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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관련된 어떤 것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세르지오 레오네, 1966)

* <세르지오 레오네 회고전>이 ‘2008 시네 바캉스 서울’의 한 섹션으로 열린다. 아래는 회고전을 맞아 발간되는 책자에 기고한 글이다. <석양의 무법자>에 이어 <옛날 옛적 서부에서>도 올릴 예정이다. 아울러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이므로, 김지운의 영화를 보기 전에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원고지 30매가 넘는 글이므로 스크롤의 압박은 알아서 견디도록.


존 포드: 나는 서부극 만들기를 좋아한다. 선택할 수 있다면, 난 서부극만 만들 것이다.
버트 케네디: 혹시 이탈리아 서부극을 본 적이 있습니까?
존 포드: 농담이겠지?
버트 케네디: 아뇨, 진짜 그런 게 있어요. 그리고 몇 편은 제법 유명하답니다.
존 포드: 어떻게 생겨먹었는데?
버트 케네디: 이야기와 사건은 없고, 그냥 살인만 있어요.
_ 1969년 1월. 서부극 연출가 버트 케네디와 존 포드의 대화 중에서.

“위대한 서부극을 만든 몇 명의 감독들은 유럽 출신이다. 존 포드는 아일랜드 사람이고, 프레드 진네만은 오스트리아 사람이고, 프리츠 랑은 독일 사람이고, 윌리엄 와일러와 자크 투르네르는 프랑스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이탈리아 사람은 그 그룹에 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_ 1969년 8월. 세르지오 레오네의 인터뷰 중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을 만들었던 자들의 진지한 열의와 상관없이, 이 장르를 이해하려면 수없이 도사리고 있는 함정들을 피해야 한다. 대부분의 관객에게 유럽산 서부영화는 곧바로 스파게티 웨스턴을 의미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앞서 여러 편의 유로웨스턴이 시도됐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미완의 시도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특히 독일의 국민적인 대중작가인 칼 마이의 작품을 각색한 낭만적이고 나이브한 독일 서부극은 비록 국지적이긴 했으나 스파게티 웨스턴에 필적할 정도로 대단한 반응을 얻었다. 그러므로 스파게티 웨스턴은 마땅히 유로웨스턴의 전통 아래 파악되어야 한다. 또 하나, 세르지오 레오네가 스파게티 웨스턴의 대표적인 작가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영화가 스파게티 웨스턴의 전형일 거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주제와 스타일, 인물과 분위기 면에서 정말로 다양한 스파게티 웨스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백히 밝혀낼 수 있는 것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스파게티 웨스턴에 관한 수많은 누명과 잘못 알려진 전설들을 하나하나 풀기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태생적으로 미국의 서부영화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던 스파게티 웨스턴을 두고 순수주의자들은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미국 달러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음악과 음향이 쓸데없이 큰, 기회주의자들의 싸구려 모방작’이라고 평가하곤 했다. 미국의 평단이 붙인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이름 안에는 경멸의 의미가 들어 있었다(이탈리아에선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불렸다). 지금 여기서 초저예산으로 조악하게 만들어진 유로웨스턴 전체를 구제할 생각은 없고, 물론 그럴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 유럽산 서부극들처럼 B급영화의 제작조건 하에 만들어졌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의 영화로 평가받게 됐으며, 역사상 그 어떤 영화들보다 풍부한 A급 전설을 지니게 된 세르지오 레오네의 웨스턴을 각별히 대우하지 않기란 힘들다.

레오네의 세계를 표면적으로 특징짓는 건 고전 서부극보다 긴 상영시간, 현실감을 뛰어넘는 고도의 양식화, 비현실적인 패션, 음악의 과다한 사용 등 과잉에 과잉을 더한 시도들이다. 이러한 스타일에 민감한 자들은 레오네가 고전 서부극에 바쳤던 진정한 애정과 도전의식을 놓치기 십상이다. 레오네의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은 거의 다 가짜다. <석양의 무법자>의 대사 속에 리오 그란데, 텍사스, 샌타페이 등 익숙한 공간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지만, 실제로 영화가 찍힌 곳은 아메리카가 아니라 스페인 알메리아의 황야와 이탈리아 로마에 소재한 시네치타 세트장이었다. 그런데 레오네는 자기 영화에 한계를 드리운 ‘가짜’라는 피해의식을 고전 서부극에 역으로 대입한 감독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그는 다른 감독들과 구분된다.

레오네는 자기 영화의 내적 빈곤을 가리고 있는 외적 과잉을 통해 고전 서부극의 전설도 어쩌면 전부 가짜가 아니냐고, 의문을 품는다. 레오네가 의도했건 안했건, 그의 영화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존 포드, 1962)의 명료한 대사 - “여기는 서부입니다. 전설이 사실이 되면 그걸 기록하죠.” - 를 확장하고, 다시 질문한다. 레오네는 이상화되고 왜곡된 과거와 과장된 도덕률 대신 인간 내면의 욕망의 법칙을 따른 서부영화를 제시하며 진짜 서부란 이런 모습일 거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삼류 서부극을 만든 감독들의 기회주의적인 측면에 대한 변론이었으며, 빈곤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영화적 열정을 꽃피워보려고 노력했던 자들을 대표하는 선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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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과 함께 ‘달러 3부작’을 완성하는 <석양의 무법자>는 레오네 웨스턴의 중간결산에 해당한다. 2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황야의 무법자>에 비해 <석양의 무법자>에는 그 다섯 배의 예산이 지원됐고(현장 사정은 여전히 열악했지만), 레오네는 양식과 주제 면에서 진일보한 작품으로 기대에 답했다. <석양의 무법자>는 당연히 전작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지만, 레오네의 웨스턴을 예술영화로 승화시킨 거창한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 영화 이후부터였다. 남북전쟁이 한창인 1862년 경, 악한 자 ‘앤젤 아이즈’(리 반 클리프)는 한때 남부군 소유였던 금화 20만 달러를 숨긴 남자에 대해 알게 되고 행방을 추적한다. 착한 자 ‘블론디’와 추한 자 ‘투코’는 현상금을 나눠먹으려고 동업하다 관계가 틀어진 사이인데, 죽음의 사막을 건너던 두 사람은 죽어가는 병사로부터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듣는다. 어쩌다 반쪽 비밀만 엿들은 세 남자 - 금화를 숨긴 자의 이름만 아는 남자, 금화가 숨겨진 묘지의 이름만 아는 남자, 묘비에 적힌 이름만 아는 남자 - 는 때론 혼자, 때론 같이 금화를 찾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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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무법자>를 연출하기 전, 레오네는 부수적인 것들을 탈신비화하고 전쟁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작업에 흥미를 느꼈다고 밝혔다. 자기가 만든 서부극이 뜻밖에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자 그는 아마도 하찮은 클리셰들로부터 벗어나려 했거나, 보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자 했던 것 같다. 전쟁의 광기에 지쳐 환멸에 빠진 장교, 바보들의 싸움으로 명명된 전쟁에서 대량으로 희생되는 병사, 포로수용소의 비리에 손을 쓰지 못하는 포로소장, 포로들을 야만적으로 대하는 북부군 등의 모습에서 <석양의 무법자>가 (전작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정치적인 언급을 펼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레오네가 가장 관심을 가진 부분은 전쟁에 대한 비판보다, 본의 아니게 전쟁에 휘말린 세 남자를 통해 서부 영웅의 본질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고전 서부극의 영웅처럼 <석양의 무법자>의 주인공들도 본디부터 고독한 존재들로서 스스로 사회와 공동체로부터 고립되는 길을 선택한다. 블론디, 앤젤 아이즈, 투코는 공히 전쟁터의 안팎을 가로지르면서도 기이하리만큼 현실상황에 무관심하고, 타의에 의해 전쟁에 휩쓸려 들어갔을 때도 우연찮게 빠져 나오는데, 그들과 접촉한 사람들조차 대게 죽음을 맞으면서 세 사람의 곁에서 떨어져 나간다. 아이러니한 건 사회가 아닌 돈이라는 물질이 각각 독립된 삶을 살던 세 불한당을 운명적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전 서부극의 영웅들이 자기의 이상향으로 떠나는 뒷모습만 보여줬던 것(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재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과 달리, 레오네 웨스턴의 주인공들은 병적으로 돈에 연연한다. 새로운 서부극에서 영웅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돈이다. 그들은 미래라는 엄연한 현실에 대비해 자금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블론디, 앤젤 아이즈, 투코는 많은 장면에서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전쟁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세상 사람들이 모호한 삶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것과 반대로, 금화라는 명확한 목표를 향해 경주하는 그들이 현실 밖의, 혹은 비현실적인 공간을 떠도는 유령으로 비치는 건 왜일까? 세 남자는 언제부턴가 죽음과 거래하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이 지난 지점에서 블론디와 투코는 빌 카슨이라는 군인과 대면한다. 투코가 블론디를 쏘아 죽이려던 바로 그 순간, 시체들로 가득 찬 마차에 실려 온 빌 카슨이 몇 마디를 남긴 다음 죽고, 앤젤 아이즈는 블론디와 투코가 비밀을 알고 있음을 눈치 챈다.

3시간 동안 딱 한 장면에 등장하는 애꾸눈 병사는 몇 마디의 말로 세 남자를 운명의 고리 위에 놓는데, 그것으로 세 사람과 죽음의 거래가 시작된다. 끝까지 살아남을, 그래서 금화를 차지할 한 사람이 되기 위해 블론디, 앤젤 아이즈, 투코는 죽음의 능선을 넘어야 한다. 세 불한당이 게임 캐릭터처럼 포탄에 맞아 죽는 것으로 묘사되는 오프닝 크레딧을 과장 해석하면, 블론디, 앤젤 아이즈, 투코는 이미 죽은 인물들이다. 더불어 그들이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 원형 묘지에 회귀의 공간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하면, <석양의 무법자>는 죽음의 향기가 진동하는 세계를 떠돌던 인물들이 애초의 안식처로 귀환하는 오디세이인 셈이다. 레오네의 웨스턴에서 죽음과 거래하는 서부 영웅은 이미 죽었거나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죽어야 하는 자들이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권총의 연기는 죽음을 곁에 두고 춤추는 그들의 모습과 존재감을 흐릿하게 지운다. 레오네의 웨스턴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냄새와 연기에 도취되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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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긴장과 불안이 <석양의 무법자>의 핵심 중 하나지만, 그런 분위기만 지속됐다면 영화의 생명은 그리 길지 못했을 것이다. 레오네는 마법을 부리듯이 다양한 정서와 장면의 배합을 자기만의 공식에 맞춰 조절했다. 고조되던 긴장은 전광석화 같은 액션으로 끝맺고, 인물에게 가해진 숙명의 무게를 해방시키는 자유의 순간이 이어지며, 저열한 상황 아래에서 인간이 느끼는 밑바닥의 감정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그런 레오네의 웨스턴을 보면 누구나 강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으며, 대부분은 감동과 희열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느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고, 심지어는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평론가 로저 이버트의 말대로 <석양의 무법자>는 이성이 아닌 본능의 영화다. 남부군 포로가 죽을 정도로 구타당할 동안 바깥에서 북부군의 강압에 따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자들의 울분과 힘겹게 도달한 묘지에서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뛰어다니는 투코의 환희를 도대체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겠나. 위대한 대중영화는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는 죽은 남자와 떠나는 남자와 남겨진 남자를 보게 된다. 앤젤 아이즈의 죽음은 필연이다. 서부영화에서 악당의 죽음은 관객이 원하고 감독이 원하고 도덕이 원하는 바다. 그에 비해 떠나는 영웅 블론디에겐 복잡한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사라지는 전형적인 서부영웅인 그는 영화 내내 경계했고 내심 불안의 대상이었을 강적을 거세함으로써 신화적인 이미지로 각인된다. 그런데 그의 사라짐은 옛 서부 영웅의 그것과 다르다. 그는 세상과 이별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부터 잠시 퇴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영화의 서두에서 30분 가까이 보여줬듯이, 다른 적이 존재하는 한, 돈의 유혹이 계속되는 한, 서부의 총잡이는 이상향으로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다. 죽음만이 그들에게 채워진 운명의 족쇄를 풀 수 있다.

레오네가 가장 애정을 품었던 인물은 누구일까? 미루어 짐작컨대 남겨진 자, 투코일 것이다. 평범하기에 영화 제목의 맨 뒤에 위치해야 했던 그였으나, 레오네는 영화의 시작에서, 그리고 영화의 결말에서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불러낸다. <석양의 갱들>에서 로드 스타이거가 연기한 후안과 비슷한 인물인 투코는 블론디와 앤젤 아이즈 같은 신비한 영웅 또는 전문 총잡이라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에 더 가깝다. 9년 전에 죽은 어머니, 얼마 전에 죽은 아버지, 집을 떠나 수도사가 된 형제 등 투코의 가족이 비교적 상세히 소개되고 있으며, 가난과 배고픔으로 죽기 싫어 세상을 떠도는 인생을 택한 그의 모습엔 민중의 슬픔이 투영된다. 세 주인공 중 가장 어리석었고, 그래서 두 강자에게 당하기만 했던 그는 끝내 생존하는 인물로 남는다. 묘비명에 적힌 ‘무명’은 투코의 다른 이름이다. 그를 가치 있게 하는 게 무엇인가. 그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평범한 우리들에게 레오네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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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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