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할 수 없는 매력의 여배우
<로스트 맨>을 보았던 그 극장에서 <오래된 여인>(국내 개봉명 '미스트리스')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았다(이 영화의 원제는 une vieille maîtresse이다. 싱가포르와 호주 개봉 제목은 <An old mistress>이고 미국 개봉 제목은 <The last mistress>이다. 이것을 ‘늙은 정부(情婦)’ 혹은 ‘연상의 정부’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영화 내용에는 ‘오래된 정부’가 가장 가까워 보인다).
이 영화를 보러 간 이유는, 이 영화가 2007년 깐느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기 때문이 아니고, 또 이 영화의 감독이 까뜨린 브레이야(Catherine Breillat)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이 영화의 주연배우가 아시아 아르젠토이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난 까뜨린 브레이야의 영화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여성감독이 훌륭한 페미니스트이고 좋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녀의 영화들은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다. 오래 전 제1회 전주영화제에서 그녀의 <로망스>를 보았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도발적으로 묘사한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실제 포르노 영화에 나오던 남자 배우를 기용했고, 그래서 그 남자배우의 성기가 매우 크고 길었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그 후에 부산영화제에서 <팻 걸>(원제는 ‘A ma soeur’인데 ‘내 누이에게’ 정도의 의미이다)을 보았는데 너무 작위적인 설정이 눈에 거슬렸다. 마지막에 자매 중에서 뚱뚱한 여자 아이가 강간당하는 장면은 어이가 없었다.
까뜨린 브레이야 감독(왼쪽)
그렇지만 아시아 아르젠토의 영화를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다면 저항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녀의 이미지는 묘하기 그지없다. 그녀가 섹시한 것은 분명하지만, 단순히 섹시하지 않다. 광기라는 단어로 그녀를 묘사할 수도 있으리라. 「필름코멘트」(2008년 3-4월호)에서 제시카 윈터라는 평론가는 <보딩 게이트>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아시아 아르젠토를 아브젝트(abject:아마도 이것은 줄리아 크리스테바적인 의미에서 사용된 단어일 것이다)한 섹슈얼리티를 표현해내는 데 있어서 이자벨 위뻬르와 견줄만한 배우라고 쓰고 있다. 물론 이 두 여배우의 스타일은 너무 다르다.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la Pianiste)에서 볼 수 있듯이 이자벨 위뻬르가 차분함 속에 비정상적 성욕을 감추고 있다면, 아시아 아르젠토는 광기와 혼돈 속에서 그것을 뿜어낸다.
다리오 아르젠토, 토니 갓리프, 조지 로메로, 구스 반 산트, 난니 모레티, 아벨 페라라, 소피아 코폴라, 올리비에 아사이야스 등 수많은 감독들과 작업을 하면서, 또 스스로 연출을 하면서, 그녀의 캐릭터는 끊임없이 강간을 당하고 고문을 당했으며 결국에는 미쳐갔다. 그녀가 맡았던 역할들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고 자기파괴에 이르는 인물들이었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이라는 가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호러영화에 대한 그녀의 기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탈리아어와 불어, 영어를 구사하는 그녀의 기이한 억양과 목소리는 그녀의 영화를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들 중의 하나이다. 바로 그래서 나는 이 <오래된 여인>을 보러 갔다.
Jules-Amédée Barbey d'Aurevilly(거의 한국말로 옮기기 불가능한 이름이다)라는 작가의 원작을 각색한 이 영화의 배경은 1830년대이다. 벨리니라는 이름의 여성을 연기하는 아시아 아르젠토는 스페인 출신이다. 그녀는 프랑스 귀족 사교계에서 나름대로 유명하다. 그녀와 리노라는 남자는 10년 동안 관계를 맺었다. 이 얼굴이 말끔하게 생긴 남자는 돈이 별로 없는 한량이지만, 돈 많은 귀족 아가씨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여자의 집에서 이 남자에게 오래 관계를 맺은 정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귀족 집안의 어른인 신부의 할머니는 예비 신랑을 불러 그 여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한다. 그러자 그 남자는 그 할머니에게 지난 10년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그래서 영화의 대부분은 플래쉬 백으로 채워진다.
사실 영화는 별 내용이 없다. 배경만 19세기이지 스토리만 듣는다면 진부한 연애 이야기일 뿐이다. 두 남녀가 오래 연애관계를 맺었다. 그들이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연애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관계는 중간에 위기와 결별이 있었더라도 지속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알제리 사막에서 딸을 낳기도 했다. 그 딸이 죽자 사막에서 화장을 하고 그 옆에서 그들은 광기어린 섹스를 하기도 한다. 이런 관계는 쉽게 정리될 수 없다. 남자가 결혼을 한다고 해서 그 지나간 세월이 지워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자가 결혼하려고 하는 처녀는 정말 맑고 순진하게 생겼다. 왜 항상 사기꾼 같은 남자에게 청순하고 순진한 여자는 넘어가는 것일까? 그 남자는 결혼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정부는 신혼부부가 살고 있는 곳까지 찾아온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충분히 짐작할 것이다.
까뜨린 브레이야는 상당한 예산이 든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 그녀 역시 코스츔 드라마(costume drama)를 한번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시아 아르젠토의 존재를 뺀다면 영화에 드라마적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할리우드적인 <위험한 관계>와 같은 영화와는 다른 무엇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아닌 집착 때문에 서로를 파멸시키는 데에 이르는 남녀의 이야기는 지금의 관객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많은 이유로 인해 까뜨린 브레이야의 영화들은 뭔가 약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드라마는 빈약하고 인물들은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도 감독의 의도라고 말하면 다 해결되는 것인가? 이 영화는 그다지 고전적이지도 않고 대단한 주제의식이 엿보이지도 않는다. 단지 아시아 아르젠토만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언젠가 어디에서든 아시아 아르젠토의 영화들만을 모아 회고전을 연다면 근사할 것 같다. 거기에는 많은 호러영화 팬들이 모일 것이다. 그녀는 괴롭겠지만 계속해서 그녀의 광기어린 표정과 시선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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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개성이 넘친다고나 할까...
파이트 클럽의 헬레나 본햄 카터 씨를 빼면 정말... 최고의 개성파 배우란 생각이...
아시아 아르젠토 팬이시군요. 정말 이 배우는 개성이 철철 넘치죠...
정말 개성이 강한 배우같아요
아버지 아르젠토 영화 보면서 처음 봤었는데..
한번 보면 기억에 강하게 남는..
류상욱님의 좋은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시아 아르젠토의 아버지 다리오 아르젠토는 딸에게 온갖 험한 역할을 시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It's only a movie." 하긴 뭐 다 영화일 뿐이죠. 그러나 어쨌든 이들 부녀는 대단한 사람들인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액션영화 트리플엑스를 보고 그냥 액션영화의 조연급 배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카리스마스를 느꼈습니다. 알아보니 역시 보통 배우가 아니더군요... 흡입력이 남다른 배우입니다.
아시아 아르젠토는 호러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찍고 있죠. 정말 그 흡입력은 장난이 아니죠..
이건 남자야 여자야
아시아 아르젠토도 모르니..
모르면 모른대로 있지.. 댓글하고는..
트리플X에서 빈 디젤 애인으로 나왔던 배우죠?
마스크가 강렬해서 인상에 남았었는데..
유명한 배우인가 보네요..
왠지 미국 여배우랑은 다른 느낌이다 했습니다..
꼭 보고 싶은 영화네요..
아시아 아르젠토는 대단한 배우죠.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게 재미있거나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요.
랜드 오브 데드에서도 히로인으로 나왔지요..
이태리 호러의 왕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로도 유명하고요.. 생긴것도 둘이 똑같이 생겼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