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영화의 무덤 충무로
이번 주 씨네21 660호의 '2008 호러열전'을 보면서 우울함을 느꼈다. 38페이지에 이르는 호러 특집을 열심히 읽어가다, 김종일 작가가 쓴 호러단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멈추었다.
단편 소설의 내용은 국내 최초의 좀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연출까지 겸한, 한 순진무구한 신인 감독의 불행한 삶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지하 단칸방에서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지만, 늘 벽에 부딪친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제작사의 대표는 매번 이런 게 있으면 더 좋겠는데 따위의 요구를 한다. 결국 의견을 수렴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다 대망의 OK 사인을 받는다. 폐인이 되기 일보직전에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그걸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계속 반복된다. 신인 감독은 시나리오가 통과가 되면서 숨통을 조이는 골방을 벗어나 현장에서 많은 스탭들과 함께 좀비 영화를 찍는 꿈에 부풀어 오른다. 아주 잠깐 동안 말이다. 그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제작사 대표는 영화 투자금이 입금 되자 곧 바로 튀어버렸고, 오랜 고생 끝에 빛을 보게 되나 고대하던 신인 감독은 좌절한다. 분노에 찬 그는 제작사 대표를 찾아 헤매지만 사기보다 더 한 현실을 대하며 무너진다.
가볍게 읽을 수도 있지만 2페이지에 불과한 이 단편소설은 대단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다. 그래서 우울하다. 충무로 공포영화 제작 방식은 주먹구구식이다. 이 단편에서 묘사한 상황은 실제 제작 방식과 다르지 않다. 물론 소설과 달리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한 팀으로 뭉쳐지기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가 쓴 이야기가 그냥 무사통과될 수는 없다. 최근 트렌드와 흥행 요소들, 그리고 주요 관객 분포 등을 고려해서 수정, 또 수정의 작업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수정과 수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충무로 공포영화들 대다수는 기대와 달리 절망 수준이었다. 왜 이야기가 중심이 없고 중구난방인지 그 내용은 이 소설에서 묘사한 그대로다. 몇 번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면 뭔가 깨우치고 변화라도 있어야 하는데, 제작 방식은 그대로 고수를 한다. 공포영화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관객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그렇게 잘 알고 있다면 간섭할 이유가 없다. 직접 이야기를 쓰고 감독을 맡으면 되는 것이다. 애초 전지전능한 신이나 된 것처럼 떠벌이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공포영화 마인드가 있을 리가 없다. 여름 한 철 장사로 한 몫 챙기자는 안일한 발상에서 시작이 되었으니, 공포영화 제작 열기가 식는 것은 당연하다.
참을 수 없는 것은 깽판을 친 주범은 따로 있는데, 그들은 관객에게 책임을 돌리고 좋은 이야기가 없다는 불평을 해댄다. 좋은 이야기를 갖다 줘도 주절주절 개소리를 하면서 망칠 인간들이 이제 충무로에 공포영화는 통하지 않는다며 입을 모은다. 장르영화가 탄탄하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은 피할 수 없다. 2000년부터 시작된 공포영화 제작 열기는 8년차를 두고 완전히 꺾어버렸다. 8년이란 시간은 길기도 하지만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충무로 공포영화는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단편 소설의 결말은 그 신인 감독이 결국 불귀의 객이 된 채 끝을 맺는다. 자신이 죽은 지도 모르고 방황하던 그를 이끄는 저승사자는 뼈아픈 말을 남긴다. 다음 세상에서는 사시사철 공포영화가 대접받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태어날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격려로 막을 내린다. 나는 이것이 충무로 공포영화의 현실과 미래를 그대로 담아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호러천국으로 불리는 미국과 일본도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여기보다는 더 많은 기회가 열려져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최고의 공포영화 브랜드로 성장한 <쏘우>는 운이 좋다. 그런 이야기를 충무로에 들이 밀었다가는 분명 사이코 취급을 받고, 이야기는 만신창이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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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를 들고 싶다면 조중동을 소재로 만들어라...말만들어도 무섭다 ㅎㅎㅎ
흐.. 엄청 무섭겠는데요. 어제 조중동 vs 네티즌 뉴스후에서 하던데 흥미롭더군요. 광고 수익이 그렇게 많을줄은 -_-
원래 비디오용 영화로 기획됐다가, 극장 걸어서 대박 터트린 쏘우를 보면
암울한 우리나라 호러영화계가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 ('괴시' 이후에)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 좀비영화에 '좀비'로 출연하는게
(기왕이면 주인공을 위협하는 좀비로...^^)
필생의 바람인데, 참으로 요원한 바람인 듯 싶습니다ㅡ.ㅜ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운이 따라주기는 불가능한.. 제작비가 싸면 극장 확보가 힘들다는 얘기까지 나오니 흑
이번에 개봉하려는 고사가 예고편만 봐선 왠지 쏘우삘이 나는 것 같더군요.
미쿡에서 요즘 쏘우삘 나는 영화가 흥행 좀 하니까 우리도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급하게 만든 건 아닌지 불안합니다.
그보다 씨네21 이번 거 사야겠군요. 몇 주 전에 슈퍼히어로 특집도 사고 흐뭇 해 했는데 이런 흐뭇한 특집이 또 나왔을 줄이야~
고기 사진이 아주 쇼킹했습니다. 공포영화를 유행에 따라 만드는것도 좋지만 워낙 개념들이 없어놔서.. 쩝
슬픕니다... 공포영화 좋아하고, 만드는게 꿈인데...
공포영화를 하고 싶으시면 이민을 가시는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_-;
이번 씨네21 꼭 사봐야겠네요
호러특집도 궁금하지만 김종일 작가님 단편이 너무 궁금하네요
한국에서 공포영화는 말씀대로 사람이 바뀌지 않는한
똑같을거 같다는데 공감합니다
모든게 기존 사람이 바뀌지 않는한 큰 변화를 바라기는 힘들겁니다. 새로운 작가 감독은 계속 나오겠지만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은 늘 똑같으니...
투기성 자본이 너무 점령을 해버려서... 굳이 공포영화만의 문제는 아니죠.
다른 장르는 뭐 제대로 만들고 있나요.... -_- 범죄물은 좀 낫지만.
그렇긴 합니다. 공포영화의 특성상 한번 뿌리를 내리게 되면 장기적으로 지속이 되기 때문에 더 안타깝네요. 한몫 챙기자는 발상들만 하고 있으니 영화들이 - -
돈줄 쥔 사람들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으면 그 판이 그 판이란 얘기군요. 그야말로 호러.
그 자체가 정말 생호러가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 바뀌려나 모르겠습니다
억지로 비유하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게 간섭하던 선조의 상황과 비슷하군요. '가만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명언대로.
창의적인 영화 작가들이 알아서 하게 좀 내비둬야 하는데, 마구 휘저어놓아서 망쳐놓고 마는 현실....... 거의 10년 동안 죽 쑤고 있는데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서글픈 현실.
공포영화 얕보지 말고, 진지한 애호가 작가들에게 맡겨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애니메이션도 얕보고 망쳐놓더니, 공포영화판에서 그 일이 재현되었나 봅니다.
날림 투기 문화 근절!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지........ T_T
올려주시는 글 매번 잘 보구 있습니다.
퍼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