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테
내가 가장 먼저 본, 아내의 신체 부위는 머리카락이었다.
내가 가장 매력을 느낀, 아내의 신체 부위도 머리카락이었다.
그때 나는 병장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는 중이었고, 부대가 있는 경기도 적성의 객현리로 향하는 버스 안은 한산했다. 나는 뒤에서 첫 번째 좌석에 앉아 있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직장인들에게 월요병이란 게 있다면 현역군인에게는 ‘귀대병(歸隊病)’이라는 게 있었다. 게다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사귀어왔던 애인은 그 휴가를 끝으로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말이 좋아 이별을 고한 거지, 일방적으로 걷어찬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캠퍼스 커플이 되어 5년간이나 애인으로 지내온 사이였다.
“그전처럼 니가 좋지가 않아. 아니, 솔직히 점점 싫어지구 미워져. 그래서 더 싫어지구 미워지기 전에 여기서 헤어지는 게 서로를 위해 좋겠단 생각을 했어.”
휴가 나온 이튿날 커피숍에서 만난 애인은 내 앞에서 학위 논문을 발표하듯 담담하게 이별의 이유를 말했다. 그 담담한 얼굴 위로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던 그녀의 얼굴들이 스쳐지나갔다. 입학식 날 처음 본 화장기 없던 맨얼굴, 첫 키스를 하던 날의 발갛게 달뜬 얼굴, 그리고 처음으로 같이 자던 날 밤의 각오 어린 얼굴. 훈련소 때 고된 훈련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던 그 얼굴들이 눈앞의 담담한 얼굴 위에 겹쳐지려다가 곧 자리를 잃고 산산이 부서졌다.
“그래, 그랬구나. 니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뭐.”
나 역시 맥없이 이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탁자 위의 담배를 피워 무는 내 손가락은 행여 그녀가 눈치 채지는 않을까 눈치가 보일 만큼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두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오래 사귄 여자가 갑자기 니가 예전처럼 좋지 않다, 싫어졌다, 어쩌구 하면서 헤어지자구 그런다, 그거 다 개소리야. 내가 상병 때까지 사귀던 년이 잘 지내다 갑자기 내용도 없는 편지를 한 통 보냈어. 편지 봉투 속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 아냐? 사진 한 장 딸랑 들어있더라. 보니까 그 년이 전신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어떻게 하구 찍었는지 아냐? 신발을 거꾸로 신구 있어, 그년이. 씨부랄! 전화 걸어서 물어봤지, 딴 놈 생겼냐구. 아니래. 죽어두 아니래. 그냥 나 기다리기가 너무 힘들어서, 헤어지는 게 낫겠단 생각했대. 그 년 친구 중에 내가 잘 아는 애가 있거든. 걔한테 전화 걸어서 물어봤지. 이런 부탁하는 거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솔직히 걔 딴 남자 생겼지?, 목소리 딱 깔고 물어보니까 몇 번 빼드니, 그렇대. 웃기는 게 뭔지 아냐? 그 년이 동사무소에서 알바를 했었는데, 거기서 일하는 공익이랑 눈이 맞았댄다. 사람 미치지, 씨부랄! 그게 군 생활하면서 가장 좆같았던 기억이다.”
일병 때 같이 탄약고 근무를 서던 분대장이 어느 눈 내리던 새벽에 해주었던 연애 실패담이 휴가 내내 귓가를 맴돌며 떨쳐지지 않았다. 폭음과 속 쓰림으로 점철된 열흘간의 휴가를 마치고 귀대할 즈음에는 5년간의 연애를 접고 난 후의 미련이 숙취와 함께 남아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녀가 버스에 오른 것은 부대 앞을 몇 정거장 앞두고서였다.
사실 그때 내가 본 것은 그녀라기보다는 그녀의 머리카락이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오로지 그녀의 머리카락이었다. 어둑어둑한 저녁이었고, 버스 안은 실내등이 켜져 있긴 했지만 어두웠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카락은 또렷한 질감과 양감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긴 생머리였다. 그녀는 버스 요금을 내느라, 앞 차창 쪽을 향해 서 있었다. 버스 운전기사의 옆 차창이 열려 있는 탓에 버스 안으로 들어온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훑고 지나갔다.
버스에 오른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았을 때부터 이미 나의 심장은 본래의 맥박에서 두 배 이상 빠르게 박동하고 있었다. 간사해라, 사람의 마음이란. 그녀의 머리카락의 흩날림에 따라 헤어진 애인에 대한 미련과 숙취는 물줄기에 헹구어지는 샴푸거품처럼 씻겨 날아갔다.
내 앞에 앉아라. 내 앞에 앉아라.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향해 중얼거렸다. 중학교 때 무명 출판사에서 쏟아져 나오던 각종 미스터리며, 심령 백과사전 같은 책에 심취해 있을 때 염력과 관련된 글을 읽고 난 후로 나도 모르게 굳어진 버릇이었다. 이를테면, 기다리는 버스가 늦어질 때 버스가 나타날 모퉁이를 향해, 나와라, 나와라, 주문을 걸거나, 훈련 후 대대원들이 모인 연병장에서 지원장교가 볼펜과 수첩을 들고 다니며 포상휴가 보낼 사병을 선발해 수첩에 소속과 관등성명을 적고 다닐 때 지원장교를 향해, 내 앞에 멈춰서라, 내 앞에 멈춰서 소속과 관등성명을 물어라, 속으로 중얼대는 식이었다. 물론 내게 사람이나 사물을 조정할만한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을 리 만무했기에 대부분의 경우 그런 주문이 실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뭔가를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얘기를 신뢰하기에는 내 맘대로 되는 게 너무 없었다.
그러나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그 날은 달랐다.
그녀는 버스 앞 쪽를 선호하는 여느 여자들과는 달리 버스 뒤쪽으로 걸어와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내 앞의 좌석에 주저 없이 앉았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모자를 한번 눌러썼다. 긴장했을 때 취하는, 이등병 때부터 생긴 습관이었다.
지척에서 본 그녀의 머리카락은 더 매력적이었다.
솔직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잦은 염색과 드라이로 머리칼 끄트머리가 손상되어 있기 일쑤이거나 형형색색으로 염색되어 있는 여느 여자들의, 들쑤셔진 머릿결과는 달랐다. 염색기가 전혀 없는 흑발이었는데,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마치 개개의 생명체처럼 말간 윤기를 퉁겨내며, 살짝 열려진 차창으로 새어드는 바람에 하늘거렸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차분하게 조화를 이루어 그 머리카락들의 하늘거림이 오르페우스의 하프 연주로 느껴질 정도였다. 머리카락들의 하늘거림의 결을 따라 옅은 향기에 가까운 체취가 내 얼굴에 스며들었고, 내 온몸의 신경들은 물속에 풀어 헤쳐지는 녹말가루처럼 스르르 녹아 내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비듬이나 머리냄새, 각종 두피질환, 모발손상 따위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존재하는 천상의 그것이었다. 이제까지 보아온 그 어떤 샴푸광고 모델의 머릿결보다도 더 눈부셨다. 각종 인공물질을 발라 모발에 인공적인 윤기를 낸 그런 머릿결들은 그녀의 머릿결에 비하면, 하수구 거름망에 끼인 머리카락 무더기에 불과했다.
내가 원래부터 여자의 머리카락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었던가. 그건 아니었다. 물론 머리카락에 민감한 편이기는 했다. 솔직히 밝히기는 좀 뭣하지만, 우리 집은 대머리 가문이었다. 친할아버지부터 외할아버지, 큰아버지,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대머리였다. 그 위쪽의 가계로 올라가 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일가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쓰고 와야 한다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꽤 자존심 상하는 농담을 예사로 주고받곤 했다. 흔히 대머리의 원인이 되는 남성형 탈모증은 유전이 원인이다. 따라서 나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갓 스물이 넘어서부터 눈에 띄게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고 나면 한 움큼씩 빠져나가서 다시 자라나지 않았다. 대머리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대머리가 되지 않는 방법은 청소년이 되기 이전에 거세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나는 대머리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거세는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방법이란 다른 대머리들처럼 대머리라는 걸 보란 듯이 드러내고 다니거나, 대머리라는 사실을 극구 감추고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후자의 방법을 택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모자를 쓴 채로 보냈다. 애인을 사귀면서도 가장 힘들었던 게 바로 내가 대머리라는 사실을 감추는 것이었다. 여자들은 돈이 없는 건 용납해도 대머리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아버지로부터 누누이 들어온 터였다. 군에 입대하면서 탈모는 더더욱 박차를 가해 진행되었다. 군인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상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짧게 자를 수밖에 없었는데, 그로 인해 완연한 대머리 티가 나는 머리를 만천하에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군인이 군생활의 대부분을 전투모와 철모를 쓰고 보낸다는 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사정이 그렇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여자의 머리카락에 주물숭배 같은 집착을 하는 건 아니었다. 대학 친구 중에 검정 스타킹을 신은 여자의 다리만 보면 성욕을 주체할 수 없다는 자칭 ‘스타킹 매니아’가 있었다. 동아리 MT 때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은 진실게임에서 남자의 손등에 불거진 핏줄들을 보면 성적인 흥분을 느낀다고 고백했던 동아리 후배 여자애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느낀 건, 그런 정신분석학에서 가리키는 페티시즘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며 신경들이 녹아내리는 이완을 경험했지, 말초신경들이 바짝 긴장하는 성적 흥분을 느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버스가 객현리와 가까워질수록 나는 초조함을 느꼈다.
이 순간을 놓치면 영영 다시 그녀의 머리카락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하튼 나는 현역군인이었고, 여덟 시까지는 부대에 복귀해야 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일곱 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부대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걸어가면 여덟 시 직전에 위병소를 통과할 수 있을 시간이었다. 나는 전투모를 매만지다 다시금 눌러썼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가 버스에서 내릴 때 따라 내리고 싶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버스에서 마주친 여자를 따라 내려 집까지 쫓아갔다가 퇴짜를 맞았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철없던 시절, 외모에 이끌려 여자를 쫓아가는 치기 때문에 그녀를 쫓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아니었다. 그저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고,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버스가 객현리 부대 앞을 지나칠 때 일어서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한시바삐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빌었다. 버스는 내가 알지 못하는 시골 국도를 질주하며 부대로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마침내 그녀가 일어선 것은 객현리에서 버스로 십 분은 족히 지나친 어느 마을 앞이었다. 나도 그녀를 따라 일어섰고, 버스는 그녀와 나를 내려놓자마자 관장을 한 변비 환자처럼 황급히 사라져갔다.
그녀는 마을 어귀에 난 길로 걸어 들어갔고, 나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내가 뒤를 쫓는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았다. 사방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어디선가 풀벌레가 울어댔다. 마을 어귀에서도 한참 들어간 폐가에 가까운 허름한 집 앞에 이르자, 그녀는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나는 황급히 그녀를 붙들었다.
“저기요.”
그러나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얼결에 손을 뻗었고, 내 손끝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닿았던 그 순간, 그녀가 뿜어대는 맹렬한 적의(敵意)를 느꼈다. 손끝이 따끔했다. 정전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오그리며 흠칫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녀가 홱 돌아서서 나를 노려보았다.
“무슨 일이시죠?”
얼음가루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들만큼 날이 선 말투였다. 나는 잠시 그녀를 쫓아온 걸 후회했다. 하지만 캄캄한 저녁 인적도 없는 시골에서 뒤를 따라와 머리카락을 건드리는 낯모르는 남자에게 호의를 보이는 여자가 있을 리도 없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저…… 딴 뜻은 없습니다. 그냥 저도 모르게 따라왔습니다.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그저 한번쯤…… 마, 말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군대에서 사용하는 ‘~ㅂ니다’ 식의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 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비로소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한 번 픽 흘렸다.
“부대…… 들어가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많이 누그러든 말투였다. 오그라들었던 마음이 비로소 한숨을 내쉬며 풀어졌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여덟 시를 지나고 있었다. ‘군장 뺑뺑이’를 돌게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저……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부대가 어디신데요?”
나는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어 소속과 관등성명을 적어주려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볼펜이 없었다. 건빵주머니며 뒷주머니를 뒤적이던 중, 내 눈앞에 하얀 볼펜이 내밀어졌다. 나는 볼펜을 받아들고, 떨리는 손으로 내 소속과 관등성명을 적었다. 그리고 적은 면을 찢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종이를 받아드는 그녀에게 나는 엉뚱하게도 관등성명을 소리 내어 복창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돌아서서 뛰어가는 걸음은 여느 휴가 복귀 때처럼 무겁지는 않았다.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남성 직업 2위가 군인이고, 1위가 민간인이라는, 군인 된 처지를 자학하는 우스갯소리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를 다시 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 확신은 들어맞았다.
한데 좀 의아했던 건 다음 날 휴가복귀지연을 이유로 군장 뺑뺑이를 돌던 중 발견한 내 손가락이었다. 자꾸 날카로운 쓰라림이 느껴져 살펴보니, 손가락 끝에 칼로 베인 듯한 상처가 입을 벌리고 나 있었다.
5. 머리카락 (2)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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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도 재미있네요...ㅎㅎ
몸은 책으로도 가지고 있었는데
친구 빌려줬다가 잊어먹었어요.. 흑
나쁜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