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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머리카락 (완결)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목재 계단을 밟는다.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유독 거슬린다. 아래층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다. 어둠 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도 같다. 계단 중간의 벽에 샹들리에 스위치가 있다. 불을 켜야 한다.

“누구야.”

아무런 대답도 없다.

“누구냐구!”

짐짓 거칠게 소리 질러 보지만, 여전히 그 어떤 소리도,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내가 계단을 내딛는 소리만이 불쾌하게 귓속을 긁어댈 뿐이다. 스위치까지 가는 거리가 무척이나 멀게 느껴진다.

계단 밑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다. 원초적인 공포심이 가슴속에서 일어나 속을 울렁거리게 한다.

벽을 더듬거리던 손이 마침내 스위치에 미치자, 나는 허겁지겁 스위치를 누른다. 샹들리에 불조차 쉽사리 들어오지 않는다. 형광등을 갈아놓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든다. 샹들리에의 오래된 형광등이 불규칙하게 깜박이는 와중에 거실의 사물들이 사이키 조명 아래의 그것들처럼 번뜩이며 몸체를 드러냈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 사이 뭔가 시야를 스쳐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침내 불이 켜진다.

어둠이 사라진 거실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거실로 내려가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등 뒤로 뭔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본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다. 때로 인간의 감각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환청이나 환각을 만들어내곤 한다. 이 순간 오감(五感) 따위는 믿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절망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오감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건 그보다 더한 절망적인 일이다.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그저 길을 잃은 다람쥐나 개구리 따위가 기어들어온 게 분명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불안감을 잠재우려 애쓴다.

그러고 보니, 거실 앞으로 난 창이 좀 이상하다. 창에 쳐 놓은 커튼이 바람에 펄럭인다. 아까 나는 분명 창을 단단히 잠그고 커튼까지 쳐 놓았다. 달려가서 커튼을 젖힌다. 살펴 보니, 바람은 유리창 왼쪽 밑 부분에 생긴 구멍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 유리창은 기묘하게 깨져 있다. 두께가 5mm는 족히 되는 강화유리다. 벽돌을 집어던져도 한두 번 던져서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유리의 왼쪽 밑 부분이 깨져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리에 구멍이 나 있다. 축구공 하나는 족히 드나들만한 구멍이 왼쪽 밑 부분에 나 있고, 그 주변부에 잘디잔 구멍이 숭숭 나 있다. 이상하다. 이런 재질의 유리는 구멍이 생길 정도의 충격을 받게 되면 대개 조각조각 박살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구멍과 그 구멍 주위의 잘디잔 구멍들을 제외하면 유리창에는 금 한 줄조차 없다. 유리창에 이런 구멍이 나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이런 구멍이 나는데도 위층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순간, 위층에서 또다시 뭔가 끌리는 소리가 난다. 뒤이어 위층에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자기야. 도대체 무슨 일…….”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다시 잠잠하다.

일이 터졌다. 나는 계단을 다급하게 오른다. 일이 터진 게 분명하다. 계단을 거의 다 오를 즈음 나는 발을 헛디뎌 호되게 정강이를 계단 모서리에 찧는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마냥 괴로워하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나는 절룩거리며 복도로 들어선다.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 한데 이상하다. 그녀는 나를 향해 선 채로 입을 쩍 벌리고 있다.

“괜찮아?”

그러나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어어어…….”

그녀는 기묘한 소리를 내고 있다. 방문 앞에 선 채로. 마치 이를 닦고 입 속을 헹굴 때 내는 소리를 나지막이 내고 있는 것 같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녀의 몸 앞쪽을 뭔가가 뒤덮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들은 무수한 머리카락들이다. 머리카락들은 날이 곤두선 바늘처럼 그녀의 머리부터 등,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에 이르는 온몸을 꿰뚫고 나와 하늘거리고 있다.

머리카락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녀의 등 뒤로 아내의 머리가 보인다. 허공에 떠 있다, 아내의 머리는. 분명 아내의 머리는 완전히 죽어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머리카락들은 사방에 가닥들을 뻗어 천장이며 천장의 전등이며, 벽걸이 등에 머리카락을 뻗어 휘감고, 이미 썩어문드러진 아내의 머리를 지탱하고 있다.

저 망할 것이 지옥의 틈새에서 북북 기어 나온 것이다. 저를 달고 있는 머리통의 양분을 쪽쪽 빨아들이기라도 했는지, 가닥가닥이 2미터는 족히 되도록 길어져 있는 머리카락은 빛나는 생기로 번뜩이고 있다.

그녀의 몸을 관통한 머리카락들이 갑자기 미친 듯이 요동친다. 머리카락들에 의해 거칠게 헤집어진 그녀의 몸 전체에서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그녀는 무기력한 경련을 해대다 끝내 바닥에 고꾸라진다.

확실히 보인다. 저 망할 대갈통. 미라처럼 쪼그라든 아내의 대갈통을 지탱하고 있는 머리카락들. 머리카락들은 단말마의 경련으로 이따금 움찔거리는 그녀의 몸에서 스륵 빠져나와 서서히 나에게로 손길을 뻗는다. 몸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저 머리카락들을 갈가리 찢어버려야 하는데,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꿈이 아니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눈을 뜨면 내 아름다운 그녀가 내 품에 안겨 잠들어 있을 것이다. 내 아름다운 그녀가 저런 망할 머리카락에 꿰뚫려 너덜너덜한 고깃덩이가 될 리 없다.

하나…….

가위눌림에서 깨어날 때 나는 심호흡을 하며 셋까지 숫자를 세고 ‘셋’에 맞추어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움직이곤 했다. 그러고 나면 비록 미세한 동작으로나마 몸이 움직였고, 나는 가위눌림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두울…….

이게 가위눌림이든, 현실이든 간에 셋을 세고 나는 움직일 것이다. 가위눌림이라면 깨어날 것이며, 현실이라면 저 망할 대갈통을 산산이 박살낼 것이다.

셋.

나는 사냥총을 들어 올려 저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총알이 아내의 한쪽 눈에 명중한다. 그러나 피도 새어나오지 않는다. 구멍이 뚫린 아내의 머리는 이미 죽은 송장 대가리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저 머리카락들을 잠재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절박하게 방아쇠를 연이어 당긴다. 두 번째로 발사된 총알이 역시 아내의 턱에 명중했지만, 머리카락들에게는 일말의 충격도 주지 못한 모양이다. 머리카락들은 나에게 달려든다. 나는 재빨리 방문을 열고 몸을 방으로 날린다.

순간, 왼쪽 발목에 불에 덴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통증은 점점 날카로워지면서 발목의 모든 신경들을 산산이 찢어놓는다. 내려다보니, 머리카락들이 나의 발목부분을 꿰뚫고 나와 너울거리고 있다.

“끄아아아아!”

나는 귀청이 찢기도록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둥그러진다. 그래도 고통은 가시지 않는다. 발목을 꿰뚫은 머리카락들이 꿰뚫은 내 발목 속의 근육과 뼈와 힘줄들을 휘젓는다. 이를 악물어보지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은 점점 더 정도를 더한다. 머릿속이 멍해지며 윙윙 울린다. 발목을 뚫고 나온 머리카락들은 가차 없이 내 종아리로 다시금 파고든다. 수십 수백의 고통으로 종아리의 신경들이 걸레조각처럼 찢겨져 나간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 고통을 멈추게 해주는 게 있다면 나는 그것에 영혼이라도 바칠 것이다. 나는 낮은 포복으로 바닥을 북북 긴다. 육수처럼 배어 나오는 땀 때문에 팔꿈치가 자꾸만 미끄러진다.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카락 끝에 달린 아내의 썩은 머리통이 끌려오고 있다. 눈앞에 화장대 다리가 보인다. 나는 화장대 다리를 향해 손을 뻗는다.

머리카락이 내 다리를 끌어당긴다. 화장대 다리에 거의 미쳤던 손이 다시금 뒤로 주룩 밀려난다. 종아리를 파고든 머리카락들이 내 다리 속에서 꿈틀대며 허벅지로 쑥쑥 밀려든다. 죽는 게 차라리 나은 고통이다. 나는 화장대 다리를 붙들고 버틴다. 다리 속에 박힌 머리카락은 갈고리처럼 나의 다리 근육을 속에서 휘감아 거칠게 끌어당긴다.

“끄으으으…….”

이를 악물어도 나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온다. 머리카락의 끌어당김은 점점 더 거세고, 더 거칠어진다. 필사적으로 매달린 화장대가 흔들거린다. 화장대 위에 있던 물건들이 내 머리 위로 우수수 떨어진다. 더러는 바닥에 부딪혀 박살이 나고 더러는 제멋대로 바닥을 뒹구는 물건들 중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에프킬라와 일회용 라이터다. 어린 시절 옆집 친구 녀석과 에프킬라를 사이에 두고 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녀석의 의견은 분무되는 에프킬라가 소화기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고, 나는 그 반대였다. 결국 직접 시험해보기로 하고, 불을 댕긴 성냥개비에 에프킬라를 뿌렸을 때 녀석과 나는 성냥불을 화염으로 탈바꿈시키는 에프킬라의 위력에 기겁을 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에프킬라를 향해 손을 뻗는다. 죽는 것 따위는 상관없다. 다만, 한 시라도 빨리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손끝에 에프킬라가 닿는다.

머리카락은 이미 내 허벅지까지 뻗어 있다. 라이터……. 라이터가 잡힌다. 부싯돌에서 불똥이 튀고 라이터에서 불꽃이 일어나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인다. 나는 머리카락들을 향해 몸을 돌린다. 에프킬라에서 휘발성 약품이 뿜어져 나오고 라이터의 불꽃이 용이 뿜는 불과 같이 머리카락을 향해 날아간다.

머리카락에 불이 붙자, 불은 순식간에 머리카락을 덮는다. 머리카락들은 여느 머리카락처럼 불에 그슬리지 않는다. 머리카락들은 불꽃색이 되어 사방으로 뻗쳐 아메바의 촉수처럼 너울거린다. 아름답다. 머리카락들이 긴 소매 펄럭이며 승무를 춘다. 살아 있는 머리카락들의 단말마의 발광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정신을 잃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뒤통수가 따끔함을 느낀다.


우리가 원했던 건 그저 변함없는 사랑이었을 뿐이다.

우리의 몸 한 올 한 올에 깃든 수천 년의 소망은 그러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랑은 금세 불타올랐다가 이내 시들었다. 무수한 이별로 세월은 흘렀고, 그럼에도 변함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바람에 우리는 올올이 날린다. 새롭게 둥지를 튼 이 남자의 육신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상관없다. 인간의 육신은 유한하지만, 우리의 기다림은 영원하다.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여기서 변함없는 사랑을 만날 수 있을 지도. 아니, 어쩌면 영겁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수천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건 우리의 검은 머릿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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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자정)

Posted by Jon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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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결말 좋네요. 순간 이해못했는데 마지막은 아내의 몸에 있던, 이제는 남자의 몸에 들어서 ' 그' 의 독백이군요..독백 내용이 뭔가 가슴을 치네요.

  2. 지옥인간 2008/06/25 14:11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