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젠토풍의 할리우드 스릴러
<로라의 시선>의 이야기는 딱 이탈리아 호러영화식입니다. 얼굴없는 살인마가 송곳으로 사람들의 눈을 찔러 죽이고 다녀요. 그런데 그 살인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 헬무트 뉴튼 스타일의 폭력적인 패션 사진을 찍는 로라 마스라는 사진작가의 눈에는 바로 그 살인자가 보는 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살인마가 죽이는 사람들은 모두 로라의 주변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럼 이 영화를 유럽 호러 영화, 특히 아르젠토 영화를 할리우드에 이식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각본을 쓴 사람은 당시 아직 학생이었던 존 카펜터였는데, 그가 각본을 팔았을 무렵엔 <서스피리아>나 <딥 레드> 같은 영화는 나오기도 전이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영화는 그냥 평행 진화를 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70년대는 이런 영화가 나올 법한 시대였던 거죠.
존 카펜터가 이 영화를 직접 만들었다면 어땠을까요? 가끔 궁금해집니다. 그 이유는 간단해요. 카펜터의 원래 각본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최종 각본이 별로이기 때문이지요. 연쇄살인이 일어나긴 하는데, 로라 마스의 대응은 정말 치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냥 눈을 껌뻑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게 전부죠. 사선 수사의 발전도 거의 없고 살인을 통해 전개되는 드라마도 어색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영화는 별 재미가 없습니다. 막판의 반전도 어색하고요. 복선이 시원치 않거든요.
아르젠토 영화들도 그렇지 않냐고요? 하지만 아르젠토 영화에는 광기어린 초현실주의와 끝장나는 스타일, 피투성이 폭력이 있지요. 하지만 안전한 할리우드 식 주류 스릴러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는 그 어느 것도 없어요. 그러니 나쁘고 평범한 각본이 더 튀는 거죠.
이 영화에서 진짜로 빛을 발하는 건 영화 자체보다는 로라 마스의 작품들로 구성된 광폭한 패션 이미지인 것 같습니다. 아까 로라가 헬무트 뉴튼 풍의 사진을 찍는다고 했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사진들은 정말로 헬무트 뉴튼의 작품이에요. 뉴튼이 가짜 범죄현장 사진을 찍은 경력이 있는 패션사진작가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 유사성은 더욱 재미있지요. 영화가 이를 더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은 건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기타등등
78년작이니 토미 리 존스도 어릴 때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여자 상대 페이 더너웨이가 연상이니까요. 라울 줄리아가 로라의 남편으로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는 R.J.라는 괴상한 예명을 쓰고 있지요.
'리뷰 > 미스터리 / 스릴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턱 - Stuck (2007) (6) | 2008/07/19 |
|---|---|
| 핏방울 떨어지는 집 - The House That Dripped Blood (1971) (0) | 2008/07/18 |
| 미스트 - The Mist (2007) (4) | 2008/07/17 |
| 모든 어둠의 색깔 - Tutti i colori del buio (1972) (0) | 2008/07/16 |
| 노크: 낯선 자들의 방문 - The Strangers (2008) (0) | 2008/07/09 |
| 로라의 시선 - Eyes of Laura Mars (1978) (0) | 2008/07/09 |
| 피투성이 아이리스 사건 - Perché quelle strane gocce di sangue sul corpo di Jennifer? (1972) (0) | 2008/07/05 |
| 마인드헌터 - Mindhunters (2004) (3) | 2008/06/30 |
| 섹소시스트 - L' Ossessa (1974) (19) | 2008/06/29 |
| 거머리 여인 - The Leech Woman (1960) (0) | 2008/06/28 |
| 해프닝 - The happening (2008) (26) | 2008/06/16 |
트랙백 주소 :: http://extmovie.com/trackback/5718
-
Subject: 살인마의 시선으로 - [로라 마스의 눈]
Tracked from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 2008/07/09 08:23 삭제[네트워크]를 감상했을 때, 저는 이상하게도 페이 더너웨이의 얼굴이 무섭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사랑조차 자신의 것이 아니라 TV 속의 허구인 것처럼 받아들이던 여인, 시청률에 모든 것을 건 여인 - 심지어 살인도 생각하는 - 에게서 인간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야 그럴 법 하다고 쳐도, 이러한 감정은 다소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나는 그녀의 얼굴이 왜 그렇게 무서웠던 것일까? 시간이 가면서 그같은 질문은 금새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지만, 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