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만 손이 베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말입니다. 김 먹다가 입천장을 베인 적도 있습니다. 정말이냐구 말입니까? 정말이지 말입니다.”
군장 뺑뺑이를 돌던 날 밤 함께 탄약고 근무를 서다 내 손가락에 난 상처를 본 후임병은 그렇게 말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어쩌면 그녀의 머리카락에 닿는 순간 베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머리카락에 닿았을 때 따끔했던 감각이 바로 머리카락에 베인 순간의 감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근데, 솔직히 그 얘기 정말입니까? 에이, 구라지 말입니다.”
이제 겨우 일병 3호봉인 후임병은 말끝마다 ‘말입니다’를 붙이며 느물거렸다. 밖에서 나이트클럽 웨이터를 하다 왔다는 녀석은 여자에 대해서라면, 박사는 안 되어도 석사 급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고참들의 연애상담원 역할을 자처했다.
군 생활은 남자를 수컷으로 만드는 공정이었다.
오랫동안 이성과 접촉을 막아둔 폐쇄적인 기숙학교나, 장기간 바다를 항해 중인 선원들 사이에서 동성애가 성행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더라도 여자들을 쉽게 접하고 사는 민간인 생활에서는 여자에 대한 욕구가 크지 않은 법이었다. 그러나 여자라고는 주말에 면회 오는 여자들 말고는 구경할 기회조차 드문 군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내무반에 비치된 티브이에 나와 짧은 치마에 가슴 패인 의상에 선정적인 춤을 추어대는 댄스 여가수를 보기만 해도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기 마련이었다. 군대에서 휴가복귀를 하고 나면 어떤 여자와 몇 번 잠자리를 하고 들어왔는지가 화제로 떠오를 정도니 말 다한 셈이었다.
녀석은 그녀를 만난 이야기 자체를 믿지 않는 눈치였다. 신병이 자대에 배치되어 소대에 막내로 들어오면 대개 사회에서 여자 경험담을 보고하길 강요받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없는 경험담을 지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니면 그 상황에 시커먼 군바리가 불쑥 말을 걸어오니까 겁은 나고 혹시 뭔 일을 당할지 몰라서 그 쪽지 받아든 걸 수도 있구 말입니다.”
녀석의 추측은 그러나 억측으로 판명이 났다.
일주일 내내 군장뺑뺑이를 돌고 난 주 일요일 오전에 행정반에서 면회 왔다는 방송이, 그것도 ‘애인 면회’라는 방송이 들려왔다. 소대원들이 모두들 오오 탄성을 내질렀다. 나 역시도 믿기지 않았다. 휴가 때 헤어진 여자친구가 후회와 미련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나를 면회 왔을까. 그럴 리는 없었다. 외출증을 받아들고 위병소로 달려갔을 때, 대기실에는 그녀가 앉아 있었다. 대기실에 난 창으로 비치는 그녀의 머리칼을 본 것만으로도 일주일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금빛 햇살을 올올이 반사하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눈부셨다. 밝은 날 보니, 더 했다.
대기실에 들어서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가 일어섰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주변을 맴도는, 햇빛을 받은 먼지들까지도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져 나온 빛 가루처럼 여겨졌다.
“그 날…… 복귀는 잘 하셨어요?”
“아, 네에.”
그 일로 일주일간 군장 뺑뺑이를 돌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실 할 필요도 없었다. 그 대가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으니까. 대기실 창 너머로 시커먼 얼굴들이 왔다갔다 얼씬댔다. 그녀를 구경나온 후임병들이었다. 언덕 위 막사 부근의 진지에서도 ‘깔깔이’라 불리는 누비내피만을 입은 상반신들이 올망졸망 머리를 내놓고 있었다.
으쓱해진 어깨로 그녀와 함께 위병소를 나서며, 나는 이미 그녀와 결혼행진을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 날 부대 앞 커피숍에서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면회를 오게 된 이유를 묻자, 그녀는 대답했다.
“참 순수하다, 이 사람. 좋은 사람이다, 하는 느낌 들었어요. 근데 그 날은 날이 어두워서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못 봤거든요. 일주일 내내 궁금하더라구요. 그래서…… 왔어요.”
밝은 날 마주 한 그녀의 얼굴은 머리카락의 눈부신 생기에 비해 약간 수척해 보였다. 알 수 없는 그늘이 엿보이기도 했다. 그 그늘의 연유는 어쩌다 내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을 때 밝혀졌다.
“돌아가셨어요, 두 분 다. 교통사고였어요. 벌써 3년 됐네요. 식구끼리 제부도를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국도를 타고 오다 마주 오던 트럭이 갑자기 중앙선을 침범했어요. 그 때 아버지가 운전을 하시고, 엄마가 조수석에 타고 계셨어요. 저는 뒷자리에 타고 있었는데, 피할 틈도 없이 트럭이 달려들던 그 순간에 갑자기 그동안 살아왔던 날들이 영화필름처럼 막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좀 있으니까 체념이 되더라구요, 그 1, 2초 밖에 안 되는 순간에. 혹시 임사체험이라고 들어보셨어요? 그 때 그런 경험을 했어요. 믿지 않으셔도 돼요. 경험한 저도 잘 믿기지가 않으니까요. 어떻게 된 거냐면, 차가 정면충돌하고, 정신이 들어서 보니, 사고현장이 내려다보이는 거예요. 처참하더군요. 차는 전파(全破)되고, 도로는 부모님의 피와 살점이 뒹굴고……. 좀 있으니까 하늘 위로 눈부신 빛이 열리더군요. 일렁이면서 저를 끌어당기는데, 저도 모르게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일렁이는 빛의 통로를 통과해서 보니, 정말 환한 길이 나타났는데, 거기를 가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느낄 수는 있었어요. 저희 부모님도 거기 계셨거든요. 그런데 그 분들이 갑자기 저를 밀어내는 거예요. 넌 육신이 그래도 멀쩡하니 살 수 있다고, 가라고, 그러시더라구요. 근데 그 뒤로 저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었어요. 부모님이 그걸 결사적으로 막으면서 저를 밀어냈어요.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병원 천장이었어요. 완전히 정신이 든 후에야 제가 사흘이나 의식불명이었고, 부모님은 사고 현장에서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됐어요.”
눈물이 그렁거리는 그녀의 눈을 보며, 나는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괜한 걸 물었네요. 죄송해요.”
사과를 하니, 그녀는 곧 슬픔을 추스르고,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괜찮아요. 다…… 지난 일인 걸요.”
그러고는 창 너머를 응시하는 그녀의 눈은 여전히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사고 이후로 그녀는 보험회사에서 나온 보상금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구멍가게를 처분해 생활비를 해결하며, 이 시골에서 줄곧 혼자 기거한 모양이었다. 소설을 써왔다고 했다. 매년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매번 예심조차 통과해보지 못했다며 그녀는 쓰게 웃었다.
커피숍을 나왔을 때는 복귀 시간이 불과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군 생활에서의 외출은 50분간의 행군 끝에 주어지는 10분간의 휴식과도 같았다. 그 때 피워 무는 담배 한 모금처럼 달콤했고, 땀이 식기도 전에 끝나버릴 만큼 짧디짧았다.
거리를 거닐다 복귀 시간이 임박했을 때는 한 달 동안 군장 뺑뺑이를 돌더라도 그녀와 좀 더 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또…… 올게요.”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일말의 희망이 고개를 들었다.
복귀해서 복귀신고를 하며 내무반에 들어서자, 다들 난리였다. 어디서 저렇게 예쁜 여자를 꼬였냐는 둥, 그런 여자가 널 뭘 보고 면회까지 오느냐는 둥, 감당하기 벅차면 자기한테 넘기라는 둥 수많은 말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애초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웨이터 출신의 후임병은 어두운 낯빛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세면을 하고 들어오는데, 녀석이 귓속말을 속삭였다.
“담배나 한 대 피우러 가지 말입니다.”
그러나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워 문 녀석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다 겨우 긴 한숨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제가 하는 말 오해하시지 마십시오. 이건 제 감으로 드리는 말씀이지만, 솔직히 저는 그 여자 안 만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녀석은 다시금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뒤통수를 치며 무슨 소리냐고 웃으며 물어봤지만, 녀석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신기(神氣)가 좀 있었거든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감이 옵니다. 정말 99프로는 적중합니다. 그래서 여자 꼬시기도 참 좋지 말입니다. 얼굴만 봐도 얘는 좀 헤픈 애다, 얘는 좀 반항할 애다, 하는 감이 오거든 말입니다. 정말입니다. 얼굴만 봐도 사람 파악이 대충은 됩니다. 얘는 성깔이 좆같은 년이다, 얘는 졸라 착한 애다, 하는 감이 있습니다. 근데…… 아까 그 여자를 면회실 창 너머에서 봤는데 말입니다.”
녀석은 또 말을 끊었다. 부대 근방의 야산에서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바람이 찼다.
“그 여자…… 정말 아닙니다. 살기(殺氣)가 느껴진다 이겁니다. 제가 윤명열 병장님 연애 잘 되는 게 배 아파서가 아니라, 윤명열 병장님을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이니까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정말입니다. 그럼 전 점호 청소하러 들어가 보겠습니다.”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돌아서는 녀석의 뒷모습에서는 찬바람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영문 모를 오한으로 몸이 떨려왔다.
그 날도 어김없이 열 시에 취침나팔이 불었다. 이제는 아늑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친숙해진 침낭 속에 몸을 뉘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침낭 윗부분의 기름때도 유난히 신경이 쓰였다. 그녀와의 꿈결같은 데이트보다 후임병 녀석의 귀띔이 더 큰 비중으로 머릿속을 맴돌며 잠을 방해했다. 어두운 취침등 아래 이미 소대원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내무실 습도를 보존하기 위해 물을 흥건히 뿌려둔 바닥을 조심스레 내딛는 불침번의 전투화발 소리만이 조용조용 질척거렸다. 불침번 초번초가 이번초로 바뀌고 나서도 잠은 오지 않았다. 건너 침상에서 누군가 코를 골았고, 불침번이 조용히 그의 베개를 들썩여 주었다. 내무실 너머 행정반에서는 이따금 따라라락 군용전화기가 울리고, 통신보안 13중대 아무갭니다,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뒤척일 때마다 버석대는 군용 베개가 거추장스러워 나는 아예 베개를 발끝으로 던져 버리고,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모로 누워 있다가 몸을 바로 한 후에야 잠이 온다 싶었는데, 갑자기 양 옆구리에서 이상한 한기가 느껴졌다.
침상 속에서 뭔가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느다란 실들이었다. 한 두 올이 아니라, 수십 수백이었다. 시커먼 실들은 침상을 뚫고 순식간에 자라나 내 몸뚱이를 휘감기 시작했다. 나는 소인국에 밀려온 걸리버처럼 내 몸을 옭아매는 실들에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있었다. 꼼짝할 수가 없었다. 실들은 서서히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실에 침낭이 베이고, 주황색 활동복이 베였다. 이내 실들은 내 몸 속을 파고들었다. 내 몸을 압박하는 실들에 피부가 베이고, 베인 자리마다 피가 배어져 나왔다. 실들은 지옥에서 기어 나온 갈퀴손처럼 나의 몸을 쑤욱 끌어당겼다. 침상 밑으로 아가리를 벌린 연옥(煉獄)의 불길 속으로 서서히 몸이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불침번이 물통에 물을 길어다 내무실 바닥에 뿌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침번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몸은 이미 석고상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저 정신박약아의 그것 같은 신음소리만이 겨우 입 밖으로 흘러나올 뿐이었다.
“으어어어…….”
다행히 그 소리를 들은 불침번이 내 어깨를 흔들며 깨운 후에야 비로소 내 몸을 옭아맸던 실들이 후드득 끊어지며 자취를 감추었다.
입대 후 처음으로 겪은 가위눌림이었다.
5. 머리카락 (3)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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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처음부터 읽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영화 사이트에서 소설 연재를 보는게 신기해요 *_*
한동안 꾸준히...??? ^ ^;; 읽다가 며칠전 부터 다시 보고 있어요...항상 재미있게 읽고 이자정 님의 일러스트도 멋지네요...수고 하세요..
다음편은 언제 나오는 겁니까? 미치도록 기다려집니다..^^
첫화부터 보고있는데 드디어 머리카락 2화가 나왔군요!
단편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도 전혀 손색없는 작품입니다!
와우 첨부터 보고 있는데
넘 잼있어서 댓글 안 남길 수가 없네요...
한번 읽으니까 놓을 수가 없었어요.. 무서운 거 잘 못 보는데 ^^;;;
다음껀 언제 나오나요??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