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호러의 결합으로 차별화에 성공
돌이켜보면, 아니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호러 장르의 중흥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링>과 <주온>은 이른바 아시안 호러(Asian Horror)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게 만들었고, 그것은 어쩌면 아시아 지역의 호러영화에 축복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이제 아시아에서 호러 장르는 더 이상 영화계의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상업적으로 그리고 비평적으로도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다. 즉, 아시안 시네마(Asian Cinema)라는 개념을 자리 잡게 하기 위한 장르로서 호러가 제시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아시아라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영화적으로 공통점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의 방식, 또 죽은 이를 어떻게 사고하는가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시아에서 죽은 이들은 ‘귀신’의 형태로 다시 산 자들에게 찾아온다. 사다코와 가야코는 일본을 벗어나 아시아로 또 할리우드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사다코와 가야코는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 호러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다른 한편으로는 ‘저주’이기도 했다.
아시아에서는 어디에나 ‘귀신’이 존재한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 그리고 한국,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등 어디에서나 출몰한다. <링>과 <주온> 이후 다른 아시아 지역,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의 호러영화들은 이 일본 호러(이른바 J-Horror)와 어떻게 차별화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이 이 과제를 해결하는 데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면, 동남아 호러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이 과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낭낙>(1999)
태국의 호러영화들은 더 나아가 형식에 있어서도 진화하고 있다. <사령: 리케의 저주>는 재연배우를 등장시켜 영화의 영화라는 형식을 호러영화에 접목시켰다. 물론 모든 태국호러영화들이 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다. <바디>와 같은 영화는 특수효과를 과도하게 사용한 나머지 귀신의 형상을 할리우드적 괴물로 표현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것은 사실 한 영화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과연 아시아 호러는 서구의 호러와는 어떤 차이가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깊게 고민하고 있는 감독은 싱가포르의 캘빈 통이다. 부천영화제를 통해 <메이드: 하녀의 저주>가 한국에 소개되었던 이 감독은 호러코미디 <흰 옷을 입은 사람들>(Men in white)라는 영화를 통해 서구 호러 영화의 괴물(monster)과 아시아 호러의 귀신(ghost)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는 싱가포르와 홍콩 합작으로 제작된 <제1규칙>(Rule#1)이란 영화를 통해서 더 진화된 장르적 형식을 선보인다. 즉, 홍콩 경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할리우드적인 스릴러 장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홍콩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호러적 요소를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또한 귀신의 존재를 바이러스와 같은 형태로 규정하면서, 우리가 그것을 부인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제1규칙>(2008)
태국의 대표적 귀신은 ‘낭낙’이고 말레이시아의 전통적 귀신의 이름은 ‘폰티아낙’이다. 이들 귀신 이야기들은 수 십 편의 영화들로 만들어졌다. 결국 이렇게 호러영화는 자국의 전통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그 전통에 얼마나 새롭고 현대적인 영화적 요소들을 잘 결합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더 진화된 호러영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동남아 호러는 이것을 나름대로 해결하면서 전진하고 있다. 우리가 동남아에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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