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제도의 모순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
지난 전주영화제에서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가 상영되었다. 미국에서도 리메이크된 <쉘 위 댄스>를 만든 후 7년만의 신작이었다. 일상에 파묻혀 직장과 집만을 오가던 중년 남자가 사교댄스를 배우면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내용의 <쉘 위 댄스>와는 달리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진지하고 심각한 법정 영화다. 보통 사람들에게 대한 따듯한 시선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법 제도를 둘러싼 현대 사회의 모순을 맹렬하게 질타하는 사회파 영화다.
가네코 텟페이는 만원전철에서 치한으로 몰려 경찰서로 가게 된다. 가네코는 범행사실을 부인하지만,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방법은 재판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실제로 성추행을 한 치한들은 집이나 직장에 추행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정식 재판을 하지 않고 자백을 하여 피해자와 합의를 한다. 끝까지 결백함을 주장한다면 정식 재판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몇 개월을 구치소에 갇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결백하더라도, 그런 불이익을 당하기 싫어서 대부분이 그냥 인정을 하고 풀려나는 길을 택한다. 심지어 가네코를 담당한 국선 변호사마저 재판을 피하라고 권유한다. 형사 사건의 경우 거의 유죄로 판결이 나기 때문에 시간과 돈, 노력까지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네코는 재판을 택한다. 억울해서, 너무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오 마사유키는 담담하게 가네코가 재판을 결심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크게 감정 이입을 하지 않는다. 대신 법 제도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약간의 장치를 한다. 가네코의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보기 드물게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단지 경찰과 검찰의 수사기록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와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서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려 한다. 그는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런 판사는 소수이고 아웃사이더다. 합리적인 판단 대신 엄정한 법 적용을 소신으로 삼는 부장 판사는 그를 한직으로 밀어내고 대신 가네코의 사건을 맡는다. 새로 온 판사는 모든 것을 바꿔버린다. 새로운 증거를 인정하지 않고, 검찰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한다. 단지 판사가 바뀜으로써, 판결이 180도 바뀌고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버린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일본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영화다. 일본에서는 지하철 성추행이 다발하자 피해자의 증언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는 법을 만들었다. 만원전철에서 목격자가 나오기 힘들고 은밀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성추행을 저지르고도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아져서 법을 바꾼 것이다. 약자인 피해자의 권익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좋은 법이었지만,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이 법을 악용하여 무고한 사람을 추행범으로 몰아 돈을 뜯어내는 사건들도 나온 것이다. 증거가 아니라 진술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추행범으로 몰리면 빠져나갈 곳이 거의 없다. 재판으로 가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고,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그래서 억울한 경우에도 그냥 돈을 주고 합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그런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하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는 할리우드의 법정영화와는 약간 다르다. 올해부터 일본에서도 배심원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는 그 이전의 상황이기 때문에 검사와 변호사의 싸움이 할리우드 법정영화처럼 치열하고 살벌하지 않다. 배심원을 설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판사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오 마사유키는 법정만이 아니라 재판을 둘러싼 다양한 상황과 인간군상을 냉철하게 그려낸다. 단지 동정이나 분노가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법’이 때로는 얼마나 위험하고 악랄한 것일 수 있는지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쉘 위 댄스>의 따뜻함과는 조금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똑같은 휴머니즘이다. 정말로 인간을 생각하고, 정말로 사람들의 행복을 생각하는 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엄정한 시선이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에는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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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입장에서 왠지 보기 괴로운 작품같지만
그래도 한번 영화를 보고싶게 만드는 리뷰네요. 잘 읽었습니다
보면서 분통 터질 것 같아서
전 왠지 피하게 될 것 같습니다...^^;;
카세 료가 요즘 일본에선 뜨는 배우인가보네요..
저도 보면 분통 터질 것 같네요..하지만 한 번 쯤 감상하고 생각해 볼 가치는 있는 영화 같군요..
작년 런던 필름 페스티발에서 선보였던 영화에요. 그때 보고서 꽤나 재밌게 봤는데,
한국개봉 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는데..ㅋ
다들 꼭 봐보세요. 보는내내 주먹을 움찔하고 쥐게되는...ㅡ_ㅡ;;
지금 보고 있는데
너무... 길어서;; 이런저런 생각은 하게 되긴 하지만..ㅠㅠ
좀 더 자세한 리뷰를 보고 싶었는데 좀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