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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람 방식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언젠가 싱가포르의 대형서점에 갔다가 로라 멀비(Laura Mulvey)의 <Death 24×a Second: Stillness and the Moving Image>라는 책을 발견했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지 않기로 했다. 싱가포르에서 책을 하나 사려면 꽤 비싼 가격을 치러야 한다. 그리고 당장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당시에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 책이 한국에서 번역되어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현실문화연구라는 출판사에서 <1초에 24번의 죽음>으로 나왔는데, 이 책은 지금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로라 멀비는 1970년대에 <시각적 쾌락과 서사영화(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ema)>라는 글로 일약 영화이론계의 스타가 되었다. 페미니즘 영화이론의 선구자격이 된 글인데 지금 읽으면 좀 낡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영화-페미니즘 이론이었다. 이 학자는 아방가르드 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한국에는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하긴 한국에서 영화이론 혹은 영화평론을 한다는 사람은 세계의 영화이론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서점의 영화책 코너에서 이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이 학자는 이제 영화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과연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앙드레 바쟁 이후 이 질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정의를 내리기 위한 시도가 있어왔지만,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에서 영화를 보는 혹은 소비하는 행위는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극장에서 영화보기 혹은 VHS, DVD, 블루레이로 이어지는 개별적 영화 관람 행위의 변화는 지금의 관객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왜 그래야 하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바쟁은 회화와 사진 그리고 영화에 대해 말하면서 그 기원을 ‘죽음’에 둔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인간은 영원히 살아갈 방법을 찾을 수 없었고, 그 대신 자신의 형상을 남기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원시시대의 동굴벽화부터 초상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말하는 예술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조형적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사진 역시 기계장치의 의존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초창기 사진은 마치 유령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회화든 조각이든 사진이든 정지된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들이다. 그 이미지가 재현하는 것은 사실은 과거의 것이다. 그 과거를 현재 우리는 보고 있다. 즉 하나의 이미지는 과거와 현재의 시제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 정지된 이미지에 운동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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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 역시 정지된 이미지 24개가 1초에 지나가는 장치이다. 영화 역시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고 있는 시간은 현재이지만 영화 속에서 재현되는 시간은 사실 과거이다. 물론 영화는 좀 복잡하다. 영화는 카메라의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시선의 자유로움을 획득했고, 내러티브의 존재는 시제의 복잡함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또한 과거의 것들이다.

그런데 관객들은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의 변화를 겪었다. 이제 혼자서 VHS나 DVD, 혹은 블루레이 디스크를 가지고 영화를 본다. 어떤 이들은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혼자서 컴퓨터로 영화를 감상한다. 극장과 달리 영화를 정지시킬 수 있고 특정한 장면만 반복해서 볼 수도 있다. 이제 영화는 ‘지연’된다. 이런 기능 때문에 관객은 선형적인 서사구조를 일방적으로 강요당하는 것에서 벗어난다. 또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을 때 지나쳐버렸던 이미지를 새롭게 붙잡거나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관객을 로라 멀비는 “소유적인 관객”이라고 부른다. 이 소유는 로라 멀비가 보기에 어떤 ‘사색’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색한다는 것은 정지의 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영화의 흐름을 지연시켜야 한다. 그러면서 영화의 이미지를 판독하려는 욕망을 가진다. 영화를 지연시키고 정지시키는 테크놀로지는 우리 모두를 비평가로 만들 수 있는 토대이다. 우리는 영화를 정지시킬 수는 있지만 흐르는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또 원시인과 마찬가지로 죽음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1초에 24번의 진실

예술은 근본적으로 삶과 죽음을 다룬다. 아니 죽음이라는 한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죽음을 의식하며 이미지를 생산하는 인간. 우리는 이미 죽은 인간의 이미지를 회화나 사진 혹은 영화 속에서 본다. 다르게 말하면 그 이미지는 유령 같은 현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은 죽음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 예술 속에서 악령이나 환각을 일으키는 위험하고 금지된 것을 욕망한다. 인간은 자신 속에 감추어진 비이성적인 공포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또한 가장 이성적인 공포도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쾌락의 원칙 너머에 있는 죽음의 필연성”이다. 이것은 19세기 말에 프로이트에 의해 발견된 것이고 이 시기는 영화의 발명과 일치한다.

초창기 사진과 영화의 이미지는 유령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그것들에서 발견하는 이미지는 삶의 모습 속으로 다시 살아나온 죽은 것들의 유령 같은 것이다. 죽은 자들은 귀환한다. 그리고 우리 역시 죽은 자들이 될 것이다. 이것은 호러영화의 기본적인 구조이다. 즉, 모든 영화 장르 중에서 호러가 가장 근본적이다.

로라 멀비가 개별적으로 다루는 영화들은 히치콕의 <사이코>,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 그리고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이다. 물론 다른 많은 영화들이 이 책에서 언급된다. 이 영화들에 대한 분석들은 꼭 읽어야 한다. 로라 멀비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판에 박힌 정신분석학을 여기서 늘어놓지는 않는다. 바쟁의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분석과 로라 멀비의 그것을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로라 멀비 역시 바쟁을 자주 인용한다. 아마도 로셀리니의 이 영화만큼 인간의 비이성적인 욕망과 고통과 죽음을 초현실적으로 극명하게 표현한 영화도 드물 것이다. 언젠가 이런 주제를 가지고 다시 정리된 글을 쓸 날이 오기를 바란다.

영화에 대해 말하면서 ‘시간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영화에서는 항상 시간이 문제가 된다. 수많은 시네아스트들이 이 시간의 문제와 씨름한다. 귀신이 등장하는 호러영화는 시간이 뒤죽박죽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 또한 흥미로운 연구주제라 할 것이다. 로라 멀비는 장-뤽 고다르가 <작은 병정(Le Petit Soldat)>에서 영화에 대한 정의를 인용한다. 고다르는 그 영화에서 영화는 “1초에 24번의 진실”이라고 했다. 로라 멀비는 개개의 사진들인 그 24개의 프레임은 영화의 언캐니(Uncanny:이것은 독일어의 Unheimkich의 번역어로 프로이트의 용어이다. ’낯설다‘라는 의미이다)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에, 영화는 “1초에 24번의 죽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는 생명이 없는 프레임에 생명을 불어넣는 환영의 과정이다. 즉 죽음과 삶이 공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는 소비되는 상품이기도 하고, 사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당신에게 영화는 과연 무엇인가? 상품인가, 아니면 소유의 대상인가 또 사색을 불러일으키는가? 누군가에게 영화가 꼭 어느 것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영화 속에는 많은 것이 들어가 있다. 시간의 흐름과 죽은 이가 귀환한 유령과 헝클어져 버린 시간들이 들어 있다. 그 영화들을 되풀이해 보면서 그것들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속할 것이다.

Posted by Ryu Sang 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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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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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조할인 2008/06/01 12:01

    내가 영화나 예술에
    관심있었던것이 죽음과 관련이 있었던거군요.
    꼭 읽어봐야겠군요..

    • Ryu Sang Wook 2008/06/05 15:33

      예술이라는 것의 본질을 파고 들어가면 죽음이라는 것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바쟁이나 로라 멀비의 말이죠. 글쎄 한 개인이 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그것과 아주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이 책은 한번 읽어보시면 재미있을 겁니다. <사이코> 분석도 읽을만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