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윤발과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만남
(편집: 본문에는 영화 제목을 '황시의 아이들'로 표기했지만 국내 정식 개봉명은 '황시'로 결정됐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싱가포르에서 <Escape from Huang Shi>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의 중국어 제목은 <黃石的孩子>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Children of Huang Shi>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검색을 해보니 한국에는 <황시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이 영화를 소개한 기사들이 있었다. 한국에 이 영화가 개봉을 한다면 어떤 제목이 붙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한국에는 이 영화를 주윤발의 신작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맞는 말이긴 하다. 주윤발이 출연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는 비중이 크지 않은 조연이고, 조지 호그 역할을 맡고 있는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가 주연배우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로저 스포티스우드이다. 나는 오래 전에 비디오로 출시되었던 그의 초기작 <언더 파이어>를 보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닉 놀테가 기자로 나왔던 이 영화는 내 기억으로 분쟁 지역인 남미를 배경으로 그래도 객관적인 시각을 가져보려고 노력했던 작품이었다. 이후 로저 스포티스우드는 007영화인 <네버 다이>도 찍었고, 꾸준히 작업을 했지만 그다지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실제 역사에 바탕을 둔 서사적인 휴먼 드라마를 찍었다.
1930년대의 중국,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고 난징에서 대학살의 만행을 저질렀던 전쟁의 시기였다. 이 때 영국인 저널리스트 조지 호그는 적십자로 위장해 특종을 잡으려고 난징에 잠입한다. 이것은 목숨을 건 행위였다. 일본군에 잡혀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 인민해방군 게릴라 대장인 첸(주윤발)에 의해 목숨을 건진다. 그는 호주인 간호사인 줄 알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외과의사인 리 피어슨(라다 미첼)의 치료를 받는다. 첸과 피어슨에 의해 조지는 한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그는 이후 고아들을 돌보게 되고 고아원이 위험하게 되자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 위해 고아들과 함께 추운 겨울에 몇 백 킬로를 행군하는 대장정을 시작한다.
이것이 대충의 줄거리인데 이런 내용을 알고 영화를 보든 혹은 그렇지 않든 크게 상관은 없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지금 보고 있는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조지라는 영국인 저널리스트의 숭고한 정신과 위대한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다른 인물들은 그를 돕고 있을 뿐이다. 중국, 독일, 호주 등이 제작에 참여한 이 영화는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의 만행을 기억하고, 중국을 도왔던 한 외국인을 기념하기 위해서 기획된 것 같다.
다국적 영화의 귀결은 영어공용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작 조지 호그의 조국인 영국은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영화도 그야말로 다국적 프로젝트이다. 캐나다 출신의 감독과 아일랜드 출신의 주연 남자배우, 그리고 호주 출신의 여배우와 홍콩 배우들이 함께 작업을 했다. 이제 글로벌 프로젝트에서 배우와 스탭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언어가 다르고 살아온 배경이 다르다는 것은 그냥 지나칠 일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스포티스우드 감독(오른쪽)
양자경은 007영화 이후 다시 한 번 로저 스포티스우드 영화에 출연했다. 그녀 역시 우아한 자태의 중국 여성으로 영어를 잘한다. 부유한 상인으로 나오는 그녀 역시 돈이 많았으니 영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하면 뭐 다른 의문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 고아원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쉬 카이라는 소년이 나오는데 그 소년 역시 영어를 한다. 조지가 어디서 영어를 배웠냐고 물으니 죽은 자신의 아버지는 중국의 관료였다고 대답한다. 역시 교육받은 중국의 관료가 자식에게 일찍이 영어를 가르친 것이다.
조지는 고아원으로 간다. 리 피어슨은 그것이 자신의 아이디어였다고 말한다. 고아원을 돌볼 사람이 없어서 조지가 그곳을 떠맡게 된 것이다. 기자였던 조지는 어쨌든 충실하게 아이들을 돌본다. 이것 역시 원래 그가 휴머니스트이고 평화주의자인 부모의 영향 때문이라고 짐작을 해본다. 그는 농사도 짓고 발전기를 고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중국어를 배운다. 그 모든 과정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여기에 같은 백인이면서 전쟁으로 비참한 중국을 돕고 있는 리 피어슨과의 로맨스가 이어진다. 다행히도 이것은 아주 노골적이지는 않다. <사이런트 힐>에서 죽도록 고생했던 라다 미첼은 마약으로 자신의 고통을 참아내면서 인민해방군 부상자를 목숨을 걸고 치료하는 인물이다. 조지 호그 만큼이나 숭고한 이상을 지닌 여성인 것이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과 숭고한 이상
조지 호그는 평화주의자이다. 간디의 무저항주의와 같은 평화주의 노선을 지녔던 부모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그는 리 피어슨에게 때론 불의한 폭력에 맞서 싸우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조지와 첸은 일본군 두 명을 잡는다. 첸은 그 일본군들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조지는 그럴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들을 가둬놓고 떠나지만 쉬 카이라는 소년이 그 일본군들을 죽인다. 그 소년은 아버지가 일본군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어머니와 누나는 역시 일본군들에 의해 강간당한 후 살해되었다. 그 소년이 일본군들에게 적대감을 품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이런 상황 즉 전쟁이나 극단적 폭력이 횡횡하는 상황에서 평화주의니 비폭력이니 하는 것은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소년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일본군의 손에는 일본에 두고 온 가족들의 사진이 있었다.
조지는 그 사진을 들고 쉬 카이에게 간다. 그 일본군도 가족을 두고 국가권력에 의해 징집되어 중국까지 오게 되었을 것이다. 쉬 카이는 그 사진을 찢어버린다. 일본군이 수많은 중국인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상황에서, 중국인 피해자들에게 보편적 인권과 휴머니즘 그리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라고 말한들 그게 귀에 들어올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사실 디테일을 따지고 들어가면 허술한 구석들이 많이 있다. 아마도 중국 현대사에 정통한 관객이라면 불만을 가질 만한 요소들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감동적인 드라마를 보고 나서 정작 감동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의 연출은 너무 평이하고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연기도 아주 높은 평가를 받기는 힘들어 보인다. 조지 호그 이외의 인물들은 제대로 된 캐릭터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그저 조지 호그라는 숭고한 이상을 지닌 인물을 돕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이제 노인이 된 당시의 고아들이 조지 호그를 추억하는 인터뷰로 장식된다. 그 노인들은 어려운 중국을 도와주었던 외국인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좋은 일이지만 내게는 남의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별다른 감동을 얻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과연 어떨까? 그 때는 나의 일처럼 느껴질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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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에서 설명되지는 않았겠지만 남경 대학살의 피해자들은 비단 중국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속엔 당시 남경에 있던 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함게 끼어있었죠. 물론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구요.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또한 무참하게 학살을 당했던 수 많은 이들과 그들을 도왔던 사람들을 기억한다면 감동은 배가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내에 개봉을 하면 꼭 봐야겠군요.
그렇군요. 난징대학살에 대한 묘사는 영화의 첫부분에 나오는데, 영화의 중심에 있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감동적인 부분은, 이 영화가 실존인물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지 호그라는 인물이 고아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려고 그 추운 겨울에 수 백 킬로의 장정에 올랐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요. 영화의 마지막에 당시의 고아들이 노인이 되어 증언을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를 짐작하게 합니다. 한국에 개봉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주윤발 신작이어서 기대중인 영화인데
관심을 가지고 쭉 평을 읽으니 큰 기대를 갖고
영화를 보면 안될거 같군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저두 영화 배경이 되는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알고
보는것이 더 좋을거 같네요..
주윤발은 이 영화에서도 멋있습니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요. 그는 공산군 게릴라 대장으로 나와도 어울립니다. 대단한 배우임에 틀림이 없죠.....
그런 중국인들이 티베트나 튀르키스탄*(위구르 지역이 아니라 이 나라 이름입니다)
에서 남경대학살을 잘 배웠죠
황시?? ㅋㅋ 한자를 우리나라 발음으로 황석이라고 하던가 아니면 중국어 발음으로 황쓰라고 하던가....황시가 웡미
예, 저도 '황쓰'가 맞는 발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식으로 '황석'이라고 하기는 좀 이상한 것 같고, 국내에 '황시'라고 소개되고 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