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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황후, 사랑에 빠지다.

기원전 4세기 경. 전국시대의 칠웅 중 하나인 연은 조와 자웅을 겨루고 있었는데, 전투 도중 부상을 입은 연의 왕이 조카 우바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왕명에 따라 권력을 넘겨받은 대장군 설호가 나라의 안녕을 위해 연비아 공주를 후계자로 추대하자, 우바는 호시탐탐 모반을 꾀한다. 전사로 거듭나게 해줄 훈련에 임하던 연비아는 우바의 사주를 받은 암살단에 의해 쫓기다 난천이란 은둔자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그와 며칠을 보낸 뒤 연으로 돌아와 왕위에 오른 연비아는 권력보다 난천과의 사랑이 더 소중함을 깨닫는다.

때깔 좋은 중국판 시대극이 활황인 몇 년 사이, 그런 영화에 적격인 정소동이 무술감독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데 <영웅>, <연인>, <황후화>, <명장>의 뒤에서 일하던 그가 드디어 메가폰을 잡은 <연의 황후>는 예상 밖의 결과물이다. 남자들의 권력 다툼과 대규모 전투 장면보다 세 남녀의 사랑과 비극적인 드라마에 더 신경을 쓴 건 충분히 이해된다. 정소동 스스로 “판타지 멜로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액션을 섞어 근 10년간 사라졌던 액션판타지멜로에 대한 향수를 자극시키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거니와, 그가 만든 대표작의 매력은 상당 부분 ‘절대적인 사랑의 묘사’를 통해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연의 황후>에는 그의 장기인 ‘무협 판타지’가 이상할 정도로 드러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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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동의 대표작 <천녀유혼>과 <동방불패>가 왜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지 생각해보자. 거기에는, 겉으로 아름답고 안으로 개성이 가득한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동시대의 어떤 홍콩영화보다 강렬한 색체와 빛이 시각을 자극했으며, 어지간히 과장되었으나 그만큼 현실의 벽을 가볍게 무너뜨릴 수 있는 이야기가 존재했다. 어쩌면 작금의 중국 시대극이 정소동의 영화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인 거다. 하지만 정작 정소동이 새롭게 연출한 <연의 황후>는 평범함의 선을 좀체 넘지 않는다.

인물들에게 주어진 의상은 온통 단색이고, 웅장한 궁부터 은둔한 남자의 집에 이르기까지 울긋불긋한 채색을 입힌 건물이라곤 찾을 수 없다. 대다수 중국 시대극이 고증과는 전혀 상관없이 비현실적인 무대와 미술, 의상을 선보이는 데 치중하고 있는 현실과는 전혀 딴판인 것이다(재미있는 사실은 휘황찬란한 시대극의 대표적인 예인 <황후화>에서 촬영과 의상을 맡은 사람이 <연의 황후>에도 참여했다는 점이다). 무채색에 가까운 <연의 황후>의 분위기가 단순히 옛 시대의 고증을 따른 결과라고 보기는 힘들다. 여기에는 정소동의 어떤 의도가 반영된 듯하다.

<연의 황후>는 ‘버림’ 혹은 ‘포기’에 관한 영화다. 여자는 막강한 권력을 버리고, 남자는 검과 세상을 버리며, 다른 남자는 한 여자를 향해 품었던 사랑을 버린다. 정소동과 만난 가장 수수한 얼굴의 배우들- 진혜림, 여명, 견자단- 이 세속적인 욕망 너머 순수한 사랑의 열정을 연기하기 위해선 의상과 세트에 파묻혀선 안 될 일이었던 게다. 이러한 내 짐작에 맞게, 그들의 연기는 (다시 요즘의 중국영화들과 비교해) 거창하고 부풀려진 선을 넘는 경우가 드물다. 여왕이 평화를 선언하는 영화의 후반부는 중국영화 특유의 과장된 뻔뻔함으로 흐르지만, 그것이 웃음거리로 전락하지 않은 건 영화의 검소함 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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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동의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는 관객용으로 마련된 장면도 없지 않다. 그간 중국영화의 액션을 이끌어온 인물답게 정소동은 서양의 시대극에서나 보았던 장면들을 과감하게 도입한다는 전략을 세운다. 연비아가 무술을 연마하는 신에선 서양 중세풍의 마상 훈련을, 연과 조의 전투 장면에선 로마의 기마군단 같은 고대풍의 액션을, 그리고 두 연인의 꿈과 사랑을 매개하는 장치로 열기구를 고안해낸 점 등이 눈에 띈다.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고? 괜찮다. 대장군 홀로 수백 명의 군사에 맞서 투혼을 발휘하는 클라이맥스가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단단한 상체를 드러낸 견자단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창과 검을 휘두르는 장면은 옛 무협영화의 향수를 짧으나마 불러내고야 만다.

하지만 몇몇 인상적인 장면과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연도 <연의 황후>를 평작에서 구해내진 못한다. 영화는 세 사람의 슬픈 사랑이 빚어내는 비극적인 드라마를 생생하게 살리지 못하고, 세 사람의 로맨스와 권력 투쟁이라는 영화의 두 꼭지가 부조화 속에 뒤뚱거리는데다, 완급의 조절에 실패한 이야기 전개는 때때로 지루함을 동반한다. 쏟아져 나오는 중국 시대극의 지나친 포장이 느끼했던 관객 혹은 예전 홍콩영화의 향수를 조금이나마 맛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또 모를까, 그 밖의 사람에게는 떠밀면서 권하기가 힘든 영화다.

* 기록상으로 중국의 첫 황제는 진시황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황제로는 측천무후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연의 황후>에서 연의 왕을 황제로, 여왕을 황후로 표기하고 또 그렇게 부르는 건 틀린 것이다.

* 진혜림과 여명이 부른 주제곡 '隋夢而飛 (Flying with a Dream)'. 강추다.

* 시사회가 끝난 뒤 배우들의 인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자리를 먼저 떴던 나는 그들을 보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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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30 - [최신개봉작 / 예정작] - 연의 황후 - 江山美人 (2008) by 다크맨

Posted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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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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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대작이었는데..
    오랜만에 홍콩영화 하나 볼가 했더니만..
    큰 영화는 아무나 만드는게 아닌가 봅니다..
    삼국지나 봐야겠습니다

    • ibuti 2008/04/02 00:47

      어제 다른 기자분을 만났는데, 그 분은 마음에 들었다고 하더군요. 영화란 게 워낙 개인적인 거라...
      개봉 후에 다수의 평을 듣고 판단하시는 게 좀 더 공정할 거라고 봅니다. 조금 기다려주시길. 위의 글은 그냥 제 생각이에요.^^

  2. 隋夢而飛 (Flying with a Dream)

    방금 들어봤는데 좋네요^^ 덕분에 잘 들었습니다.

    • ibuti 2008/04/02 00:48

      그래요, 노래는 정말 좋더라구요. 중국노래를 잘 모르고 잘 듣는 편이 아닌데, 이건 CD 하나 구입하고 싶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