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고증도 특수효과도 엉망진창
(스포일러가 있거나 말거나...)
<캠퍼스의 괴물>이라뇨. 이렇게 재미없는 제목이 있습니까? 하지만 제목에 비해 영화의 아이디어는 굉장히 튀는 편입니다. 창의적인가? 그럴지도. 하지만 과학적이라고는 죽어도 말 못하겠군요. 어마어마하게 바보 같은 설정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봐도 그래요.
그러니까 이렇습니다. 도널드 블레이크라는 고생물학자가 대학에 실러캔스의 냉동 표본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우연히 거기서 떨어진 물을 마신 개가 갑자기 광견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사람을 공격해요. 잡아서 보니까 이 개는 조상인 멸종한 늑대의 모습으로 퇴화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블레이크는 실러캔스의 표본을 만지다가 이빨에 손을 베이는데... 하하, 짐작하시겠죠? 그는 순식간에 원시인으로 퇴화해 버립니다. 원시인으로 변한 그는 캠퍼스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죠. 그 효과는 일시적이라 그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죽인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건 아니죠.
어쩌다가? 짐작하셨겠지만 이 사람들이 주장하는 건 이런 겁니다. 실러캔스는 몇천만 년 동안 거의 진화를 하지 않은 '살아있는 화석'입니다. 고로 이 물고기 어딘가에 종의 자체적인 진화를 막고 다른 생물에 주입하면 순식간에 진화를 역행시킬 수 있는 정체불명의 물질이 있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실러캔스를 먹어온 마다가스카르 원주민들은 어떻게 설명하냐고요? 대학에 온 실러캔스는 보존을 위해 감마선 처리를 했답니다. 미치겠죠? 저도 미치겠어요.
늘 그랬던 것처럼 잭 아놀드는 이 바보 같은 이야기를 굉장히 심각하고 진지하게 끌어갑니다. 그게 그 사람이 많이 만들었던 50년대 싸구려 SF의 매력이기도 하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바보스러움이 사라지느냐? 그건 절대로 아닌 말이에요. 오히려 그 스타일과 대비되어 더 눈에 뜨여요.
이 영화에서 가장 바보 같은 인물은 도널드 블레이크 자신입니다. 감마선에 오염된 실러캔스가 진화를 역행시킨다는 바보 같은 주장을 하는 것 자체는 그 세계가 원래 그렇다고 이해해주죠. 하지만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실수로 실러캔스에 감염되어 괴물이 되는 건 어떻게 설명할까요? 그러면서 러닝타임이 54분이나 흐른 뒤에야 자기가 괴물이 되어 사람들을 죽였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또 뭐고요. 충분히 동물 실험이 가능한 상황에서 자기에게 직접 '실러캔스 플라즈마'를 주사해 괴물이 되어 민폐를 끼치는 건 또 뭔가요? 그의 종말은 이런 식의 <늑대인간> /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이야기가 그렇듯 비참하지만, 전 그렇게 그가 불쌍하지도 않답니다. 첫 등장 때 약혼녀 앞에서 "Ah, the human female in the perfect state - helpless and silent"라고 이죽거릴 때부터 점수가 확 깎여 버렸으니 말이죠.
영화는 1시간 18분 정도로 짧은 편이고 (하지만 스튜디오 B급 영화의 표준 러닝타임입니다) 속도도 빠르지만 다소 지겨운 구석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관객 모두가 사건의 진상을 알고있는데도, 주인공들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방황하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블레이크가 진상을 조금 일찍 알아차렸다면 이야기가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특수효과는 거의 비참한 수준입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돈과 시간이 부족했어요. 잭 아놀드는 마지막 산장의 클라이맥스가 될 때까지 원시인 블레이크의 분장을 잘 안 보여주는데, 그래도 클라이맥스까지 안 보여줄 수는 없었죠. 드러난 원시인의 모습은 참으로 딱합니다. 그냥 유원지에서 파는 고릴라 가면을 뒤집어 쓴 것 같아요. 그러나 그거야 스탠 윈스턴이나 릭 베이커와 같은 거장들이 우리 입맛을 망쳐놔서 그렇지, 당시 관객들은 신경 쓰지 않았겠죠. 원시인이 나올 때마다 스크린에 팝콘을 집어던지며 신나게 봤을 거예요.
기타등등
지금 와서 보면 블레이크의 인류 진화도는 조잡하고 엉망입니다. 당시에도 엉망이었어요. 필트다운인이 가짜라는 건 53년에 입증되었는데, 여전히 버젓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죠.
왜 50년대 영화 속의 괴물들은 기절한 금발 미녀를 안고 방황하는 걸 그렇게 좋아했을까요?
네, 저도 감마선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헐크 생각 했습니다. <캠퍼스의 괴물>이 먼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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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류의 막나가는 영화들 진짜 좋아하는데.. 볼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잭 아놀드면 '검은 산호초의 괴물' 만들었던 감독이네요..
그 영화는 꽤 볼만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