에서 서서히 등장하는-촉수에서부터 거대거미,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괴수에 이르기까지-괴물들은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곤충과 동물들의 변형이라는 측면에서 SF영화에서 등장하는 듣보잡 괴생물체들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고 섬뜩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사라진 수백 년만 후에 지구를 지배하게 될 진화된 생물체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실제로 생물학자들이 예측하는 미래의 지구 생물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상당히 있다).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이 언급하듯 <미스트>는 다이내믹한 비주얼에 집중하는 현대 재난영화의 경향보다는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등장인물들의 갈등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던 <타워링>이나 <포세이돈 어드벤처> 같은 70년대 재난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사이비 교주와도 같은 모습의 카모디 부인이 대중의 지지를 얻고 종내 거대한 세력이 되어가는 모습이 영화의 상당 시간을 차지한다는 것이 그 점을 증명한다. 마치 요한계시록의 예언처럼 마트 밖의 세상은 안개와 괴생명체들에 의해서 아비규환으로 변해가고 마트 안에서는 구세주를 가장한 적그리스도가 혹세무민하는 셈이다.
어렸을 적 영화 <혹성탈출>에서 쓰러진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울부짖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거의 잠을 못 이룬 적이 있었다. 영화 <미스트>의 엔딩을 보고 있노라면 찰톤 헤스톤이 모래를 훌훌 털고 와서 위로를 해줘야 할 지경이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낄 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장담컨대 <미스트>의 데이빗보다 더 암울한 결말을 맞이하는 영화 속 주인공을 찾기란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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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주인공이 갖고 있는 용기가 너무 슬펐던 영화!!!
해프닝을 보면서 미스트가 불현듯 떠올랐더랬습니다.

두 영화 약간의 비슷한 느낌이 있죠.
밑도 끝도 없이 재앙과도 같은 사건이 닥치고
어느정도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런 상황에 휘말린 사람들을 그려낸다는 점
(물론 여러가지 측면에서 미스트가 더 뛰어나고 잘나온 수작입니다만 여튼..^^
그리고 주인공들의 입장에선 정말 밑도끝도 없이 재앙이 끝나버린다는 것.
결말의 차이는 데이빗과 엘리엇의 선택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라고 보여집니다.
엘리엇은 극한 상황에서 한걸음 내딛고
데이빗은 비장한 선택이긴 해도 결국은 한걸음 물러난거겠죠.
그것은 크나큰 차이로 둘에게 서로다른 결말을 가져왔습니다.
뭐 사실 엘리엇의 경우는 그저 환상론이나 이상론쪽에 가깝고
데이빗쪽이 현실에 가깝겠지만 그래도 이상론이 조금은 더 행복한걸요^^
그리고 사실 데이빗의 결과가 좋지는 않을거라고 어느정도 초반에 예상했습니다.
극초반 도입부에 데이빗이 폭풍을 피해 가족을 챙겨떠나고 남겨진 그림.
그리고 아침에 남겨진 참담한 결과물.
그는 보다 중요한 무언가(가족의 안전)를 위해 한순간의 선택으로 나머지(그림-생계)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부서졌죠.
아들을 위해(정확히는 아들의 안전) 또다른 자식을 생각하는 한 어머니를 도움을 바라는 눈길을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영화내내 그의 부서진 집에 홀로있는 아내는 아들에 밀려, 극한 상황에 밀려 그의 마음속에서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마지막엔 미약해서 존재할것 같지도 않는 희망은 생각조차 되지 않았고 현실에의 도피를 선택합니다. 도입부의 그림처럼 이번에 버린건 자신이었죠.
그리고 남겨진건 그날 아침의 방안의 참상처럼 미칠듯한 결말이었습니다.
순간 스쳐가는 생존자들을 싫은 차에서 그를 바라보는....
모두에게 외면 받으면서도 자식들을 구하겠다고 나갔던 아주머니의 모습을 잊기가 정말 힘들군요.
이 아주머니야말로 해프닝의 엘리엇과 같은 한발짝 나아가는 선택을 한 분...
아아 결국은...이상론인가요....ㅎㅎ;
엘리어스/ 님의 댓글을 보니 저도 두 영화의 이야기가 비슷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치 엘리어트의 모습이 <미스트>의 아줌마에 대한 주석인 것처럼요. 암튼 결국은 사즉필생, 이순신 말씀인 것일까요? ^^
아무래도 소설의 열린 결말이 더 낫지 않나하는 생각이... 영화는 좀 억지 결말이라는 느낌입니다. 그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전혀 아니거든요. (차 문만 잘 닫고 버틸때까지 버티는 방법도 있고요.) 생존성과 합리성을 줄곧 추구해 오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어이없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게... 그것도 이성을 잃은 모습이 아니라 극히 차분하게 말이죠. 소설과 다른 결말을 지어야 한다는 강박심에서 좀 무리수를 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