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키델릭한 분위기의 오컬트 호러
<모든 어둠의 색깔>... 제가 한 거지만 제목 번역이 별로네요. 이탈리아 어로 읽으면 더 근사하게 들릴 겁니다. <Tutti i colori del buio>. <All the Colors of the Dark>라고 영어로 읽어도 낫고. 무슨 뜻이냐고요? 뜻 따위가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영화의 무대는 영국. 이탈리아 호러 영화를 보면서 유럽 지리를 익히는 순진무구한 외계인들이 있다면 영국이 지브롤터 어딘가에 있는 지중해 섬나라일 거라고 착각하겠죠. 하여간 실제로 영국에서 찍었고 설정상 주인공들도 몽땅 영국인인데, 주연배우들 중 영국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겁니다. 수잔 스코트나 조지 힐튼 같은 배우들의 영어 이름에 속지 마세요. 수잔 스코트의 본명은 니베스 나바로, 조지 힐튼은 호르헤 일 아코스타 이 라라죠. 적어도 에드위지 페네크는 가짜 영어 이름은 쓰고 있지 않아요. 쓴다고 해도 누가 믿겠습니까만.
아직도 본론에 못 들어갔네요. 한 마디로 요약 정리하면 이 영화의 내용은 '에드위지 페네크 괴롭히기'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이 사람 나오는 대부분의 지알로 영화들이 그렇지 않냐고요? 그렇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집중도가 더 높아요. 일단 살인장면들이 적죠.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안 죽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정작 그 사람들이 죽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아요. 지알로 장르에서 희생자는 살해당하는 바로 그 순간만큼은 주인공이잖아요. 이 영화에서 그들은 그럴 기회를 차단당합니다. 그만큼 에드위지 페니크의 캐릭터 제인 해리슨을 괴롭히는 게 중요해요.
제인 해리슨의 고난은 철저하게 주관적입니다. 이 사람은 얼마 전부터 파란 눈을 한 정체불명의 스토커가 칼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걸 자꾸 봐요. 그게 진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인지, 꿈인지는 자기도 모르죠.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지만 그렇다고 증상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이웃 아파트에 사는 메리라는 여자가 제인에게 암흑미사를 하는 밀교단체를 소개시켜주는데, 그 단체에 가입한 뒤로 제인의 정신은 더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나중에 정리가 되긴 하냐고요? 뭐, 시도는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관객들이 모두 무릎을 탁 치면서 "아, 맞아, 그랬어!"라고 탄성을 지를만한 해답은 절대로 아니에요. 그 뒤에도 제인을 둘러싼 세상은 수상쩍어 보이고 기분은 기분대로 찜찜하며 분명 뭔가 빠진 것 같죠. 에르네스토 가스탈디의 기준으로 계산하더라도 결코 치밀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지만 상관 없어요. 오히려 치밀하지 않으면 더 좋지요. 이 영화는 이치에 맞는 추리물이 될 생각 자체가 없어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선이 깨어지는 대혼란 속에서 주인공 제인 해리슨이 겪는 공포를 최대한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면 목적 달성이지요.
영화는 그냥 약 먹은 것 같아요. 70년대 풍으로 사이키델릭해요. 엉터리 정신분석과 (아마도 만든 사람들의?) 약물경험이 멋대로 섞여서 헤롱헤롱하고 어지럽고 그렇습니다. 그게 처음부터 끝까지 가요. 도입부에 나오는 제인의 악몽부터 그런 걸요. 마르티노는 영화를 만들면서 <로즈마리의 아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는데, 양적으로만 따진다면 마르티노의 영화가 더 심하죠. 적어도 <로즈마리의 아기>는 악몽에 현실적 기반을 달아주긴 하잖아요. <모든 어둠의 색깔>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몽입니다.
다행히도 이 악몽은 상당히 재미있어요. 많이 음란하고 변태스럽고 모욕적이지만 그만큼 먹히는 아이디어들도 많고 서스펜스도 훌륭하단 말이죠. 제 생각엔 이 작품이 마르티노 경력의 절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는 이 영화 이후에도 여러 재미있는 장르물들을 만들었지만 이 영화만큼 자신의 창의성을 총동원한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적어도 제가 본 영화들 중에는. 더 재미있는 마르티노 영화를 보셨다면 알려주세요.
기타등등
생각해보니 이탈리아인들이 영국 배경의 영화를 만드는 걸 무작정 놀려대는 것도 불공평해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만 가도 이탈리아인인 척하는 영국 배우들이 부글거리잖아요.
'리뷰 > 미스터리 / 스릴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턱 - Stuck (2007) (3) | 2008/07/23 |
|---|---|
| 쉬버 - Eskalofrío (2008) (0) | 2008/07/23 |
| 스턱 - Stuck (2007) (6) | 2008/07/19 |
| 핏방울 떨어지는 집 - The House That Dripped Blood (1971) (0) | 2008/07/18 |
| 미스트 - The Mist (2007) (4) | 2008/07/17 |
| 모든 어둠의 색깔 - Tutti i colori del buio (1972) (0) | 2008/07/16 |
| 노크: 낯선 자들의 방문 - The Strangers (2008) (0) | 2008/07/09 |
| 로라의 시선 - Eyes of Laura Mars (1978) (0) | 2008/07/09 |
| 피투성이 아이리스 사건 - Perché quelle strane gocce di sangue sul corpo di Jennifer? (1972) (0) | 2008/07/05 |
| 마인드헌터 - Mindhunters (2004) (3) | 2008/06/30 |
| 섹소시스트 - L' Ossessa (1974) (19) | 2008/06/29 |
|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
|
|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