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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돋보이나 소재가 꽝

<트레이시: 파편들>은 모린 메드베드라는 캐나다 작가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전 읽어본 적이 없지만 메드베드는 이 영화의 각본도 썼으니 원작자의 의도와 크게 어긋나는 건 없을 것이라 봅니다.

영화의 내용은 트레이시 버코위츠라는 15살 난 캐나다 소녀에 대한 것입니다.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고 새로 전학 온 남학생을 짝사랑하는 트레이시는 실종된 남동생 서니를 찾으러 가출합니다. 영화는 속옷차림으로 담요를 두른 트레이시가 버스 안에서 독백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영화가 진행되면 왜 그 아이가 그런 난처한 입장에 빠졌는지 설명이 됩니다.

전 사실 트레이시가 무슨 일을 당했건 별 관심이 없습니다. 얘의 사정은 많이 딱해요. 하지만 장편영화 한 편이 상영되는 동안 참을성 있게 지켜봐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트레이시는 자기 개성이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고통받는 틴에이저 소녀의 전형처럼 보여요. 이 아이가 빠져 있는 상황도 마찬가지고. 이야기나 캐릭터가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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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형식입니다. 원작 소설 자체가 조각조각난 단편들을 조합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하는데, 영화는 한술 더 뜹니다. 이 영화는 수많은 작은 사운드/이미지의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이것들을 두 개 이상 화면 위에 띄웁니다. 어떤 때는 10개가 넘는 화면이 뜰 때도 있어요. 이들은 같은 시간대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 본 것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시간대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의 조합이기도 합니다. 종종 이들은 상호작용을 하기도 해요. 화면 어딘가에서 특정사건이 일어나면 거기서 촉발된 기억이 과거의 유사한 사건들을 불러오는 것이죠.

다시 말해 이 영화는 트레이시 버코위츠의 조각상과 같습니다. 트레이시의 작은 조각들이 회오리 바람에 섞여 맴돌다가 트레이시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감독 브루스 맥도널드는 영화를 만들면서 2차원의 화면에 만족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형식이 흥미진진해도 소재가 재미없으면 꽝입니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 트레이시 버코위츠는 그런 고단위의 테크닉이 동원될만큼 재미있는 아이가 아니거든요. 엘렌 페이지가 열심히 연기하긴 해도 <주노>와 같은 캐릭터의 생생함은 느껴지지 않고요. 하긴 배우만 노력한다고 평범한 재료가 더 나은 무언가가 되는 건 아니죠. 차라리 중편 정도로 길이를 줄였다면 이야기와 형식이 압축되어 더 짜임새있는 영화가 나왔을지도 몰라요. 지금 결과물은 너무 길고 산만하고 내용이 없군요.

기타등등

서울국제영화제 상영작입니다. 이번 해에는 몇 편이나 보게 될지 모르겠군요. 세월이 하 수상하다보니...

Posted by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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