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예능 무대 '게타이'를 소재로 한 영화
의도는 좋으나 진부함이 아쉬워
싱가포르에도 DVD 타이틀을 대여해주는 체인이 있다. 여기서는 개당 3-4달러 정도를 받는다. 요즘 환율이 올라서 싱1달러에 약 팔 백 원 정도 된다. 한 개 타이틀을 빌리는 데 삼 천 원 이상이 되니 어쨌든 싼 가격은 아니다. 오랜만에 대여한 타이틀로 싱가포르 로컬영화를 보았다. 로이스톤 탄(Royston Tan)이라는 싱가포르의 젊은 감독이 만든 <881>이란 영화이다. 이 영화는 작년에 싱가포르에서 개봉을 했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이 되었다.
이 감독은 주로 단편영화를 만들다가 <4:30>이란 장편영화를 찍었다. 나는 이 영화의 DVD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이 영화에는 처음 보는 한국 남자 배우가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는 엄마가 중국에 가 있는 초등학생 소년이 나오고, 한국 배우는 그 소년의 삼촌 역할을 연기한다. 고독한 한 소년에게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한국인 삼촌이 오고, 그들 사이에 어떤 유대감이 생긴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그러나 영화는 꽤 지루하다.
이 감독은 얼마 되지 않는 싱가포르 영화감독들 중에서 꽤 촉망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장편영화를 찍는 영화감독들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리라. 싱가포르 로컬영화들은, 잭 네오의 영화들이 대표적인데, 싱가포르 사회에 대해서 잘 모르면, 차라리 안 보는 것이 좋다. 만약 싱가포르에 방문해 본 적이 없고, 싱가포르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의 관객이라면, <881> 같은 영화를 끝까지 보기 힘들 것이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룬 기사들은 모두 이 영화를 좋게 평가했던 것 같다. 당연하다. 영화제라는 이벤트는 영화를 홍보하고 배급을 해보려는 공간이다. 그리고 초청작에 대해서 주최 측은 좋은 말로 그 영화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자기네가 초청한 영화들이 별로 재미없다고 솔직히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영화는 일종의 뮤지컬이다. 싱가포르에는 게타이(Getai)라는 가설무대에서 공연이 이루어지곤 한다. 나도 가끔 HDB(정부임대아파트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근처에 있는 작은 시장 같은 곳에 이런 가설무대가 설치된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를 보면 특히 음력 7월, 한 달 동안 이 공연 시즌이 이어지는 것 같다. 이 음력 7월은 중국인들에게는 지옥의 문이 열리고 귀신들이 이승과 저승을 드나드는 시기이다. 켈빈 통의 <하녀의 저주>(the maid)라는 싱가포르 호러영화 역시 이 기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게타이라는 무대에서 전문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이 있고, 이 게타이의 역사는 싱가포르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로이스톤 탄이라는 젊은 감독은 자신의 부모 세대들이나 가지고 있을 그 노스탤지어를 영화에 담고 있다. 그것 자체는 싱가포르 감독으로서 평가할 수 있는 덕목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에는 파파야 시스터즈가 등장한다. 빅 파파야와 리틀 파파야, 두 소녀는 게타이의 가수가 되고 싶어 한다. 이 파파야 시스터즈 중의 한 명은 대학까지 나왔는데, 게타이의 가수가 되겠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쫓겨난다. 이들을 돌봐주는 매니저 아주머니가 있고, 그 아주머니의 아들은 이 시스터즈의 로드매니저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호키엔 노래들을 들려준다. 중국 남쪽 지방의 사투리라고 할 수 있는 그 언어들의 노래는 한국으로 치면 뽕짝이라고 할 수 있다. 가사들은 좀 적나라하다. 사창가에서 태어나 인생이 고달프다는 내용의 노래도 있다. 그 가설무대에서 이 파파야 시스터즈는 촌스럽지만 화려한 의상을 입고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그 모습에서 이국적인 풍경이라고 생각하고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사실 그게 쉽지 않다. 이 두 여성은 가수가 되기 위해 매니저 아주머니의 쌍둥이 자매에게 찾아간다. 그 자매는 일종의 여신이다. 그 여신은 그 가수가 되려는 두 여성에게 가수의 목소리를 주는 대신 남자와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건다. 그러면서 이상한 광선을 쏘아대는 데 그런 장면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다.
배우들의 연기는 과장이 되어 있고, 의도된 것이겠지만 어쨌든 장면들은 매우 촌스럽기 그지없다. 특히 두리안 시스터즈와 경쟁을 벌이는 과정은 억지스러운 설정 때문에 별다른 재미를 느낄 수 없다. 두 여성 사이의 유대감을 깊게 표현하고 있어서 이 영화가 혹시나 동성애 코드를 담고 있지 않을까라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또 로드매니저 남자와 삼각관계가 심각하게 그려질 것이라는 염려도 할 필요가 없다. 그런 것에 이 영화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이 영화는 게타이 문화를 재현하고 그 호키엔 노래들을 들려주는 데만 온 신경을 쏟는다. 스토리의 개연성의 부족이나 상투성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것이 이 영화를 잘 감상하는 방법이 된다.
싱가포르 로컬영화로 이 영화의 기획 의도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 게타이라는 것 자체가 싱가포르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아무리 코믹 뮤지컬이라고 해도 너무 오버를 하고 있으며 진부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 영화는, 마치 잭 네오의 영화들이 싱가포르 사회의 단면들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계몽영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의도는 좋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틀이 관객들에게 별다른 재미를 안겨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영화들은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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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을 읽으니 영화가 한번 보고 싶어집니다
자기나라의 문화가 녹아있는 영화라니
참.. 류상욱님이 소개하셨던 룰넘버원은
이번 부천영화제 상영작이어서 반가웠습니다
어떻게 보나 했었는데 빨리 해결이 되어서..
변함없이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아, 정말 잘 되었네요. 켈빈 통의 <룰 넘버 원>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부천에서 꼭 이 영화를 만나시길 바라겠습니다. 동남아 영화들을 되도록 많이 소개하려고 하는데, 익스트림무비의 독자들이 좋아하셨으면 좋겠네요. 부디 부천에서 좋은 시간 보내세요.
이번에 소개하신 영화는 좀 떨어지는듯하네요
개성적인 색깔을 가질순 있겠지만
역시 영화는 영화적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
저또한 윗분처럼 룰넘버원 기대중이에요!
이 영화는 일부러 그렇게 한 것 같기는 한데 많이 촌스럽습니다. 이게 외국인 관객들이 참고 보기 힘든 요소가 아닌가 싶네요. <룰 넘버 원> 꼭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