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기스런 분위기의 일본산 흡혈귀 영화
<피를 빠는 인형>은 야마모토 미치오 감독의 소위 흡혈 3부작 <피를 빠는 인형>, <피를 빠는 눈>, <피를 빠는 장미> 중 첫 번째 작품이다. ‘고어’와 ‘엽기’를 동반한 잔혹극이 예상되는 제목과는 달리 이 영화는 ‘처키’같은 양아치(!) 연쇄살인마 인형이 부엌칼을 휘두르는 난도질 영화나 <피를 빠는 변태들>처럼 말 그대로 ‘블러드써킹’한 영화가 아닌 지극히 동양적인 분위기의 소복입은 여인이 등장하는 조신하기(-_-) 그지없는 뱀파이어 영화다.
외국에서 막 돌아온 사가와는 약혼녀 유코(고바야시 유키코)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에 들렀다가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유코가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사가와는 그 날 밤 집에서 배회하는 유코의 모습을 목격한 후 그녀의 어머니의 말에 의심을 품게 된다.
한편 사가와의 동생 게이코(마츠오 가요)는 외국에서 돌아온 자신의 오빠가 1주일째 연락이 없자 남자친구와 함께 유코의 집을 방문한다. 유코의 어머니는 그들에게 오빠는 이미 그 집을 떠났다고 이야기하지만 게이코는 수상한 낌새를 느낀다. 그녀는 남자친구를 시켜 일부러 차를 고장 낸 후 그 집에서 하루를 더 머무르고 그 날 밤 그녀 역시 죽었다는 유코의 모습과 조우한다.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확신한 게이코는 다음 날 실종된 오빠를 찾기 위해 마을을 조사하고 예전에 그 곳에서 일어난 한 끔찍한 살인사건이 두 사람의 실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피를 빠는 인형>은 사회경제적으로는 고속 성장 속에서 동양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불균질적으로 변해가던 6-70년대의 상황과 더불어 영화사적으로는 ‘괴담’류의 전형적인 사극 공포영화에서 웨스턴 호러의 문법이 도입되는 시기의 과도기적인 일본 공포영화의 당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마치 80년대 한국 공포영화 <깊은 밤 갑자기>처럼). 역시 <깊은 밤 갑자기>에서도 영화의 배경으로 사용된, 당시엔 상당한 부르주아 계급이 아니고서는 소유하기 힘든 대저택의 공간을 이용한 공포 효과나 약간은 생뚱맞은 흡혈귀의 설정 등을 보면 장르 문법을 통하여 서양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어떤 강박증 같은 것이 보인다(해머 영화사의 드라큘라 영화의 영향이 물론 가장 컸을 테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조르주 프랑주의 몇몇 공포영화들의 기운도 느껴진다).
그것은 영화의 배경뿐만이 아니라 개인적 복수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동양의 고전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캐릭터로부터 탈피하여, 연쇄 살인마, 파우스트 스토리, 흡혈귀 등의 어찌 보면 잘 버무리기 힘든 소재들을 하나로 묶어 표현하려고 한 스토리라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는 여타 시대극 공포영화들에 비해 충분히 무서운가? 무섭기로 소문난 한국의 <깊은 밤 갑자기>에 비한다면 미소 지으며 볼 수 있을 정도라고 말해도 되겠다. 이 영화에서 인형(정확히는 흡혈귀)으로 변한 유코가 등장하는 장면은 10분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절제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화는 순수하게 유코의 어머니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하인(역시 고전 고딕 공포영화의 단골 캐릭터)과 그들을 둘러싼 저택의 분위기, 그리고 인물들 간의 긴장감으로만 영화를 이끌어 가야 하는데 역시 뭔가 힘이 좀 부치는 듯하다(그래도 사가와나 게이코가 저택에서 겪는 하룻밤의 묘사같은 경우는 상당히 공포스럽고 세련된 연출을 보여준다).
유코의 어머니, 하인, 의사 등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인물들은 모두 2%씩 부족한 느낌을 준다. 군더더기도 많은 편이다. 예를 들자면 의사가 조목조목 과거의 일을 설명하는 후반부는 요즘이었다면 <링>처럼 무시무시한 화면빨(사다코의 어린 시절 장면)로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제작비의 압박이...)
사실 <링>이나 <주온>처럼 이미 충분히 간담을 서늘케 한 영화들을 경험한 마당에 이런 옛날 공포 영화들이 지금의 관객들에게 특별히 후덜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각박해져가는 사회를 대변하듯 피도 눈물도 없는 21세기형 연쇄살인마들이 판치는 지금 이렇게 조금은 허술하고 인간적인 모습의 흡혈귀 캐릭터를 만나보는 것도 공포영화 팬이라면 충분히 신기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관련 리뷰
2007/04/02 - [리뷰/흡혈귀] - 저주받은 집: 피를 빠는 눈 - 呪いの館 / 血を吸う眼 (1971)
'리뷰 > 흡혈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이트메어 시스터즈 - Nightmare Sisters (1987) (5) | 2008/11/30 |
|---|---|
| 피를 빠는 인형 - 幽霊屋敷の恐怖 血を吸う人形 (1970) (2) | 2008/06/30 |
|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 30 Days of Night (2007) (5) | 2007/12/30 |
|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 30 Days of Night (2007) (9) | 2007/12/29 |
| 드라큘라 백작부인 - Countess Dracula (1971) (1) | 2007/12/21 |
|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즌 2 : 피투성이 장례식 - The V Word (2006) (0) | 2007/11/21 |
| 프라이트 나이트 - Fright Night (1985) (5) | 2007/11/12 |
|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즌 2 : 피투성이 장례식 - The V Word (2006) (3) | 2007/07/09 |
| 뱀파이어 - Vamp (1986) (0) | 2007/05/21 |
| 피 묻은 입술 - Lèvres de sang (1975) (6) | 2007/05/15 |
| 여자 흡혈귀 - 女吸血鬼 (1959) (2) | 2007/04/22 |
|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
|
|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읽어 내려오다가 어! 이거 대열이형이 쓴 건데..? 했는데 역시나 이웃집 살인마님..^^
표정이 한결 같은 게 매력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