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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남자에게 '언젠가는'은 없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세르지오 레오네, 1968)

* <세르지오 레오네 회고전>이 ‘2008 시네 바캉스 서울’의 한 섹션으로 열린다. 아래는 회고전을 맞아 발간되는 책자에 기고한 글이다. <석양의 무법자>에 이어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리뷰를 올린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서부영화에 계속 매달리고 싶은 생각이 ‘정말로’ 없었으나, ‘달러 3부작’의 엄청난 성공은 그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았다. 뉴욕의 갱스터를 다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진행하고 싶었던 그에게 파라마운트사는 서부영화를 한 편 더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방향을 튼 레오네가 미국에 바치는 새로운 ‘3부작’은 그렇게 시작됐는데, <황야의 무법자>의 제작비의 15배인 3백만 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받아든 레오네는 1부에 해당하는 <옛날 옛적 서부에서>가 이전의 작품과 완전히 다른 서부영화로 완성되기를 내심 원하고 있었다.

마침내, 처음으로 존 포드의 땅인 모뉴먼트 밸리에서 일부 장면을 찍을 수 있었던 레오네는 ‘달러 3부작’뿐 아니라 고전 서부극까지 뿌리째 뒤흔들어놓고야 만 논쟁적인 작품을 내놓았다. 배급 과정에서 25분 넘게 삭제된 영화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실패를 맛본 제작자들과 지루함을 느낀 평론가들은 영화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를 거부했고, 유일하게 완전판이 상영된 파리의 한 극장에 몰려든 젊은이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68년의 열기가 아직 사라지기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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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시간이 165분에 이르는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대본은 고작 15페이지 정도였다고 한다(그나마 대본대로 찍었다간 5시간이 넘을 것임을 짐작한 레오네가 많은 장면을 제외한 게 현재의 상영시간이다). 달러 3부작의 대사 분량과 직접 비교해보진 않았으나,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대사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확실히 풍부하다는 인상을 준다. 액션과 침묵 사이를 넘나드는 대사는 고도로 계산되어 있으며, 응축된 대사가 불러일으키는 효과 또한 대단한 것이어서 레오네가 셰익스피어를 탐했다는 게 우스갯소리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레오네는 인터뷰에서 “<황야의 무법자>를 셰익스피어처럼 쓰고 싶었다.”라고 했다). 레오네가 감독 휴업 중이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평론가로 활동하던 때의 다리오 아르젠토를 각본작업에 끌어들이면서 의도했던 건, 달러 3부작에서 이미 성취한 ‘침묵과 액션의 발레’를 훨씬 상회하는 서부극이었다. 제목에서부터 과감하게 ‘미국의 신화와 서부의 역사적 실체’를 결합한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미국이란 나라의 근저를 기술하고 비판하며, 그것에 더해 미국의 신화에 바탕을 두었던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서부극에 종말을 고하는 작품이어야만 했다.

영화인인 부모 덕분에 12살 때부터 영화 현장에 접근했던 레오네가 큰 애정을 기울인 장르가 미국 서부극이라는 걸 감안하면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이상한 영화다. 서부극을 사랑했으나 미국적인 것에 대해선 비판적인 입장이던 레오네에게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색다른 방식의 오마주인 셈이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프레일링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영화에 인용된 미국 서부극의 이름만 나열해도 그 리스트가 여러 페이지에 달한다고 한다. 서부극 장르에 정통했던 베르톨루치와 아르젠토가 각본 속에 은밀히 숨겨놓은 기호들을 레오네가 부지불식간에 발레의 연결동작처럼 이어놓았을 뿐이란 이야기인데, 그렇게 연결된 총체가 창의적이고 전복적인 서부극에 도달했다는 것이야말로 레오네의 기막힌 연출력의 증거라 하겠다. 이미 전작들에서 고전 서부극에 대항하는 움직임을 만들어왔던 레오네는 <옛날 옛적 서부에서>에 이르러 “서부영화는 유다른 ‘미국’영화다”라고 했던 앙드레 바쟁의 평가에 전면 도전하는 ‘미국 바깥의 서부영화’를 창조해낸 것이다.

새로운 연작에서 레오네가 선택한 가장 중요한 배우는 헨리 폰다였다. 달러 3부작에 출연시키고 싶었으나 스파게티 웨스턴의 낮은 위상 때문에 감히 캐스팅하지 못했던 폰다를 데려오는 데 기필코 성공한 레오네는 그에게 뜻밖의 역할을 안겨줬다. 존 포드의 영화에서 링컨 대통령과 와이어트 어프 같은 미국인들의 이상적인 아이콘을 연기했던 폰다가 푸른 눈의 악당으로 변신했다는 건, 미국 서부극의 신화에 저항하겠다는 레오네의 의지를 결정적으로 보여준 예다. 여기에다, 미국 서부극에서 대게 위협적인 악당으로 나오던 인디언을 매력 넘치는 주인공으로 설정했고, 존 포드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존 웨인의 곁을 충실하게 지킨 폼피 역의 우디 스트로드를 영화 초반에 죽는 악당으로 만들어놓았다. 이탈리아 태생의 거구의 남자는 아일랜드 출신의 철인인 존 포드에게 제대로 헌사를 바치려면 간담을 서늘하게 얼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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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꾸린다는 기대에 부풀어 뉴올리언즈에서 아리조나의 황야로 이주한 질 맥베인(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은 남편 브렛 맥배인과 일가족이 살해당한 현장을 보게 된다. 브렛은 <석양의 무법자>에서 세 남자를 엮은 뒤 죽어버리는 빌 카슨과 유사한 존재로서, 영화의 모든 주인공들을 한 운명 속으로 몰아넣는 첫 번째 인물이다. 빌의 죽음이 <석양의 무법자>를 돈에 얽힌 웨스턴으로 만든다면, 브렛의 죽음은 <옛날 옛적 서부에서>를 일차적으로 땅에 관한 웨스턴으로 만든다. 일가족이 야만스럽게 학살당한 공간이 어떻게 해서 미국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터로 발전하는지 차츰 드러내는 영화는, 레오네가 천착했던 ‘죽음과의 거래’가 총잡이의 운명 너머 미국의 역사와도 관계하는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에서 관객들이 도덕적으로 지지하는 인물은 모두 세상에 던져지거나 자유를 저당 잡힌 자들이다. 레오네의 웨스턴에서 보기 드문 여자 주인공인 질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남편을 잃고, 다른 악당이 던진 덫에 걸린 무법자 샤이엔(제이슨 로바즈)은 누명을 벗으려는 과정에서 이야기에 개입하며, 모든 비밀을 꿰뚫고 있는 듯한 하모니카(찰스 브론슨)는 죽은 형의 복수라는 일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프랭크(헨리 폰다)는 이들 주인공의 대척점에 위치한 악당이다. 그는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악행을 일삼는 인물로서 총잡이인 동시에 미래의 자본가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꿈꾼다.

네 인물을 소개하는 데만 40여 분의 시간을 보낸 영화는 네 인물의 운명을 교차시키면서 그들이 흡사 오페라의 캐릭터인 양 다룬다. 레오네는 침묵과 죽음의 발레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장엄한 서부의 오페라를 선보인다. 레오네 자신은 <옛날 옛적 서부에서>를 ‘죽음의 춤’으로 불렀지만, 영화는 오페라에 더 가깝다. 배우들은 ‘현실의 시간개념과 동떨어져 지독하게 느린 속도와 카를로 시미가 디자인한 거창한 세트’를 자신의 역할이 소진되는 배경으로 삼고, 촬영 이전에 작곡이 완료된 각자의 테마와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클로즈업으로 잡힌 인물의 만남은 아리아를 목 놓아 부르는 장면에 버금가며, 햇볕에 그을린 세 남자의 얼굴과 그들 사이에서 영롱하게 반짝이는 카르디날레의 얼굴은 영화에 또 하나의 풍경을 선사한다. 각자의 영역을 오가던 네 인물은 이윽고 ‘스위트워터 역’이라는 중심 무대에 모여들며 대단원을 장식하는데, 네 사람의 아리아가 뒤섞여 연출하는 오페라의 클라이맥스에선 가히 숨이 막힐 지경이다.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탄복할 만한 대결 신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주로 꼽히지만, 오페라의 관점으로 전체 작품을 대하지 않을 경우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지루한 서부극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할 일이다.

서부영화에선 언제나 그렇듯이 악당 프랭크는 죽음을 맞는다. 앞서 <석양의 무법자>에서 말한 것처럼 악당의 죽음은 도덕적으로 당연한 결말이거니와, 특히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프랭크 같은 악당이란 영악한 자본가에 의해 장차 멸종당할 수밖에 없다는 투의 선고를 내린다. 서부의 영웅에 해당하는 샤이엔과 하모니카가 죽거나 떠나는 이유는 그들이 낭만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배 서부영웅들처럼 '언젠가는(Someday)'이라는 한마디 말만 남기고 떠난다. 그 말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를 의미하는 것임을, 그도 알고, 그녀도 알고, 관객도 알고 있다. 무법자인 샤이엔은 물론 복수를 꿈꿀 만큼 낭만적인 하모니카는 산업과 문명이 옥죌 미래의 세상에서 존재할 수 없는 남자들이다.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사처럼, 끊임없이 “죽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서부 영웅은 왜소한 인간들과 자본주의가 판칠 새로운 시대에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사라진 세 남자의 마지막에 담긴 쓸쓸한 정서는, 미국과 서부극을 그리도 다르게 표현하려 애썼던 레오네조차 옛 서부와 옛 서부 영웅의 향수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영웅의 죽음과 미국역사를 연결한 비극적 서사시인 것이다.

남겨진 여자 질의 결말과 연결되는 마지막 지점에서 영화의 정체성은 좀 더 복잡해진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무법자와 세상을 사악하게 물들이는 악당과 세상과 어울려 살기엔 너무 고독한 총잡이가 없어진 자리에서, 스위트워터 마을을 계승하는 인물은 질이다. 가장 나약했기에 더욱 질긴 생의 의지를 지닌 인물인 질은 땅과 물의 주인이다(우리는 질 역할을 맡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에서 물을 주는 역할을 이미 연기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곧 우체국, 목장, 교회, 상점 등이 세워질 마을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해야 할 피곤한 노동자들에게 물과 휴식을 제공하는 질은 생명과 어머니를 상징한다. 흥미로운 것은, 어머니의 역할을 결심하기 이전에 그녀가 매춘부였다는 점인데, 영화의 초반에 나오는 대사 - “원하면 마음대로 해. 그런다고 여자는 안 죽어. 다 끝난 뒤 뜨거운 물로 씻어내면 나는 다시 깨끗해지거든. 더러운 기억은 남겠지만” - 는 그녀 안에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예언한 것처럼 보인다. 서부 영웅의 낭만적인 서사시인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질이 자본가와 불한당들의 역사를 잇는 순간, 어머니와 매춘부의 동화로도 읽힌다(레오네는 자기 영화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레오네가 변화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던 미국과 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반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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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네 웨스턴의 정점이라 할 <석양의 무법자>와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거의 정확하게 100년 전에 미국에서 벌어진 두 개의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다. <석양의 무법자>가 1865년에 막을 내린 남북전쟁에 기원을 뒀다면,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1869년에 미국의 동서를 연결한 대륙횡단철도를 영화의 배경으로 취하는데, 열차의 도착으로 시작해 열차의 도착으로 끝나는 영화에서 열차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옛 서부의 동맥이던 마차를 대체한 열차가 존 포드의 <철마> 같은 고전 서부극에서 ‘동서 왕래, 교역의 활성화, 기술과 진보’의 상징으로 묘사됐던 것과 달리,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열차가 서부에 도착하면서 벌어졌던 부정적인 사건들에 귀 기울인다.

영화의 주인공들을 엮는 두 번째 인물인 모튼(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에서 현대인의 정신적 죽음과 공황을 연기한 가브리엘레 페르제티가 연기했다)은, 철도 개설 시기에 법제 마련의 공백을 틈타 비도덕적인 사업가들이 부당한 이익을 착복하고 땅 주인들에게 물리적인 힘을 행사했던 상황을 근거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이름에서 죽음의 악취를 풍기는 모튼은 몸 전체로 병이 퍼지고 있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타락했는데, 철로의 건설을 가로막는 모든 걸 제거하라고 사주했으면서도 겉으론 깨끗한 척한다. 그가 악당 프랭크에게 함부로 살인을 저지르지 말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인간을 염려한다기보다 뒤처리가 거추장스러운 탓이다. 그가 이동수단으로 이용하는 열차의, 바깥세상과 어울리지 않게 기괴하고 호화로운 모습은 죽음, 약탈, 욕망, 폭력의 메타포에 다름 아니다. 레오네는 모튼과 그의 사주를 받는 프랭크를 빌려 서부의 신화가 개척정신과 청교도 정신보다 자본가와 불한당의 역사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레오네는 분명 세르지오 코르부치나 다미아노 다미아니처럼 정치적인 감독이 아니었으나, <옛날 옛적 서부에서>가 좌파의 기운으로 흠뻑 배양된 작품임은 부정할 수 없다. 썩은 자본가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한 좌파의 정치노선은 기실 레오네가 아닌 베르톨루치로부터 나온 것으로 보는 게 맞겠다. 하기는 베르톨루치가 아니었더라도 영화가 개봉한 당시는 모든 것이 정치적인 때였으며, 저예산 영화인 스파게티 웨스턴이 가난한 민중의 피를 쉬이 끓어오르게 하기 위해 공산주의를 관객과의 소통 수단으로 삼는 경우는 흔한 일이었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 이후 <석양의 갱들>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로 이동하면서 레오네의 미국에 대한 비전은 더욱 우울해졌다. <석양의 갱들>의 로드 스타이거는 죽은 혁명가 앞에서 “어쩌면 좋단 말인가”라고 애통해 했고, <옛날 옛적 서부에서>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각각 레이스 아래 누운 카르디날레의 얼굴과 로버트 드 니로의 얼굴이 오버랩 될 때, 생명의 어머니마저 떠나보낸 현대의 미국은 오직 죽음과 폭력의 희생자만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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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특집
2008/07/09 - [기획 / 특집/칼럼] - 서부영화의 영원한 고전 '석양의 무법자'

Posted by ibuti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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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메가쑈킹만화가 2008/07/14 22:16

    아아아... 이 영화 정말 진국이죠!!!

    저도 DVD 갖고 있답니다.

    엔니오 모리꼬네 주제곡이 깔릴 때마다

    너무 좋아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영화 시작할 때 나오는 결투장면은

    언제 다시 봐도 명장면입니다.

    파리 쫓는 장면 너무 재밌어요.
    (비하인드 스토리는 더 웃기다능...)

    • ibuti 2008/07/14 23:22

      남자를 울리는 영화는 바로 이런 작품이죠.

      파리 장면을 예전에 보면서 어떻게 찍었을까 궁금했는데, DVD의 음성해설을 들어보고 많이 웃었습니다. 역시 레오네 답더군요. 예전 양반들은 돌아가는 게 없지 않나요? 그냥 밀어붙이는 그런 방식이 영화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2. 이번에 봤어요 2008/07/14 22:47

    아트시네마에서 봤습니다
    영화가 너무 아름다워서...
    배경이랑 배우들 너무 멋졌어요..
    첨엔 왜 이렇게 느린가 싶었는데
    조금 지나니까 적응이 ^^;
    왜 그렇게 극찬들을 했는지
    실감나더라구요 ㅎㅎ

    • ibuti 2008/07/14 23:24

      이번에 보셨군요. 저도 이번에 봤습니다. 스크린으로 두번째, 홈비디오로 수 차례 봤는데도 지겨운 장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몇 번, 눈물까지 흘렸답니다. ^^

  3. 진정한 웨스턴 2008/07/15 03:03

    앗.. 저도 아트시네마 갔었는데 ㅎㅎㅎ
    저희 아버지가 이 영화를 잘 아시더군요
    아버지랑 같이 영화관에 간게 얼마만인지
    영화에 흠뻑 취해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도 흐뭇해 하셔서 더 좋았습니다

    • ibuti 2008/07/15 10:47

      저도 어머니와 함께 아트시네마에 가서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트시네마라고 하면 보통은 어려운 예술영화만 트는 곳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부모님과 함께 보기에 좋은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옛날 옛적 서부에서>가 한국에서 개봉되지 않았다고 써놓은 글을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웨스턴'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영화는 한국에서 <웨스턴>이란 이름으로 개봉한 게 맞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