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다. 죽는다.
눈앞에 잡동사니를 쟁여두는 간이창고가 보였다. 저기라면 아내에게 대항할만한 무기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창고 앞에 다다른 나는 창고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창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손잡이 옆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아내가 지척으로 다가왔다.
“으아아아…….”
나는 미친 듯이 몸으로 창고 문을 쾅쾅 들이받았다. 자물쇠가 걸린 경첩은 못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다행히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경첩의 못이 조금씩 밖으로 밀려 나왔다. 아내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창고 안은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들을 아내에게 던졌다. 내가 던진 물건들이 아내의 얼굴과 몸을 강타했지만,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사현장에서 ‘빠루’라 불리는 노루발못뽑기가 손에 잡힌 것은 눈앞에 다가선 아내가 뭔가 행동을 개시하려던 찰나였다. 나는 아내의 목을 향해 있는 힘껏 그것을 휘둘렀다. 반원을 그리며 날아간 못뽑기의 구부러진 대가리는 정확히 아내의 목 왼쪽에 휘어진 주둥이를 박았다.
“컥!”
불의의 타격에 아내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나는 아내의 목에 박혀 있던 쇠붙이를 뽑아냈다. 그것의 주둥이가 파고든 목 동맥의 구멍에서 피가 죽죽 솟구쳤다. 나는 다시금 피가 솟구치는 아내의 목을 향해 쇠붙이를 휘둘렀다. 아내가 쓰러졌다. 아내는 목으로 피를 콸콸 쏟으면서도 창고 바닥을 북북 기었다. 쫓고 쫓기는, 죽고 죽이는 입장이 뒤바뀌었을 때 나타나는 사악한 쾌감이 온몸의 말초신경을 황홀하게 마비시켰다.
“씨발년이 뒈질라구……. 흥, 죽여줘? 죽여주긴 뭘 죽여줘? 죽여 봐, 이 미친년아! 죽여! 죽여!”
나는 ‘죽여’에 맞추어 아내의 목에 쇠붙이를 휘둘렀다. 그 물건이 꽂히는 자리마다 피가 솟구쳤다.
“뒈져! 뒈져! 이 개 같은 년아! 뒈져!”
아내는 창고 바닥에 길게 뻗었다. 그러나 나는 휘두름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구멍이 난 아내의 목을 내리치고 또 내리찍었다.
아내의 머리는 거의 몸과 분리되어 있었다. 이미 오래 전에 숨이 끊긴 상태였다. 목은 폭탄이라도 맞은 듯 너덜거렸고, 분리된 머리와 몸을 간신히 피부껍질 한 점이 이어 주고 있었다. 나는 발끝으로 아내의 머리카락을 툭툭 건드려보았다. 살아 있는 생물처럼 낱낱이 허공에 떠올라 너울거리던 머리카락은 그러나 창고 바닥에 축 늘어져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딴 게 괜히 겁을 주었단 말이지. 나는 아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나마 몸을 이어주고 있던 피부껍질 한 점마저 툭 끊어졌다. 아내의 머리를 쥐어들고 창고 여기저기를 뒤지던 나는 곡괭이와 삽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아내의 머리를 든 채로 창고 밖으로 나갔다.
“씨발년이 뒈질라구……. 개 같은 년이……. 뒈져야 정신을 차리지.”
아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나는 미친놈처럼 혼잣말을 연신 중얼거리며 걸었다. 살아서 다행이란 생각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접질린 발목이 욱신거렸다. 아내의 머리가 땅바닥에 끌리며 나지막하지만 듣기 거북한 소리를 냈다.
나는 집 뒤의 공터로 가서 잡초들로 덮인 흙을 삽으로 얇게 떠내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떠낸 흙을 조심히 곁에 내려놓고, 그 자리를 곡괭이와 삽으로 파 들어간 지 두 시간이 넘어서야 아내를 묻을만한 공간이 확보되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옷이 들러붙었다.
나는 구덩이에서 기어 나와 아내의 머리를 구덩이 속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남아 있는 아내의 몸을 가지러 창고에 갔다. 머리가 잘려나간 아내의 몸은 창고에 방위 방(方) 자로 볼썽사납게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아내의 몸을 들쳐 업고 공터의 구덩이로 걸어갔다. 아내의 잘려진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뜨뜻미지근한 느낌이 불쾌했다. 피는 셔츠를 흥건히 적시고도 혁대 밑 팬티로까지 축축이 파고들었다.
구덩이에 이르러 나는 몸뚱이를 던져 넣기 위해 구덩이 속을 들여다보았다.
없었다.
아내의 머리가 온데간데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잘린 머리가 어른의 키를 훌쩍 넘는 구덩이를 기어 나왔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머리는 아무리 구덩이를 샅샅이 살펴보아도 없었다. 나는 미친 듯이 구덩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수풀을 헤집고 아내의 머리를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아내의 머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동이 트고 있었다.
우선은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나는 아내의 머리를 찾는 일을 뒤로 미루고 몸뚱이부터 구덩이에 파묻었다. 파묻은 자리는 미리 떠놓은, 잡초 덮인 흙으로 덮었다. 창고 바닥의 피와, 아내의 몸뚱이를 묻은 자리까지 이어진 핏자국들은 깨끗이 물청소를 해야 했다. 힘들었지만, 내가 죽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었다. 다만 내내 찜찜했던 건 아내의 머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어디에도 아내의 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창고로 몸뚱이를 가지러 간 사이에 굶주린 들고양이 따위가 물어갔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구덩이 둘레의 흙이 떨어져내려 머리가 덮여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여하튼 마음에 걸리는 건 아내의 머리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띌 가능성이었다. 그렇게 되면 하릴없이 내가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될 것이었다. 아내가 나를 죽이려 들었다거나, 머리카락이 사방을 뻗어 너울거렸다거나, 아내가 내게 끔찍한 위협을 했다고 말해도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머리가 사라진 지 사흘이 지나도록 염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아내의 머리를 찾아 집 주변을 헤매는 일을 그만두었다. 어차피 사흘이 지났다면 아내의 머리는 어딘가에서 구더기 밥이 되어 있을 터였다.
아내를 죽인 지 일주일이 되던 날, 나는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냈다.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경찰은 심드렁하게 신고를 접수했다.
“언 놈이랑 바람나서 나간 거지, 뭐어…….”
경찰서 문을 나설 때 경찰이 동료에게 하는 농을 나는 들었다. 누구도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여기저기서 나를 위로하는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진 몸으로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녀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보고 싶었다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내 품에 안겼다. 내가 유부남이든 뭐든 상관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끝내 아내의 머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적어도 그 해 여름까지는.
밤은 시골에 더 빨리 찾아온다.
여름 끝물이라지만, 여덟 시가 되자 밖은 완전히 어둡다. 나는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워 문다. 몇 점의 가로등 불을 제외하면 완전히 밤에 점령된 바깥 풍경이 창문을 통해 바라다 보인다. 창에 방충망이 없는 탓에 모기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시골 산모기는 도시 모기보다 드세고 독하다. 전자모기향을 피워놓았지만 미덥지 않다. 담배를 피우고 에프킬라를 한번 뿌려야겠다. 격렬한 사랑을 나눈 후의 담배는 맛이 텁텁하다. 입안의 침이 말랐기 때문이리라. 침대에는 나의 그녀가 알몸으로 누워 있다.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섹스 후 곧잘 잠이 든다. 그 잠이 그렇게 달콤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섹스 후에 잠이 오는 것은 자궁에 삽입된 정액을 안정적으로 보관하기 위한 생존 전략의 일환이라는 말을 어느 과학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잠이 든 그녀의 얼굴이 사랑스럽다. 개털처럼 푸석했던 머릿결도 많이 좋아졌다. 코팅과 스트레이트 혹은 영양파마 덕분이다. 요즘은 아내가 과연 내 인생에 한 부분으로 존재했던 적이 있었는지, 아내의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아내가 나를 죽이려 들었던 적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아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
아내를 죽인 지 이미 두 달이 지났다.
그 동안 경찰에서 단 한번 형식적인 조사를 위해 집에 들른 적이 있었지만, 역시 형식적인 것이었을 뿐 나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디에서도 아내의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오늘 아침 아내의 몸뚱이를 묻은 장소에 가보았을 때 그 자리는 이미 전혀 표가 안 날 만큼 잡초가 자라 있어 나조차도 묻은 자리를 정확히 구별해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를 집에 데려오기 시작한 건 아내를 죽이고 난 한 달 후부터였다. 조심스럽게 그녀를 내 집으로 데려와 같이 보내는 밤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외출한 빈집에서 동생과 난장판을 벌이던 날과 같은 은밀한 즐거움이 있었다. 사라진 아내의 머리가 내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침실 침대 밑에 장전된 사냥총을 준비해두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서였다.
등 뒤에서 옅은 향기가 느껴진다. 그녀다. 잠이 깬 모양이다. 맨발로 다가온 그녀는 내 등 뒤로 다가와 옆구리 사이로 손을 끼어 넣고 나를 껴안는다. 뭉클한 가슴이 등에 느껴진다. 기분 좋은 촉감이다. 이 순간 그녀라면, 그녀를 향한 사랑이라면 영원토록 변치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무슨 생각해?”
그녀가 묻는다. 얼굴을 내 등에 파묻은 채로.
“너라면, 내 사랑이 영원히 변치 않을 거라는 생각하고 있었어.”
멜로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신파조 대사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말한다. 그녀 역시 말한다.
“나두…….”
라고.
“자기야. 모기 있나봐. 나 여기 물렸어.”
그녀가 어리광을 부리며 자신의 팔꿈치를 가리킨다. 나는 그녀의 팔꿈치에 정성스레 물파스를 발라주고 나서 화장대 위에 올려 있던 에프킬라를 집어 들고 방 여기저기에 뿌린다. 평소에는 불쾌하기까지 했던 에프킬라 특유의 냄새도 그녀와 함께 하니, 감미롭기까지 하다.
기분 좋은 밤이다. 다시금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그 기분 좋음을 깨뜨린다.
“근데 무슨 소리 안 들려?”
“무슨 소리?”
“몰라. 아까부터 아래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서…….”
잘못 들었을 것이다. 설혹 그런 소리가 났다고 해도 길을 잃고 집안으로 들어온 개구리나 다람쥐 따위일 것이다. 시골에 살다 보니, 간혹 산짐승들이 허술한 집의 틈새를 통해 집안으로 들어와 헤매고 다니는 경우가 있었다. 여하튼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산짐승은 개구리나 다람쥐만은 아니었으니까. 지난 장마철에는 공구함을 열었을 때 거기서 새카만 뱀 한 마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 적도 있었다. 독사였다. 그때 나는 재빨리 삽 모서리로 뱀의 대가리 밑 부분을 후려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야 뱀의 대가리는 완전히 잘려나갔다. 대가리가 잘린 뱀은 미친 듯이 몸뚱이를 꿈틀거리더니,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잠잠해졌다. 그 때처럼 뱀이 들어왔을 지도 모른다. 별다른 일이야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나도 그녀처럼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러나 밖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바람 소리 말고는 잠잠하다.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
“아냐. 정말 났다니까…….”
다시금 귀를 기울여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뭔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같다. 나는 서둘러 침대 밑에서 장전된 사냥총을 끄집어낸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뭐야. 왜케 오바하구 그래?”
“혹시 몰라서…….”
나는 사냥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방문을 연다. 복도는 텅 비어 있다. 아래층에서 다시금 뭔가 끌리는 소리가 난다.
“자기야. 조심해.”
뒤돌아보니, 그녀가 방문을 열고 얼굴을 비죽 내밀고 있다. 나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에게 외친다.
“얼른 문 닫구, 잠그고 있어.”
5. 머리카락 (완결) 보기
유령의 공포문학 (http://cafe.naver.com/64ghost)
김종일의 공포소설 (http://cafe.naver.com/kimjongil)
'연재 코너 > 김종일 작가의 <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종일 공포소설 '몸' - 6 구토 (3) (3) | 2008/08/23 |
|---|---|
| 김종일 공포소설 '몸' - 6 구토 (2) (4) | 2008/08/03 |
| 김종일 공포소설 '몸' - 6 구토 (1) (2) | 2008/07/20 |
| 김종일 공포소설 '몸' - 5 머리카락 (완결) (2) | 2008/06/15 |
| 김종일 공포소설 '몸' - 5 머리카락 (5) (5) | 2008/05/23 |
| 김종일 공포소설 '몸' - 5 머리카락 (4) (4) | 2008/05/09 |
| 김종일 공포소설 '몸' - 5 머리카락 (3) (3) | 2008/04/24 |
| 김종일 공포소설 '몸' - 5 머리카락 (2) (5) | 2008/04/16 |
| 김종일 공포소설 '몸' - 5 머리카락 (1) (1) | 2008/03/30 |
| 김종일 공포소설 '몸' - 4. 귀 (완결) (2) | 2008/03/17 |
| 김종일 공포소설 '몸' - 4. 귀 (4) (2) | 2008/02/23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을 기대하며..^^
허,, 정말.. 사람을 잡아끄는 글이란게, 이런거군요.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다음편이 아직 없다는게 허탈할 뿐 ㅜㅜㅜㅜ
잘봤습니다. 정신없이 시간가는줄 모르고 봤습니다.
다음편까지 어떻게 기다리지..ㅋㅋ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1편부터 읽으러 가요~^^*
정말 끝내줍니다. 무섭게 몰입...
읽으면서 자꾸만 기대되는게 넘 잼나게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