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결혼식을 올린 건 3년 전의 일이었고, 제대 후 1년만의 일이었다. 군대를 미루고 미루다 뒤늦게 갔던 터라, 제대를 했을 때는 이미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그 첫면회를 시작으로 그녀는 적어도 2, 3주에 한 번씩은 꼭 면회를 왔고, 이따금 감상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사귄 지 석 달 만에 키스를 하고, 반년 만에 같이 잤다. 처음 같이 자던 날에서야 나는 비로소 그녀에게 내가 대머리라는 사실을 머뭇거리며 고백했다.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었지만, 반응은 의외였다. 이미 반 이상 벗겨진 머리를 보여주며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귀엽네, 뭐.”
그녀는 마치 대머리 남자를 사귀는 게 직업인 여자처럼 나의 대머리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커플 사이의 머리카락은 자신의 빛나는 머릿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던 걸까.
그 후로는 평범한 연애였다. 지극히 평범한 순서로 우리는 결혼에 이르렀다. 사돈어른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 부모는 한 동안 우리의 결혼을 반대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게 마련이었다.
결혼식 날 아내는 정말 아름다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내의 머리카락은 정말 아름다웠다.
웨딩마치에 맞추어 통로를 걸어오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과거 마음 속 한 구석을 꺼림칙하게 자리했던 연애박사 후임병의 경고며, 그 날 밤의 가위눌림이며, 그로 인해 빚어져 흉측한 덩어리로 굳어졌던 갖가지 해괴한 망상 따위는 모조리 하얗게 표백되며 속속들이 휘발되었다. 하얀 면사포에 둘러싸인 채 정갈하게 틀어 올려진 아내의 까만 머릿결은 여신의 그것과 같았다. 가슴이 울렁거려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다. 저런 머릿결을 가진 여자가 내 아내가 된다는 사실이 그렇게 뿌듯하고 설렐 수가 없었다.
“신랑은 신부를 아내로 맞이하야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아끼고 사랑하겠습니까?”
주례 선생이 판에 박힌 주례 멘트를 읊었을 때 나는 다시금 아내의 검은 머릿결을 바라다보았다. 그러나 아내의 그런 머릿결이 ‘파뿌리’가 되는 광경은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아내와 결혼 행진을 할 때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 날 아내와 나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 객실에서 보낸 첫날 밤 나는 예의 가위눌림을 우려했지만, 그 밤 나는 오히려 아내와의 잠자리를 마친 후 꿈도 없는 단잠을 잤다. 모든 우려가 기우로 사라졌다.
적어도 그 때까지는 그랬다.
아내는 평범한 여자였다.
책 읽기보다는 드라마 보기를 즐겨했고, 비디오를 봐도 액션이나 스릴러, 심각한 드라마보다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했다. 티브이 홈쇼핑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목걸이나 세 벌에 사만 원 하는 바지를 무이자할부 10개월에 사은품까지 딸려 구입한 것을, 아파트 단지 앞에 새로 생긴 종합쇼핑센터의 개업세일에 달려가 한 판에 삼천 원 하는 달걀 한 판을 천원에 사오는 일상을 행운으로 여기 여자였다. 여느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시사나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았고, 주변에서 이혼한 친구들의,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사유에 대해, 심적 갈등보다는 성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가끔 나 몰래 카드로 우리 형편에는 벅찬 목걸이나 정장을 구입해 말다툼을 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가끔 있는 일이었고, 그 역시 아내의 평범함을 더 두드러지게 하는 요소일 뿐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왠지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것은 자기 머리카락에 남이 손대는 것을 유난히 질색하는 성향이었다. 나 역시 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을 싫어하긴 했다. 내가 대머리라는 사실에 평소 강한 자의식을 갖고 있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입대하던 날 논산까지 동행한 친구 녀석이 작별인사를 하며 느닷없이 짧아진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흔들었을 때,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녀석에게 살의를 품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 역시 급작스런 신체의 고통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었을 뿐 유별난 건 아니었다. 입대 후 나는 가끔 그 때 녀석의 돌연한 행동에 대해 생각했고, 어쩌면 그 행동이 앞으로 겪어나갈 26개월 동안 자신을 잊지 말라는 상징적인 각인을 의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고 오히려 녀석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내 손길에 자신의 머리카락이 스치는 것조차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용납하려 들지 않았다. 연애 때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물론 너무 눈부셔서 감히 만져볼 엄두도 못 내긴 했지만, 아내가 두피도 아닌, 머리카락에 그렇게 신경이 예민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부부 간의 일상적인 접촉에 충분히 익숙해졌다고 여길 즈음의 어느 밤이었다.
잠자리를 갖던 중, 무심결에 내가 아내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는데, 아내가 느닷없이 정색을 하며 나를 밀어내는 것이었다.
“뭐, 뭐야. 당신 왜 그래?”
적의로 이글대는 아내의 눈초리를 느끼고서야 나는 아내와 처음 마주쳐 뒤를 밟았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부탁이야. 미안한데, 딴 건 몰라도 이것만은 지켜 줄래? 내 머리에 손대지 말아 줘.”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올 듯한 냉랭한 어조로 아내는 말했다.
“왜 그래? 살다 보면 자기 부인 머리카락도 만질 수 있구 그런 거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면서 다시 아내를 안으려 했지만, 아내는 다시금 나를 완강히 밀어냈다.
“장난하는 거 아냐. 어릴 때부터 그랬어. 왜 그런지는 나도 몰라. 근데 정말 싫어. 누가 내 머리 만지는 거…….”
아내가 내뿜는 맹렬한 적의를 나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제발 주의해주길 바래.”
아내의 퍼런 서슬에 질려 나는 알았다고 약속했지만, 난데없는 아내의 돌변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자기야. 내가 머리카락에 좀 예민해서 그래.”
한참 후에야 누그러진 말투로 청해온 아내의 사과를 받아들이고도 마음 한구석은 꺼림칙했다. 정작 머리카락에 예민해야 할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나는 이미 완연한 대머리로 자리 잡은 머리를 하릴없이 긁적였다. 자리에 눕자 다시 아내가 내 품으로 안겨왔지만, 다시 잠자리를 갖고 싶은 생각은 달아난 지 오래였다. 아내는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어느 틈에서 뇌리를 기어 나온, 손가락의 상처만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아내와 마주친 첫날 입을 벌렸던 상처였다. 이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문 지 오래인 상처였지만, 그 날 밤은 유독 그 상처가 다시금 입을 쩍 벌리고 내 의식을 좀먹어 들어왔다. 결국 그 날 아내는 달아난 욕구를 되살리는 데에는 끝내 실패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정상인의 경우에도 하루에 100올 정도는 빠진다고 한다. 늘 청소를 해도 방바닥에 머리카락이 뒹구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터였다. 한데 이상하게도 아내의 머리카락은 집안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늘 집안 여기저기를 뒹구는 것은 남성형 탈모증으로 빠져 나뒹구는, 약간 곱슬기가 있는 내 머리카락들 뿐, 아내의 기다란 생머리는 아니었다. 물론 아내의 머리카락은 늘 아내의 머리에 눈부신 자태로 온전히 빛을 발하고 있긴 했다. 그러나 여느 사람이라면 당연히 몇 올쯤 빠져서 방바닥을 뒹굴어야 할 머리카락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반은 혼잣말로, 반은 아내에게 물었다.
“어째 집안에 뒹구는 게 맨 내 머리카락뿐이지?”
그러나 아내는 심드렁한 대답이었다.
“당신이야 머리가 많이 빠지니까 그렇지, 그리구 난 머리 빗어두 항상 욕실에서 빗구 깨끗이 뒤처리를 하잖아.”
아내의 말대로 뒤처리를 한 머리카락들이 있나 싶어 욕실 변기 옆의 휴지통을 뒤적여보기까지 했지만, 역시 휴지와 생리대 몇 개 뿐 머리카락은 한 가닥도 나오지 않았다.
문득 이런 짓까지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픽 웃으며 세면대로 가 손을 씻었다. 한데 배수구 틈새에 뭔가 너울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면대 배수구에 아내의 머리카락 몇 올이 걸려 있었다. 머리를 감을 때 몇 올이 빠진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괜한 잡생각이었어.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머리카락은 배수가 막히는 데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는 찌꺼기였다. 언젠가 배수구가 막혀서 끝내 배관공을 부른 적이 있었는데, 결국 그가 30분이 넘게 특수한 갈고리로 배수관을 헤집은 끝에 갈고리에 달려 나온 것은 지렁이처럼 뒤엉킨 수백 올의 머리카락이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에는 각종 오물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나는 아내의 머리카락을 끄집어내기 위해 손가락을 배수구 입구에 집어넣었다. 그 때 갑자기 손가락 끝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악!”
나는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어릴 때 밤나무 밑에 밤을 주우러갔다가 비탈에서 미끄러지며 뒤로 손을 짚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손을 짚은 자리에 하필이면 단단한 밤송이가 뒹굴고 있던 터라, 손바닥 전체에 호되게 밤 가시가 박혔었다. 그 때 느꼈던 통증과 흡사했다. 사실 더 날카로웠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통증이었다. 손가락 끝을 보니, 체해서 바늘로 손끝을 땄을 때처럼 오른손 검지 지문 윗부분에 빨간 피 세 점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거기까진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손가락에 상처를 입힐만한 찌꺼기가 배수구 입구에 걸려 있었을 수도 있었다.
한데 놀라웠던 건 손등을 돌려보니, 같은 손가락의 손톱 밑에서도 세 점의 피가 배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 그래?”
돌아보니, 아내가 욕실 문턱에 서 있었다. 비명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 때처럼 아내의 존재가 섬뜩하고 꺼림칙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아내의 머리카락에서도 왠지 서슬 퍼런 귀기가 형광등 불빛을 받은 머리카락의 윤기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얼른 손가락을 감싸 쥐며 대답했다.
“면도하다 벴어. 미안한데, 반창고 있으면 줌 갖다 줄래?”
나는 아내에게 거짓말을 했다. 순간적이지만, 아내에게 사실대로 밝혀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본능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많이 다쳤어? 봐봐.”
“아…… 아니, 쪼금. 반창고만 붙이면 될 거 같어.”
아내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배수구 속부터 살폈다. 그러나 걸려 있던 머리카락은 온데간데없었다.
다음으로 나는 손가락 끝에 난 상처부터 살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단순히 찔린 정도가 아니었다. 손끝을 뚫고 들어간 것이 살과 뼈를 지나 손톱 밑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관통이었다. 그러나 손끝과 손톱 밑의 상처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손바닥에 밤 가시가 박혔던 어린 날에는 박힌 가시를 빼느라 엄청난 곤혹을 치러야 했다. 그 중 일부는 끝내 제거되지 못하고, 내 신체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내 손바닥 생명선 옆에는 점으로 보이는 밤 가시 자국이 남아 있다. 그러나 손가락을 뭔가에 찔린 그 날에는 손가락에 위해를 가한 증거물을 끝내 찾아낼 수 없었다. 어쩌면 머리카락과 비슷한, 가는 철사 따위가 배수구 구멍에 걸려 있다가 내 손가락을 파고든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서 흐르는 수돗물에 쓸려 내려간 것일지도.
그렇게 결론짓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려 했지만, 기분은 전혀 개운해지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속의 머리카락들은 내 마음 구석에 걸려 수시로 너울거리며 속 시원히 내려가지 않았다.
내 성격상의 커다란 단점은 감정의 기복이 남달리 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좋고 싫음이 분명할뿐더러 그 좋고 싫음의 기준이 결정되면 쉽게 수정되지 않는다. 아내에 대해서도 그랬다. 아내의 머리카락에 대해 혐오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건 아마도 그 날부터였을 것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이상한 존재다.
사랑이 등을 돌리면 증오가 된다. 호감이 뒤바뀌어 혐오가 되며, 고통은 나아가 쾌감이 되기도 한다. 울음이 웃음으로 바뀌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 날 이후로 아내의 머리카락에 대해 느껴졌던 매력이나 추앙심이 빠른 속도로 사그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아내의 머리카락에 대한 거부감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아내의 어떤 단점도 머리카락 하나의 눈부심으로 덮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 눈부심의 빛이 바래기 시작하자 아내의 모든 단점들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아내는 다른 여자에 비해 마른 얼굴이었고, 특히 얼굴은 광대뼈가 두드러질 만큼 살이 없었다. 눈매도 날카로웠고, 성격도 그에 걸맞게 예민하기 짝이 없었다. 아내가 싫어지기 시작하면서 그 예민함이 가장 먼저 거슬렸다. 자기 머리카락에 손을 대는 걸 질색하는 성향도 나에게는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병장휴가 때 내게 이별을 고한 옛 애인처럼 아내에게 ‘더 싫어지구 미워지기 전에 여기서 헤어지’자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이상형을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