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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대신 처절한 응징을

<나니아 연대기> 1편은 그저 그랬다. 그래서 2편인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안 왕자>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기대치가 낮았던 덕에 영화를 보며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상영 시간이 좀 짧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뿐. <나니아 연대기>는 아동용의 판타지다. 아동용이라고 무조건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나 에피소드 등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무난하게 진행된다는 말이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나니아 연대기:캐스피안 왕자>에는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이미 어딘가에서 보았던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을 뿐이다. 그냥저냥 볼 수는 있지만,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다.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안 왕자>를 보면서 제일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2편의 주인공격인 캐스피안 왕자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캐릭터다. 왕위계승자인 캐스피안은 삼촌의 암살 기도를 피해 숲으로 들어가 나니아인들과 함께 싸우게 된다. 동화나 소설 등에 흔히 등장하는 유형의 캐스피안 왕자는 한마디로 민폐형이다. 개인적인 감정에 휘말려 중차대한 기습공격을 망치고, 삼촌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망설이다가 놓아주고, 제대로 하는 일이란 거의 없다. 잠시 등장하는 마녀의 유혹에도 흔들린다. 즉 캐스피안은 인간적이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왕자다. 자존심도 강하지만, 정도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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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안 왕자>

캐스피안 같은 주인공이 나오면, 언제나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반드시 누군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반 캐릭터들이 희생을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잘못으로 누군가가 희생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반성을 한다. 그게 주인공을 한 단계 성장하게 한다. 그런 실패와 오류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배우고, 왕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을 갖춘다는 설정은 교훈적인 이야기에 늘 등장하곤 한다. 나는 그게 싫다. 그런 인간을 보고 있으면, 정말 짜증난다. 아버지의 원수이며, 자신까지 죽이려 했던 삼촌을, 그는 용서해준다. 대신에 죽은 이들과 그의 가족들은 대체 어쩌라고. 그걸로 그가 얼마나 마음이 넓고 자비로운 인간인지 증명은 했지만, 왕도 되지 못하는 다른 희생자들은 어쩌란 말인가.

<테이큰>이 짜릿했던 이유는, 액션에도 있었지만 주인공의 가차 없음이었다. 지금 딸을 놓아주지 않으면 찾아내서 다 죽여 버리겠다, 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현하는 담대함이었다. 휴머니즘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그들도 다 같은 인간이라고. 그들도 다 힘든 과정이 있고, 상처가 있어서 그렇게 된 거라고. 그러니 그들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줘야 한다고. 한국영화에서도 그런 상황은 수도 없이 나온다. <우리 동네>나 <검은 집>에서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던 연쇄살인마에게, 마지막에 가서는 동정적인 시선을 비친다. 그들도 알고 보면 희생자야, 그들도 불쌍한 사람이라고. 그러니 그들을 너무 욕하지 마. 가해자,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는 거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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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큰>

맞다. 그들도 인권은 있다. 하지만 희생자와 그들의 가족의 인권은 어쩌란 말인가. 과거에 어떤 아픔이 있었건 그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고, 그 대가를 치러야한다. 그들을 이해하는 건 나중 일이다. 물론 현실은 복잡하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뭔가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 때문에 뒤틀린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에서는, 그런 인간들을 그렇게 단순한 방식으로,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야, 라고 이해하고 싶지 않다.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의 말처럼 ‘그 놈들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놈들이야’라고 생각하고 싶다. 딸을 납치한 매춘 조직의 인간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을 살려주면, 과연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평화롭게 소시민으로 살아갈까?

꼭 현실도 <테이큰>처럼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테이큰>처럼 단순하지 않다. 반대로 <테이큰>이 너무 폭력적이라거나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한심하다. <테이큰>이 현실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 <테이큰>의 극단적인 행동도 하나의 영화적 장치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영화와 현실을 동일시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그리고 예술이란 것도 애초에 정치적 공정함이나 합리성을 따지는 게 목적이 아니다.

Posted by maken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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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좀 생각없이 글을 쓰네요
    정리 좀 하고 쓰시면 좋을 듯^^

  2. 속시원하게 글 잘쓰셨네요.

    저도 영화면 영화답게 관객들이 원하는걸 잘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영화는 너무 지지부진해서..

  3. 글좋구만 2008/05/14 14:13

    글 좋습니다
    관객이 멀 원하는지 잘 잡아야 합니다..

  4. 선량하고 갈등의 여지 많은 어리버리한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도 또 하나의 영화 종류이죠. 개인호불호로 그런 영화의 캐릭터를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측면에서 무자비한 캐릭터가 주는 카타르시스도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현실과는 다르다는것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겠죠. 좋은 글 잘 봤습니다.

  5. [사연이 있는 악당 캐릭터]도 스테레오 타입이 된지 오래죠.
    오히려 추격자의 절대악이 더 신선해 보이는걸 보면
    대중이 원하는 캐릭터 성격도 돌고도나봅니다. -ㅅ-

  6. 정영욱 2008/05/14 20:23

    가차없는 주인공 하니까 <지뢰진>의 아이다 코야가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

    작년인가 조인성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국내에서 TV 드라마로 만든다는 기사가 떴었는데 .... 이후 소식이 없는걸 보니 기획 단계에서 접은 모양입니다 .....

    갠적으로는 차라리 잘됐다 싶은게 원작 자체가 공중파에서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죠 .... 조인성도 미스캐스팅이고 ....;;;;

  7. 주인공.. 2008/05/15 19:57

    요즘 영화 주인공들 별로에요..
    옜날 영화들 보면 단순해서 좋은데..
    뭐가 그렇게 복잡한지 -_-;;

  8. 이 작품은 관람목록에서 제외시키려다가 시놉시스를 보니 왠지 시걸 형님의 <밸리 오브 비스트>라는 작품과 자꾸 겹쳐져서 결국 봤는데..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더군요. 그래도 한동안 볼 수 없었던 '리암 니슨'의 나름 잔인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