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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소녀를 만나다

2006년의 늦겨울, <스윙걸즈>와 <린다린다린다>를 한 달 간격으로 보면서 두 영화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소녀들이 일본영화를 구원하고 있었는데, <스윙걸즈>가 대중적인 코드를 갖춘 코믹영화라면, <린다린다린다>는 성숙한 성장영화였다. 극장문을 나서며 나는 옆 사람에게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린다린다린다>가 야구치 시노부의 <스윙 걸즈>보다 몇 배는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별을 네 개 주었지만, 2006년의 베스트 리스트엔 넣지 않았다(왜 그랬을까?). 2007년 부천영화제에서 야마시타의 다음 작품 <마츠가네 난사사건>을 보았다. 걸작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 막차를 타려고 황급히 뛰어나가다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들어오던 감독과 부딪혔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궁금한 걸 모두 묻고 싶었고, 당신의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2007년 말, 나는 <마츠가네 난사사건>을 미개봉 작품 중 베스트 7위로 꼽았다. 2008년 봄, <마츠가네 난사사건>의 한국 개봉은 예상하지 못한 희소식이었다. 나는 ‘필름2.0’의 손가락평점을 매기면서 ‘올해 최고의 일본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장담했다(안타깝게도 영화를 본 한국관객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야마시타가 2007년에 영화를 한 편 더 발표했으며, 일본의 영화지 키네마준보는 두 편을 모두 2007년 베스트 일본영화 10편에 포함시켰다는 것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키네마준보의 리스트에서 7위에 오른 <마츠가네 난사사건>보다 5계단이나 위에 자리한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과연 어떤 모습의 영화일까? 마침내 어제 시사가 있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한국 개봉은 7월 2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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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맑고 깨끗하고 평화로운 시골마을. 그 곳에서는 학생의 수가 적어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공동으로 운영된다.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초등학생 3명에 중학생 3명. 맏이로서 다섯 아이들의 언니요 누나 노릇을 하는 중학교 2학년생 미기타 소요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어느 날, 오사와 히로미라는 소년이 도쿄에서 전학 오는 바람에 소요에겐 난생 처음 동급생이 생긴다. 게다가 히로미는 훤칠한 키에 얼굴 또한 꽃미남. 소요의 마음은 설렌다. 그런데 이 녀석에겐 퉁명한 구석이 있어서, 때때로 화가 난 소요는 소년에게 바로 쏘아붙이곤 한다. 사실 그럴 마음은 없는데 말이다.

우리에게 근래 소개된 <녹차의 맛>, <안경>이나 <그림 속 나의 마을> 같은 영화에서 보듯, 순박한 사람과 아름다운 시골마을을 그린 일본영화는 많다. 야마시타는 좀 더 특별한 경우다. 그는 언제나 작은 마을과 소도시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는다. 2007년의 두 영화도 마찬가지인데, <마츠가네 난사사건>이 블랙코미디 아래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욕망과 죄를 묘사한 지옥편이라면, 반대로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무공해 정서가 여기저기서 방긋방긋 웃는 천국편이다. 예를 들면, 감독은 일곱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노는 장면을 보여주기에 앞서, 아이들이 바위 사이로 띄워놓은 일곱 개의 토마토를 보여준다. 발간 토마토가 물살에 실려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 귀여움, 그 맑음, 그 싱그러움이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정서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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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라모치 후사코의 순정만화 <천연 꼬꼬댁>을 원작으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와타나베 아야가 각본을 쓴 영화엔 악이나 욕망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심지어 야마시타는 구체적인 이야기나 사건을 만들 마음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좀 시큰둥했다. 너무 심심해서 하마터면 불평을 내뱉을 뻔했다. ‘요즘 저렇게 순진한 아이들이 어디 있냐고, 예쁜 풍경화와 다를 게 뭐 있냐고,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느냐고.’

도시생활에 지친 성인에게 이상적인 시간과 공간은 뭐니 뭐니 해도 ‘어린 시절과 휴식을 제공하는 자연’일 것이다. 그런 탓에 종종 그 시간과 공간은 과장되기 마련이고, 그런 심리를 반영한 영화는 ‘전혀 때가 묻지 않아 오히려 비현실적인 공간이 되어버린 시골, 지나치게 로맨틱해서 동화나라에나 있을 법한 아이들의 사랑이야기’를 태연하게 들려줬다. 그런 영화들에 익숙해졌으니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을 보며 심드렁할 밖에.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당신이 알고 있는 ‘하이틴 로맨스’와 당신이 품고 있는 ‘판타지’에 대고 반문하는 영화다. 그러면서 이게 진짜 십대 이야기 아니냐고 말하는 영화다. 하고 싶은 말은 가슴 속에 있는데 정작 입에선 엉뚱한 말이 나오고, 쿵쾅대는 가슴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그러다 남에게 후회할 짓이라도 했을까봐 눈물을 와락 쏟고, 유치한 행동도 스스럼없이 하게 되는 시간, 십대는 그럴 때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그런 십대의 뒤를 살금살금 뒤따라가는 영화다. 그 결과는, 표백제를 써 억지로 말끔하고 깨끗하게 포장한 유의 영화와 달리, 원제목처럼 ‘천연’의 느낌을 잘 간직하고 있다. 십대를 사는 아이들의 냄새를 지우지 않은 영화에선 풋풋한 향이 언제라도 풍겨 나올 기세다. 소요를 좋아하는 동네 오빠의 가슴앓이, 여자 후배의 질투, 소요의 아빠와 돌아온 옛사랑의 이야기는 과하지 않을 정도의 양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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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와 히로미의 로맨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입맞춤이다. 소녀는 그까짓 뽀뽀가 뭐 별거냐 싶었지만, 입술이 눈앞에 보이자 어색한 감정이 개입해 행동을 가로막는다. 두 아이는 쑥스럽고, 그걸 보는 내 입가엔 미소가 돋는다. 마지막으로 정든 교실을 떠날 시간, 히로미는 소요에게 또 뽀뽀를 하겠다고 주문했던 모양이다. 소요는 이제 자기가 뽀뽀하겠다고 말한다. 앉아 있는 히로미에게 해주는 짧은 입맞춤. 히로미는 말한다. ‘뽀뽀에 사랑이 없어’라고. 그러게, 아직 이성을 사랑할 나이는 아닌 게다.

히로미가 사라진 교실에서 소요는 칠판에 대고 애정 어린 입맞춤을 한 뒤 나간다. 이어 카메라가 서서히 왼쪽으로 이동할 동안, 그만큼 빠르게 혹은 느린 속도로 경과한 시간의 현재가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아이들이 웃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다 마스무라 야스조의 <입맞춤>(1957)을 떠올렸다. 두 영화의 입맞춤 장면을 비교해보려 애썼다. 그러다 이제 나는 그렇게 두근거리는 입맞춤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 한 쪽이 알알했다.

★★★★

Posted by ibuti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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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천연 꼬꼬댁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2007) -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행복해지는 유기농! 무공해! 청정 영화!

    Tracked from Chandler's 영화&피아노 이야기 2008/07/15 16:24  삭제

    천연 꼬꼬댁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2007) 드라마 / 일보 / 121분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 출연 카호, 오카다 마사키, 사토 코이치... 초.중학교를 다 합쳐봤자 고작 6명밖에 안되는 시골 분교에 도쿄에서 전학을 온 한 소년과의 해프닝과 우정등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는 청소년물. 배두나가 출연했던 일본 영화 <린다,린다,린다>를 연출했던 야마시타 노부히로가 메가폰을 잡고 있으며, 떠오르는 신인인 카호와 오카다 마사키가 주인공을 맡고 있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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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를 봤었다. 이제 2주가 흘렀다.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 이 영화에 대한 단상이다...!!!

    • ibuti 2008/07/17 16:36

      ㅎㅎㅎ 심심한 곳에서 맛을 찾아보시라고 글을 썼는데 이런 댓글로 답하시다뇨! 살짝 삐침. ㅠㅠ;;;

  2. 여주인공이 예뻐서 관심이 생기는데요...^^
    저런 미소녀 주인공이면 영화가 별로 심심할 것 같지 않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