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두기봉 감독의 신작 <스패로우>(Sparrow, 文雀)이 싱가포르에서 개봉했다. 그런데 단 두 개의 스크린에서만 상영되고 있다. 물론 이 두 개의 스크린이라도 감지덕지하다. 두기봉의 영화를 스크린으로 볼 수가 있으니 말이다. 이 영화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었다. 두기봉은 이제 잘 알려져 있듯이 유럽에서 꽤 대접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라있다. 나도 언젠가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이 감독을 특집으로 다룬 것을 본 적이 있다(게으름 탓에 아직 읽지는 못했다. 복사를 안 해놔서). 지금 홍콩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감독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된 사정에는 오우삼을 비롯한 많은 홍콩 감독들이 바로 그 홍콩을 떠났다는 것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왕가위 역시 홍콩을 벗어나서 영화를 찍고 있다. 그렇지만 두기봉은 홍콩에 남아 바로 그 홍콩이라는 공간에 대해 많은 사유를 한다. 그의 많은 영화들, 즉 경찰이 나오든 삼합회가 나오든 간에 그 영화들은 모두 ‘홍콩’에 관한 것들이다. 두기봉의 영화에서 재현되는 홍콩은 그야말로 영화적이다. <스패로우>에서 두기봉은 반환 이후 사라져가는 홍콩의 옛 풍경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감정을 드러낸다. 이것은 진정 ‘홍콩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역시 두기봉의 영화에는 임달화가 나와야 한다. 그는 어쩌면 이 감독의 페르소나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는 소매치기이다. 다른 일당 세 명과 함께 소매치기를 하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그 네 남자는 소매치기 기술은 꽤 좋은 편이다. 소매치기를 예술적 경지로 보여주는 영화가 있었다. 바로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Pickpocket)>였다. 이 영화를 보면 그 소매치기 기술에 감탄을 하게 된다. 아니 브레송 감독의 카메라 워크에 입을 떡 벌리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영화는 단순한 소매치기에 대한 작품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적 드라마였다. 두기봉은 그런 구원의 테마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소매치기 임달화는 구식 카메라로 홍콩의 거리를 찍는다. 그것도 흑백으로. 그 사진들은 사실은 두기봉이 사라져가는 홍콩의 거리를 기록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임달화는 우연히 아름다운 여인의 사진을 찍는다. 하이힐을 신고 항상 어디론가 뛰어가는 여인. 그 여인은 일종의 팜므 파탈이다. 돈 많은 노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그녀는 임달화 소매치기 일당에게 접근하여 자신을 도와주게끔 만든다. 바로 아름다운 여성의 매력으로. 남자들은 어쩔 수 없다. 아름다운 여자가 탐욕스런 노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소매치기 일당은 작전을 꾸미기 시작한다.
그러나 두기봉의 이 영화에는 총이 나오지 않는다. 바로 총 없는 두기봉 영화인 것이다. 총격씬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두기봉은 그 대신 이 영화에서 뮤지컬적인 영화적 리듬을 선보인다. 비록 배우들이 노래는 부르지 않지만 소매치기를 하고 거리를 걷고 뛰는 장면들은 뮤지컬을 연상시킨다. 특히 이 소매치기 일당이 역시 과거의 노련한 소매치기였던 그 노인과 한판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비가 내리는 건널목에서 우산을 들고 임달화를 비롯한 소매치기 일당과 그 노인 그리고 그의 패거리들이 서로 비껴 지나간다. 누가 누구를 소매치기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순간을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포착하기 힘들다. 매우 리드미컬하게 넘어가는 쇼트들은 두기봉이 장면 구성을 얼마나 치밀하게 하고 있는가를 증명한다. 그것은 진정 필견의 장면이다.
대륙에서 온 여자는 홍콩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렇게 홍콩은 경유하는 도시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아스라이 사라져 간다. 소매치기라는 직종도 홍콩에서는 사양산업이라고 한다. 두기봉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소매치기들을 등장시킨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참새’는 홍콩에서 소매치기를 말하는 은유적 표현이라고 한다. 두기봉은 자신이 살아온 도시의 풍경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다른 어떤 두기봉의 작품보다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이 영화를 보면 홍콩의 거리가 정겹게 느껴질 정도이다. 한국영화에서도 두기봉처럼 풍경을 새롭게 카메라에 담으려는 노력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의미에서 망원동의 구불구불한 골목의 풍경을 담고 있는 <추격자>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정녕 영화는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기록의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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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감상하셨다니 부럽기짝이 없습니다. ㅜ.ㅜ
한국에서도 극장에서 두기봉 영화가 개봉하는 그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를 해보죠..언젠가는...
익사일 보고 감동했었는데..
흑사회도 보고 싶은데 부산영화제때 못봤어요..
스패로우도 보고 싶네요...
따뜻한 영화라니 더 기대가.. 첫 번째 사진 넘 좋아요!
<익사일>과 <흑사회> 모두 대단한 작품들이죠. 두기봉은 작품 수가 많고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만드는데, 점점 더 대단한 작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클래식 카메라(라이카로 보이는데..)로 홍콩의 정취를 담으려는 소매치기라..설정이 재밌네요.. 소매치기만 아니라면 과거 사라져가는 프랑스 거리를 담으려 노력했던 사진가 '외젠 앗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국내에서도 개봉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랍니다..^^
저도 사진에 취미가 있는 소매치기는 이 영화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임달화는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카메라로 거리의 풍경을 찍습니다. 그 모습이 정겨워보이죠...
두기봉 영화 보고 싶네요.. ㅠ.ㅠ
국내 극장개봉 반드시 하기를..!!
저도 두기봉 영화들이 줄줄이 한국에서 개봉하기를 바라겠습니다.
바로 이런 작품을 스크린에 걸어야 하는겁니다. 국내개봉 무조건!
안목있는 영화수입사 사장님이 계실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익사일은 왜 dvd로도 안나오는겁니까!!!!!!!!
개봉했으니 곧 나올겁니다... ^^
좋아하는 감독인데 신작이라니 반갑네요..
우울한건 두기봉 영화들이 개봉을 잘 안한다는거..
흑사회 보고 싶은데.. 흑
다운의 유혹은 있지만 감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근데 이번 영화는 왠지 흐뭇할거 같은데요...
좋아하는 감독.. 좋은 영화평.. 잘 읽고 갑니다... !
고맙습니다. 저도 왜 두기봉 영화들이 한국에 소개가 잘 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영화적으로도 훌륭하고 재미도 있는데요. 확실히 한국의 영화시장은 문제가 많습니다...
PickPocket 정말 예술이죠ㅠ.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로베르 브레송은 정말 위대한 감독이지요. 그리고 그의 <소매치기>만큼 훌륭한 소매치기 영화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평을 읽으니 정말 보고 싶어지는군요..
사라져가는 홍콩을 기록한다...
저 또한 마음에 와닿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생각에 두기봉 감독은 진정으로 홍콩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이 이번 영화에 담겨 있기도 하구요....
평을 읽어보니 같은 소재라도 영화가 전혀 다른 느낌인거 같습니다
한국영화중 무방비도시(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은 -_+)가
소매치기 영화였는데 어쩌면 그렇게 못만들수가 있을까 생각을 햇거던요.
이영화는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됩니다
윗분들처럼 사라져가는 홍콩을 기록한다는
문장에서 찡했습니다. 왠지 울컥해지는
홍콩 여행을 자주 갔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멋진 영화평입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홍콩에 두 번 가봤는데, 그 도시의 느낌이 좋기도 했지만 너무 비좁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 비교해서 홍콩이 훨씬 더 영화적으로 풍부한 도시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기봉은 홍콩의 중국반환 이후 홍콩의 역사적 자취가 서려 있는 건물들이 너무 빨리 없어지는 것에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때려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 데 익숙한데, 영화들이라도 옛 풍경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