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역전의 코미디
흥미롭지만 영화적 깊이가 없어
잭 네오의 <Just Follow Law>(2007)를 DVD 타이틀로 다시 보았다. 이 영화는 작년 초에 극장에서 보았는데, 내가 싱가포르로 이사를 온 후 처음으로 보았던 로컬 영화였다. 다시 보니 처음 보았을 때보다는 더 재미있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숨은 장점을 새롭게 발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싱가포르 사회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 잭 네오의 영화도 로이스톤 탄의 영화의 <881>처럼 싱가포르 사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너무 재미없는 영화가 되고 만다. 솔직히 영화를 만드는 테크닉에 있어 잭 네오는 그리 많은 재능을 가진 감독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연기만 전문으로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한다. 어쨌든 그는 영화를 계속 찍고 있고 곧 <Money No Enough 2>가 개봉한다. 10년 전에 찍었던 영화의 속편을 찍은 모양이다. 그러나 큰 기대는 안 하고 있다.
이 <Just Follow Law>는 싱가포르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한 회사가 있다. 주로 정부의 일을 맡아하는 인력관리회사에서 Lim Teng Zui란 남자와 Tanya Chew란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이 남자를 연기하는 배우는 Gurmit Singh인데 주로 텔레비전 드라마와 시트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여자배우는 Fann Wong(한국에는 범문방으로 알려져 있다)로 최근 장혁과 함께 영화를 찍었다. 여자는 대학을 나와 매니저의 위치에 있고, 남자는 형광등을 고치고 자재를 치우는 일을 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비교적 재미있다. 나이든 간부직원들은 젊은 여성 매니저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무슨 일을 하나 추진하려면 서로에게 이메일을 수 십 통씩 보내야 한다. 회사의 절차라는 것은 수많은 문서를 작성해야 하고, 그것은 이제 이메일로 쏘아야 한다. 그 과정을 잭 네오는 CG로 이메일 화살이 날라 가는 것으로 표현했다. 아마도 잭 네오 영화들 중에서 가장 창의성이 넘치고 재미있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이 여성 매니저는 직원들에게 퇴근 시간 이후에도 근무를 하라고 지시한다. 그러자 직원들은 오후 5시가 되어 에어컨이 꺼지자 퇴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에어컨을 다시 가동시키려면, 다시 수많은 문서를 작성해서 이메일을 쏘아야 한다. 이것은 사실 딜레마라 할 수 있다. 절차는 지켜야 하지만, 그것은 때로는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없다면 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싱가포르의 공무원들은 일을 열심히 하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라가 도시 하나니까 공무원들에 대한 통제도 더 쉬울 것이고 업무 효율성이 더 높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남자 주인공 노동자는 회사의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아파트 앞에 갖다 버린다. 그러자 커뮤니티 센터의 공무원들이 나와 금방 그것들을 가져간다.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어쨌든 좋아 보이긴 한다.
이렇게 싱가포르 기업의 내부의 상황을 풍자할 때까지 이 영화는 꽤 재미있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두 남녀 주인공의 몸이 뒤바뀌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지루해진다. 이런 설정의 의도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매니저와 하급 노동자는 서로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니 상대방의 처지에 놓이게 만들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도 많이 다른 영화들에서 써먹었던 것이다. 또 잭 네오의 영화들은 신파적인 분위기로 곧잘 흐른다. 서로의 몸이 뒤바뀐 후 그들은 마음을 합쳐 회사에서 실적을 올리려고 한다. 그 과정은 관객들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 속에서 별다른 창의성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잭 네오의 문제이다.
이런 장면이 있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취업알선을 위한 행사를 기획한다. 그 홍보를 위해 지하철 공사로 간다. 고가철도의 기둥에 홍보물을 설치하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지하철 공사로 가니 교통부로 가라고 하고 교통부에서는 다른 부서로 가라고 한다. 이 장면은 명백히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에 대한 오마주이다. 잭 네오가 이 일본 거장의 영화를 보았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이렇게 잭 네오에게 아쉬운 것은 다른 영화들에서 본 것 같은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많은 고민을 하고 그런 장면들을 집어넣은 것인지 의심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가 싱가포르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말하기 위해 영화들을 만들고 있지만, 그런 주제를 뒷받침하기에 그의 영화적 감각은 그다지 세련되지도 못하고 수준도 높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이것이 에릭 쿠와 잭 네오가 갈라지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들은 전혀 다른 스타일과 장르의 영화를 찍고 있고, 전자는 국제영화제에 나가는 영화를 그리고 후자는 로컬 시장을 위한 영화를 찍고 있긴 하다. 그러나 잭 네오는 에릭 쿠에 비해 깊이가 없다. 아무리 로컬적인 영화를 찍는다고 해도 외국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들이 있다. 불행히도 잭 네오는 그런 영화를 찍기는 힘들 것 같다. 어쨌든 그는 쉬지 않고 영화를 찍고 있으니, 아무쪼록 나의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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