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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로스가 그린 저스티스 리그

미국 만화 그림체에 대한 기본 이해


일반 독자들이 미국 만화를 접할 때 가장 먼저 느끼는 이질감은 그림체를 통한 것일 겁니다. 근육질 남자와 두터운 명암차를 기본으로 하는 미국 수퍼히어로 만화의 그림체는 보통의 일본 만화 그림과는 아주 다른 느낌이지요. 이번 글의 주제는 미국 만화 그림체의 변화입니다. 미국 만화 그림체에도 어느 정도 유행과 대세가 있습니다. 미국 만화는 거의 모든 종류의 그림체를 수용하고 있긴 하지만, 주류 수퍼히어로 만화의 대세 그림체와 연출이 시대별로 존재하지요. 이러한 변화를 간단히 훑어보면서 미국 만화 그림에 관한 이해를 다져보도록 하지요.

제일 처음 볼 그림체는 초기 수퍼히어로 만화의 그림체입니다. 아무래도 미국 수퍼히어로 만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초기 수퍼맨의 그림을 그린 조 슈스터와 밥 케인의 그림체로 출발해야겠지요. 그들의 그림은 그다지 큰 특징이 있지는 않은 업계 스탠다드의 그림체에 가까웠습니다. 간단한 펜터치에 붓으로 넣은 먹 명암이지요. 그리고 단순한 컬러. 이것은 그림 실력이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닌 인쇄기술의 문제였죠. 자주 선이 뭉개지고 흐릿해지는 초기의 조잡한 인쇄에 맞추기 위해 두꺼운 선과 짙은 먹으로 실루엣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더욱이 초기 수퍼히어로 만화는 SF, 느와르 등의 펄프 문화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었기에 짙은 먹은 내용과도 부합했습니다. 이 표준적인 그림체는 기본적으로 미국 만화 그림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됩니다.

조 슈스터의 수퍼맨

조 슈스터의 '수퍼맨'


밥 케인의 배트맨

밥 케인의 '배트맨'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미국의 전통적인 극화 그림체는 전통/도구/작법/업계 환경등의 여러 문제가 얽혀 있는 그림체입니다. 그리고 이 그림체는 아직도 그 영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습니다.

잭 커비의 '토르' 연필 스케치

잭 커비의 '토르' 연필 스케치


잭 커비는 1960년대 미국 만화의 전형을 마련한 작가입니다. 그의 그림도 하나의 ‘스탠다드’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체는 기본적으로 골든 에이지 그림체의 전통적인 발전형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지요. 그리고 그의 만화에 대한 기여는 수퍼히어로 만화의 연출, 다이나믹한 구도와 컷 연결이 더욱 유명합니다.

그리고 시대가 지나오면서 그림체는 점점 다변화되고 폭이 넒어집니다. 하지만, 이 변화의 밑바닥엔 기본적인 미국 스타일의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작법이 있어왔지요. 그리고 1980년대에 큰 변화가 옵니다. 1980년대에는 미국 수퍼히어로 만화계의 외적인 영향이 많았습니다. 유럽 작가주의 만화가 수입되었고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 또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요. 만화작가에 대한 대우 문제도 불거졌고요. 그리고 수퍼히어로 만화계엔 빌 싱키비츠가 등장합니다.

빌 싱키비츠는 처음에는 그냥 젊고 유망한 만화작가였습니다. 닐 아담스의 스타일에 경도된 보통의 만화를 그렸지요. 하지만 그는 어떤 계기인지 마블의 <문나이트>를 그리는 도중 전위적인 시도를 시작합니다. 이후 전통적인 만화도구인 펜과 잉크를 버리고 유화, 파스텔 등의 재료를 사용하고 꼴라쥬, 전위적 연출 등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면서 만화 그림의 폭을 넓히지요. 그리고 그는 1980년대 데이브 맥킨과 켄트 윌리엄스 등의 새로운 작화가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합니다. 이렇게 1980년대를 통해 새로운 그림체와 경향이 수퍼히어로 만화의 한쪽에 자리잡게 됩니다.

빌 싱키비츠 '엘렉트라'

빌 싱키비츠 '엘렉트라'


빌 싱키비츠 '문나이트'

빌 싱키비츠 '문나이트'


빌 싱키비츠 '스트레이토스터'

빌 싱키비츠 '스트레이토스터'


다음으로는 전통적인 수퍼히어로 만화 그림체에서 커다란 유행 흐름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일명(제 표현으로는) ‘뾰족 그림체’ 입니다. 수퍼히어로 만화의 전통적인 그림체 안에서 어떠한 일가가 나타나는 것은 꽤나 평범한 현상입니다. 잭 커비가 그러했고 닐 아담스가 그러했고 다른 여러작가들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림체가 변화해왔지요. 하지만 1980년대말 나타난 이 뾰족 그림체는 조금 신기한 현상으로 생각됩니다. 1980년대 말에 짧고 뾰족한 거친 선으로 된 작풍의 그림체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러한 작풍은 보통의 작가까지 그들의 그림체를 바꾸게 만들만큼 영향이 컸지요. 롭 라이펠드, 토드 맥팔레인, 마크 실베스트리 등의 그림으로 설명되는 이 그림체는 80년대 말부터 90년대를 관통해서 커다란 유행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가들은 엄청난 성공을 통해 마블과 DC에서 독립해 이미지 코믹스를 설립하게 되지요.

롭 라이펠드 '엑스포스'

뾰족 그림체의 대표 작가들. 롭 라이펠드 '엑스포스'

마크 실베스트리

마크 실베스트리


토드 맥팔레인 '스폰'

토드 맥팔레인 '스폰'


짐 리 '엑스맨'

짐 리 '엑스맨'


그리고 9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작가중에 한 사람이 트래비스 챠레스트입니다. 트래비스 챠레스트(혹자는 그가 프랑스계 캐나다인이므로 트라비 샤레이라고 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 본인은 어떻게 불리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는 69년생 코믹북 아티스트로 DC와 와일드스톰 프로덕션에서의 작업을 통해 인기를 얻었습니다. 짐 리의 밑에서 일을 한 트래비스 챠레스트는 수퍼히어로들에 좀 더 사실적인 접근을 합니다. 고도로 정제된 데생으로 이루어진 사실적인 캐릭터와 얇지만 날카롭지 않고 깔끔한 펜선은 새로운 시대를 엽니다. 물론 트레비스 챠레스트 혼자서 모든 길을 개척하진 않았습니다. 90년대 중후반이후 각광받기 시작한 미학은 사실성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현실적인 수채화로 유명한 알렉스 로스나 여성 캐릭터 전문 작가로 특화된 아담 휴즈같은 작가들이 있었지요.

사실성을 갖게 된 캐릭터들은 영화 및 다른 미디어로의 이식이 더욱 쉬워졌다. 트래비스 챠레스트의 그림.

사실성을 갖게 된 캐릭터들은 영화 및 다른 미디어로의 이식이 더욱 쉬워졌다. 트래비스 챠레스트의 그림.


알렉스 로스 '수퍼맨'

알렉스 로스 '수퍼맨'


아담 휴즈 '원더 우먼'

아담 휴즈 '원더 우먼'


그리고 2000년대부터 등장한 작가들도 여전히 사실성을 기반으로 작업합니다. 최근 마블의 <시빌 워>를 작업했던 스티브 맥니븐은 정제된 가는 선에 거의 모든 그림에 사진 레퍼런스를 사용하지요. 더욱이 <아이언맨: 익스트리미스>를 작업한 아디 그라노브는 알렉스 로스 이상으로 사실적인 형상에 집착합니다. 그의 아이언맨 그림과 영화 아이언맨의 이미지는 거의 똑같을 정도죠.

아디 그라노브 '아이언맨: 익스트레미스'

아디 그라노브 '아이언맨: 익스트레미스'

스티브 맥니븐 '시빌 워'

스티브 맥니븐 '시빌 워'


90년대에 들어와서야 그림체에서 사실성이 부각되기 시작했지만 실상 미국 만화의 그림은 꾸준히 높은 사실성을 향해 움직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의 수퍼히어로들은 기본적으로 아이콘 그 자체였습니다. 파란 타이츠에 빨간 망토와 로고를 가슴에 둔 수퍼맨이나 검은 망토에 두 개의 뿔을 단 배트맨이나 그림으로 보았을 때는 인간으로서의 개성보다는 아이콘 그 자체로 기능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작가를 통해 각 캐릭터들의 생김새들이 객관적으로 정리되어가고 좀 더 사실적인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이러한 경향은 점점더 코드화/아이콘화되어가는 일본 만화와는 반대로 가는 모습이지요. 개인적인 호기심은 이렇게 정 반대로 가는 두 미학의 만화(미국 만화, 일본 만화)가 결국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매우 개인적으로 이해한 내용을 허접하게 정리한 미국 만화 그림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비록 빼먹은 부분(망가 스타일의 침략과 도구/기술 발전의 영향/연출과 내용과의 연계 등)과 엉성한 부분이 있지만 그러한 것은 천천히 보충해 보도록 하지요.

Posted by Kyung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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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오늘의 야심한 잡동사니

    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2008/05/28 01:08  삭제

    ★수퍼히어로 만화의 독특한 그림 세계 (Kyungshin님) 세상은 넓고 본좌는 많다... ★소년탐정의 역사 (alexcool님) 그러고보니 이거 아직 상영 중이던가. ★내일의 죠 (환자님) 모든걸 하얗게 불태워버린 야부키군에게 묵념. ★여동생 (Layner님) 상상도 못한 해답이! ★광우병의 역사 - 벡실이 현실로 (산왕님) 시네시네단이 일본에 뿌리려고 만든게 실수로 (웃기지마) ★본 얼티메이텀 감상 (오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아 진짜 좋다 ㅠ.ㅠ

  2. 초창기 조악한 인쇄는 정말 공감이가네요..
    그 조악한 인쇄때문에 헐크의 색이 바뀌었을 정도니까요..

  3. 음.. 나름 수퍼히어로물의 팬이라고 생각하는데도 아직 모르는 작가들이 많네요. 매니아나 오타쿠 수준에 이르려면 분발해야겠습니다. 위에 명시된 작가들 중에서는 데이브 맥퀸, 밥 케인, 알렉스 로스, 조 슈스터, 토드 맥팔레인 정도만 알겠고 나머지는 처음 접하는 이름들이네요. 아하하... 이거 참.. ^_^7

  4. ㅁㄴㅇ 2008/05/26 01:41

    미국 만화를 많이 접해 보진 못했지만

    제 생각엔 이질감은 그림보다 '글'이 더 문제인 거 같아요.

    미국쪽 만화중엔 '그래픽 노블'이라 불리는 것도 있던데...


    컷과 컷, 장면과 장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동양만화에 비해

    미국 만화는 한컷에 너무 많은 글이 담겨 있어요.

    뭐 영어라 못알아 먹는게 문제가 아니라

    예를 들어 전화를 받는 상황같으면

    동양만화에선 '여보세요'와 '짜장면 한그릇 배달해주세요'란 두 대화는 분명 두컷으로 나뉘는경향이 있지만

    미국만화는 두대화를 한컷에 넣는 것은 기본이고 나아가서는 '빨리 갖다 주세요'까지 한 컷으로 뭉쳐버리기 일쑤입니다.

    문화적인 차이인지

    개인적인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솔직히 전 만화를 그림 위주로 보긴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분명 그런게 고문이더군요.

    (홍콩만화도 그런면이 있죠... 한컷 안에 대사가 너무 많아요)

  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미국 만화 접근하기 힘들었던게
    익숙하지 않은 그림체 때문이었는데..
    물론 영어 장벽이 가장 크지만요... -_-;;
    국내 번역이 많이 되어 나오면 좋을텐데..
    배트맨은 꼭 한번 보고 싶은데.. 쩝쩝...
    윗분 말씀처럼.. 홍콩 만화.. 대사가 너무 많아서.. 그림만 대충 저도.. ^^;

  6. 매우 개인적으로 이해한 글 답습니다..

  7. 뒤로갈수록 아트급이군요.

    한번 보고 싶어지네요.

  8. 열혈독자 2008/05/26 22:05

    이쯤되고 보면, '허접하게 정리'한 글이 아니라, analyst article 입니다
    훌륭한 정리에 찬사를 보냅니다 ..

  9. 브루스웨인 2008/05/26 23:13

    대단하군요...
    앞으로 연재 글에 대한 기대치가
    계속 올라갑니다...

  10. 워니... 2008/05/27 23:36

    여기서 알렉스 로스를 보니 반갑네요...전 갠적으로 알렉스 로스 팬입니다. 예전 아마존에서 알렉스 로스의 책도 구입하고, 그림이 사실적이고, 히어로들 근육질들이 잘 표현되는거 같습니다.

  11. 미국 만화의 매력에 빠져 보고 싶네요..
    연재 기사 정말 좋습니다!!

  12. <만화의 이해>에 보면 사실성 높은 인물 묘사는 그 인물에 대한 독자의 감정 이입을 해치는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13. 근데 왜 마블 만화는 번역본이 나오지 않나요 ㅠ ㅠ

    • Skywalker。 2008/05/31 21:15

      컬러 만화책이라 단가가 비싸질 수밖에 없고 사는 사람은 일부 마니아들 뿐일 테니 수지가 안 맞는다고 판단하는 거죠 그래도 씬시티에 이어 왓치맨도 나오고 다크나이트 리턴즈 등도 발매할 거라고 하니 차츰 기대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