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빌 뿌뽀를 만나다
싱가포르에는 몇 개의 극장 체인이 있고, 대부분의 극장들은 상영관이 여러 개인 멀티플렉스이다. 리틀 인디아라는 동네에 발리우드 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극장이 있는 것을 보았지만, 직접 가보지는 않았다. 발리우드 영화가 별로 취향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단관으로 운영되는 극장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두 개의 상영관으로 운영되는 극장에 갔다. 낡은 쇼핑센터 안에 있는 그 극장은 두 개의 상영관에서 4편의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었다. 그 영화들 중에서 3편은 프랑스와 캐나다에서 제작된 불어권 지역의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스페인 영화다. 이들 영화는 모두 포스터부터 에로틱한 영화라는 것이 강조되며 홍보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극장에는 얼마 되지 않는 중년 혹은 노년의 남성관객들만 눈에 띄었다.
사실 그 영화들은 알고 보면 정사장면이 포함되어 있는 독립영화 혹은 아트하우스에서 상영되는 아트필름들이다. 그래서 이 영화들을 보고 있는 중년 그리고 노년의 남성관객들은 본의 아니게 독립영화와 아트필름의 애호가가 되고 만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나는 이 극장에 <로스트 맨(영어제목은 A lost man이고 불어 원제목은 Un homme perdu이다)>를 보러 갔었다. 이 영화를 보러 간 이유는 멜빌 뿌뽀가 주연배우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배우를 에릭 로메 감독의 <여름 이야기>에서 처음 보았다. 에릭 로메 감독의 사계절 연작 시리즈 중의 하나인 이 영화는 96년에 제작되었는데, 한국에서도 하루 동안 아니 한 번인가 두 번 극장에서 상영되고 바로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이것은 당시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여름 이야기>(1996)
이 영화는 한 소년의 망설임을 다루고 있다. 멜빌 뿌뽀가 연기하는 가스파르라는 청년은 일단 혼자 해변가로 휴가를 온다. 곧 있으면 애인이 도착할 예정이다. 해변에서 아만다 랑글레가 연기하는 마르고라는 여성을 알게 되어 친구로 지낸다. 그러다 다른 여자를 사귀게 된다. 이제 가스파르는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섬으로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여자와 함께 갈 것인가? 이 망설이는 소년의 역할을 멜빌 뿌뽀는 훌륭하게 연기한다. 한마디로 캐릭터에 아주 적절한 캐스팅이었다.
그 후 프랑수와 오종의 <타임 투 리브(불어 원제목은 Le temp qui reste이다. ‘남아 있는 시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에서 훨씬 더 성숙해진 그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IMDb에서 멜빌 뿌뽀를 검색해보면 워쇼스키 형제의 <스피드 레이서>에 이 배우가 출연했다고 나오는데, 어느 장면에 나왔는지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로스트 맨>에서 중동지방을 여행하는 멜빌 뿌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의 모습은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 일단 머리를 짧게 깎았고 면도를 하지 않는 얼굴로 나온다. 배경은 요르단. 다니엘 아비드라는 레바논 출신의 여성감독은 황량한 요르단의 풍경을 HD 카메라에 담아낸다. 이 영화의 공간은 항상 어두운데 그것은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감독은 아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짐작으로는 제작비가 없어서 조명을 못 쓴 것이 아닌가 싶다.
멜빌 뿌뽀가 연기하는 토마스 코레는 사진작가다. 그는 오직 여자들만을 찍는다. 창녀들과 섹스를 하면서 그들을 찍는다. 자신이 직접 그 창녀들과 섹스를 하면서 스냅사진을 계속 찍어대는 것이다. 그는 한 아랍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다닌다. 그 아랍인은 도통 말이 없다. 알렉산더 시딕(이 배우는 <시리아나>와 <둠스데이>에 출연했다)이 연기하는 푸아드 살레라는 아랍인은 그저 중동 지방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인물이다. 그는 마치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에서의 해리 딘 스탠톤을 연상시킨다.
이 두 남자는 함께 다니기는 하지만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푸아드 살레라는 남자가 입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토마스는 이 아랍인의 과거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결국 영화는 토마스가 푸아드 살레의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두 이방인 남자의 이야기
사실 이 영화는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현재 프랑스 영화의 한 경향은 프랑스 내에서 아랍인에 관한 인종적 문제를 다루거나 아랍 이민 세대들이 직접 자신들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제작된 많은 프랑스 영화들에서 아랍인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이 영화 역시 프랑스인이 아예 중동 지방으로 여행하게 만드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왜 요르단과 레바논으로 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단지 그가 아내와 아이가 있었지만 그 생활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떠났다는 것만 나온다.
토마스와 푸아드
사실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이 프랑스인은 요르단과 레바논에서 과연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그가 하는 것은 섹스뿐이다. 요르단에서 모로코에서 온 창녀와 섹스를 하면서 어떤 ‘타자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는 밤길에서 남자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어디나 똑같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로 세상은 더럽다는 것이다. 그렇다. 어디나 다 같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단지 남자 둘이 허름한 호텔에 들어가는 것이 중동 지방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 다를 뿐.
오래 동안 헤어져 있는 그 아랍인 부부는 다시 결합하지 않을 것이다. 중동 지방의 뒷골목을 방황하는 프랑스 남성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중동의 풍경처럼 느껴지는 황량함이 전부이다. 불행한 과거는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고, 무너진 관계는 복원되지 않는다. 자신의 나라를 떠나 떠돌아다니는 사람은 계속 여기저기를 헤맨다. 어디에도 어떤 ‘의미’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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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인사이드 보러 메가박스 유럽영화제 갔다가
얼떨결에 보고 말았는데..
참...뭐라 말로 설명하기가...-_-;;;;
제 취향하곤 거리가 먼 영화라는 느낌이 팍팍 들더군요...^^
이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된 적이 있었군요. 배급사가 MK2라서 유럽영화제에서 상영이 된 모양이군요. 이런 영화들에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죠. 뭔가 명확한 내러티브도 없고 확실한 결말도 없이 그냥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런 스타일의 영화들은 대개 영화제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죠.
유럽영화제에서 포스터에 꽂혀 관람한 영화였어요 ;;
저한테는 아주 잘 맞을 것 같은데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