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막기가 쉽지 않을걸.
형무소에서 DJ로 인기를 날리던 피티 그린은 형을 면회하러 온 라디오방송 PD 듀이 휴즈에게 접근한다. 범죄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듀이는 피티를 귀찮은 쓰레기로 대한다. 잔꾀로 조기 가석방된 피터는 워싱턴의 라디오방송 WOL로 찾아가 막무가내로 DJ 자리를 요구하다 퇴짜를 맞는다. 방송국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피티를 찾아간 듀이는 WOL 모닝쇼의 케케묵은 분위기를 바꿔달라고 제안한다. 솔직한 말만 방송하겠다는 피티의 진심이 청취자들에게 전해지면서 그의 인생은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톡투미>는 미국의 전설적인 연예인인 피티 그린(1931~1984)의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1990년대 말에 개봉한 <언터쳐블 가이>란 영화를 기억하는지?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 모은 DJ 하워드 스턴이 직접 주연을 맡아 기행을 스크린 위로 옮긴 영화였는데, 괴짜 하워드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 인물이 바로 피티 그린이다. 피티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거리에서 자란 흑인 소년은 무장강도짓을 하다 감옥으로 들어갔지만, 그 곳에서 숨은 재주를 알아차린다. 자신과 비슷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과 거침없는 목소리와 R&B 음악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의 꿈이 이루어졌더라도 보통은 평범한 DJ의 삶으로 끝났을 터다. 그러나 시대는 그를 영웅으로 만든다. 1960년대와 1970년대가 어떨 땐가? 흑인과 여성처럼 소외받던 계층의 인권문제가 큰 이슈로 대두됐던 시기, 흑인 음악이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할 즈음 아니던가. 자기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꾸었던 한 남자는 시대의 흐름과 조우하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폭발을 일으킨다.
당시 흑인음악을 트는 라디오방송의 소유주는 대다수가 백인이었고, 그런 방송은 말랑말랑한 음악만 틀었지 흑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분위기에 역행한 피터의 선풍적인 인기는 당연했다. 억압받으며 사는 흑인 남자, 하루하루를 꿈 없이 보내는 흑인 여자들이 원하는 건 자신들의 답답한 심정을 터뜨리게 해줄 기회와 그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달래줄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까다롭고 보수적인 방송국 사장의 눈치엔 아랑곳하지 않은 피티는 자기주장을 숨김 없이 풀었고, 그에게 전화를 건 형제자매들은 친구에게 말하듯이 울분을 쏟아냈다. 피티의 주문 “까놓고 말합시다(Talk to Me).”는 흑인들이 간절히 원했던 바를 꿰뚫은 한마디였다.
‘워싱턴 폭동’과 관련된 사건으로 피티는 경력의 정점에 오른다.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뒤 워싱턴 D.C.에서 벌어진 대규모 폭동을 눈앞에서 목격한 피티는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당신들이 서있는 곳은 우리가 사는 곳이고, 여러분이 이곳을 불태운다면 우리가 가진 것을 태우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사회적 불평등을 토로하며 흑인의 자의식을 일깨웠던 그의 목소리는 폭동을 잠재우는 데도 큰 힘을 발휘했다. 그것은 바로, 평소 흑인 형제들과 진실을 나누려 노력한 그의 마음 덕분이었다.
<톡투미>는 남다른 전개방식을 지닌 영화다. 피티가 DJ의 경력을 시작하는 초반부는 육감적이고 리드미컬한 R&B 음악으로 귀를 즐겁게 함은 물론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제임스 브라운이 거대한 목소리로 부르는 <It's a Man's Man's Man's World>로부터 시작해, 우리에게 리메이크 버전으로 더 익숙한 <Knock on Wood>, <Tainted Love> 등이 줄줄이 흘러나오니 가만히 앉아있기가 힘들다. 이어 킹 목사의 암살과 폭동을 다룰 때는 무거운 분위기로 바뀌면서 역사의 현장을 간접 경험하는 감동을 안겨준다. 샘 쿡의 <A Change is Gonna Come>이 흘러나오고, 방송사 사장으로 분한 마틴 쉰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에선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그러나 <톡투미>가 거기에서 멈췄다면 평범한 전기영화로 끝마쳤을지도 모른다.
<톡투미>의 후반부는 인기 가도를 달리던 피티가 자신의 본질을 직시하는 지점을 심도 깊게 다룬다. (영화 속에선 신문기사로 잠깐 언급되지만) 감옥을 드나들던 남자는 백악관에 초청되는 유명인사의 위치에 올랐고, 유명 연예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증거인 ‘투나잇 쇼’에 출연하게도 됐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톡투미>는 피티가 ‘투나잇 쇼’를 얼어붙게 만든 순간, 그러니까 피티의 몰락이 시작되는 시점을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설정한다. PD였던 듀이가 매니저를 맡으면서 피티는 TV쇼, 스탠드업 코미디무대 등으로 출세의 길을 걷던 중이었으나, 영화는 그의 본 정서가 그런 화려한 무대와는 어울리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간파해낸다.
아이러니한 건 영화의 가장 큰 감동이 피티가 쓸쓸한 현실로 돌아간 뒤에 나온다는 점이다. 피티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이 DJ이며, 밑바닥에서 살고 있는 흑인들과 의식을 나눌 때 가장 행복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톡투미>는 잔혹하게도 듀이가 피티의 자리를 차지해 피티의 영광을 재현하는 시간과 피티의 쇠락을 나란히 배열한다. 그렇게 천국과 지옥에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우리는 묻는다. “인간에게 진짜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명예를 얻는 걸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걸까? 남부럽지 않게 사는 걸까? 아니면 인생의 허망함을 아는 걸까?” 영화의 후반부는 이전과 사뭇 달라 적적함이 느껴지지만, 그 후반부의 진한 인간미야말로 <톡투미>를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보통 알고 있는 돈 치들의 이미지는 <오션스 11>에서의 그것에 가깝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동료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돈 치들의 파워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다. <호텔 르완다>와 <크래쉬>를 통해 그를 재평가했던 사람들은 <톡투미>에서 그의 연기의 정수를 보게 된다. 그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지 못한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흑인배우 중 테렌스 하워드와 함께 근래 주목할 만한 존재로 떠오르고 있는 치웨텔 에지오포의 연기도 기억할 만하며,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 당찬 연기를 펼친 타라지 P. 헨슨은 여성감독의 인장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여성영화 <이브의 시선>(1997)으로 낯선 충격을 선사하며 데뷔했던 캐시 레몬스는 뜨문뜨문 발표하는 작품 속에서도 본령을 잃지 않고 있어 믿음직한 감독이라 하겠다.
* 피티 그린은 '투나잇 쇼'의 무대에서 백인 중산층 방청객의 수준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뒤돌아선 사람이다. 요즘 이유 없이 TV에 손님으로 등장하는 한심한 인간들은 이 영화를 보고 주제 파악들 좀 했으면 좋겠다. 유명세와 돈에 영혼을 판 인간들이 TV에서 어슬렁거리는 꼬라지를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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