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서 할리우드의 주류가 되기까지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것일까, 영웅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 영화 <아이언맨>으로 풀어보자면, 시대의 힘이 조금 더 우월한 것 같다. 천재적인 과학자이자 무기상인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이란 슈퍼히어로가 된 것은, 자신이 만들고 판 무기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우리 편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다고 믿은 무기가, 적군이 아니라 내 동료와 민간인들에게 쓰인다면 대부분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다. 2차 대전처럼 우리와 적이 분명했던 시대였다면, 아무리 무기를 많이 팔아도 토니 스타크는 크게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는 우리와 적의 구분이 모호하고 군인과 테러리스트, 민간인의 구별이 무색해지는 시대다. 토니의 각성은 이 시대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이언맨>의 경우가 보편적인 예라고 하기는 힘들다. 아이언맨은 일반적인 슈퍼히어로와는 조금 다르다. 초능력을 가진 보통의 슈퍼히어로와는 달리 아이언맨은 배트맨과 퍼니셔처럼 육체의 힘을 극대화시키고,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 초인이 되는 경우다. 대부분의 슈퍼히어로는 초월적인 능력을 갖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슈퍼히어로가 되지만, 아이언맨과 배트맨은 자신의 결단으로 슈퍼히어로가 된다. 복수건, 정의감이건 상관없지만 그 이유는 대체로 외부에서 온다. 즉 그 시대와 사회의 공기가 그들을 슈퍼히어로로서 재생시키는 주된 이유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
이처럼 실제의 영웅만이 아니라, 가상의 영웅을 만드는 것 역시 시대다. 만화와 영화 속의 슈퍼히어로는 그 시대의 요구를 담아내는 존재다. 한 시대를 반영하고, 대중의 욕망과 소원을 '초능력'에 반영하는 것이다. 1929년, 미국만화에서 최초로 등장한 슈퍼히어로 버크 로저스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 지구의 모든 것을 탐험했던 인간의 다음 도전 상대였던 우주에서 활약한다. 이후 DC 코믹스의 <수퍼맨>, <배트맨>에 이어 39년 시작된 마블 코믹스에서는 <서브 마리너> <휴먼 토치> <샌드맨> 등이 등장한다. 2차 대전이 시작된 후 슈퍼 히어로들은 독일군과 일본군을 물리치는 애국주의적 영웅으로 전화한다. 절대적인 능력을 가친 슈퍼히어로가 현실의 바람을 담아 전쟁영웅으로서 악을 물리치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던 50년대가 지나고 60년대로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흑인과 여성 운동 등 민권운동이 격렬해지고, 65년 베트남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프랑스의 68혁명이 일어났다. 기존의 질서가 해체되고, 다양한 사람과 집단들이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면서도 평화를 갈구하는 시대의 기운은 당연히 슈퍼히어로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마블 코믹스는 61년 <판타스틱 포>, 62년 <스파이더맨>, 63년 <엑스맨>을 차례로 시작했고, 이것은 스탠 리와 쟈크 카비 콤비가 이끄는 마블 혁명으로 불리게 된다.
영화 <엑스맨>으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새로운 유전자로 인해 돌연변이가 된 엑스맨의 이야기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세대 간의 갈등을 여실히 보여준다. <스파이더맨>은 사춘기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피터 파커의 모습을 통해, 청소년들이 성장하면서 느끼는 성장통을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우울한 70년대의 사회상을 그린 이안 감독의 <아이스 스톰>에서 막 대학생이 된 소년은 <판타스틱 포>를 탐독한다. 자신의 기괴한 모습에 괴로워하면서도 정의를 위해 싸우는 판타스틱 포의 모습은, 일그러진 기성세대에게 반항하면서 돌연변이 취급을 받는 젊은 세대의 초상이었다.
슈퍼히어로 세계에 불어닥친 혁명
미국 만화 속 슈퍼히어로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변화한 것은 <씬 시티>의 공동 감독이기도 한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현재 영화로 제작중인 앨런 무어의 <왓치맨>이 출간된 1986년의 일이다. 프랭크 밀러와 앨런 무어는 일면적이었던 영웅의 캐릭터에 과격한 폭력 묘사와 정치, 철학을 집어넣어 히어로의 유년기를 마감하고 만화를 '성인의 문학'인 그래픽 노블로 한 단계 끌어올린다. 프랭크 밀러와 앨런 무어 이후에 등장한 슈퍼히어로들은 단순한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정의를 위해 맹목적으로 싸우던 슈퍼 히어로의 내면은 복잡함을 넘어 균열이 일어나고, 선악의 구별이 모호한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데어 데블은 맞서 싸우는 악당들보다도 야비하고, 폭력적이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슈퍼히어로다.
80년대 중반 만화의 혁명이 시작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만화가 소수의 오락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점도 있다. 70년대 들어 만화는 아이들이나 소수 마니아들만 보는 장르로 전락했다. 80년대에도 다수의 대중은 만화보다도 만화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 열광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부활시킨 SF영화, 모험영화, 공포영화 등은 킬링 타임용의 오락으로 최상급이었다. 또한 과열된 냉전체제는 록키와 람보 같은 상처받은 영웅들을 '슈퍼히어로'로 만들었다. 1편과는 달리, 록키와 람보는 편을 거듭하면서 악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가 되어, 만화 속 슈퍼히어로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냉전이 몰락하면서 함께 몰락했다. 시대는 흑백논리로만 일관하는 영웅을 원하지 않게 된 것이다.
새 시대의 다양한 영웅상
90년대 이후 스크린에 속속 등장한 슈퍼히어로들은 각양각색이다. 엑스맨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수퍼맨은 여전히 가족을 찾고 있다. 배트맨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음울한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반대로 아이언맨은 농담처럼 슈퍼히어로 역할에 몰두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만나는 슈퍼히어로에게는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악과 결탁하여 청부업자를 하는 것도 가능하고, 그저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영웅놀이에 뛰어드는 것도 가능하다.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가 보여준 것처럼, 이제 신과 구세주는 누구에게나 가능하고, 가상현실은 곧 현실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슈퍼히어로도 결국은 인간이고, 보통 사람들과 절대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미 우리들은 누구나 인터넷 게임 속에서 슈퍼히어로나 무림 절대고수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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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영웅들도 라퓨타에서 내려와 대지에 안착했다고 할까요... ㅎㅎㅎ
서민적인 영웅또한 멋집니다.. ㅎㅎㅎ
이러다 옆집 아저씨 조만간 빨간빤스입고 날라다니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아줌마 망사 빤스는 안되는데 ㅋㅋㅋㅋㅋ
그렇네요, 만화 영웅도 폐쇄성에서 개방성으로 이분법에서 벗어나 다양성으로 초월적 신화적 영웅에서 인간적 영웅으로 등등 사회 상황에 따라 진화 변화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을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부르는 것 같던데
슈퍼 히어로는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환경 문제와 관련된 히어로가 등장할 만도 한데..아직 없죠??
개인적으로는 오리엔탈리즘이 서구의 슈퍼 히어로
문화와 융합된 새로운 영웅물이 나왔으면 하기도...
일본 만화 '천상천하'와 같은 동양 무술을 중심으로
온갖 기인들이 등장하는 미국 하이스쿨을 설정해보는것도
흥미로울 듯 합니다. ㅋㅋ
지금 캡틴플래닛 무시하나효?
공해와 싸우는 우리의 영웅~ ♪
지구를 위해 뭉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