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성숙해진 마이클 무어
원래 <식코>의 리뷰는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미국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마이클 무어의 이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면 그에 걸맞은 전문지식을 먼저 갖추어야 하죠. 전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충분한지, 얼마나 객관적인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식코>는 지금까지 나온 마이클 무어의 작품들 중 가장 '성숙한' 영화입니다. 그건 마이클 무어가 그동안 더 성숙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전술을 바꾼 것이죠. 무어는 이 영화에서 비교적 덜 등장하고 장난도 덜 치며 특유의 논리적 도약도 삼가는 편입니다. 다시 말해 '마이클 무어'다움을 어느 정도 포기했다는 거죠.
그러나 그 정도는 상대적입니다. <식코>는 여전히 무어의 영화죠. 객관적인 정보보다 메시지가 더 중요하고 정치적이며 익살스럽습니다. 영화 내내 참고 억누르던 마이클 무어식 해프닝도 결국 후반엔 터져 나옵니다. 그는 9/11 구조작업에 참여했지만 보상을 거부당한 민간인들을 데리고 관타나모 기지까지 가서 그 곳에 구금되어 있는 테러리스트만큼만 치료해달라고 농성을 합니다. 물론 그건 당연히 먹히지 않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그는 그들을 쿠바로 데려가 그곳에서 치료를 받게 합니다.
영화가 가장 힘을 받는 부분은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피해자들을 다룬 전반부입니다. 무어는 여기서 자신을 될 수 있는 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데, 그건 그냥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적절하게 선정된 사례를 열거하고 사실을 기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관객들이 공포에 질리고 혐오감을 느끼기만 해도 충분히 성공한 것입니다. 그건 그들이 사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요.
무어가 직접 등장하고 캐나다, 영국, 프랑스, 쿠바의 의료제도를 소개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중반부는 앞부분만한 힘이 없습니다. 세부정보가 제거되고 시스템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되기 때문에 오히려 의심스럽게 보이는 거죠. 솔직히 방향이 뒤집혀진 정권 홍보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처럼 자국의 정권홍보물에 내성이 되어 있는 관객들은 냉소적이 될 수밖에 없죠. 미국관객들은 사정이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하지만 처음부터 무어가 정보전달을 목표로 이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니, 그 정도는 이해해도 될 듯 합니다. 세계의 의료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마이클 무어의 영화보다 더 좋은 소스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식코>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 직접 정보를 수집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진짜 목표죠. 마이클 무어가 '진리의 제공자' 따위가 아니라는 건 오히려 이 영화에선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의 논쟁적인 위치 덕택에 관객들은 더 능동적이 됩니다. (08/03/25)
기타등등
Moorewatch 사이트는 지금 상태가 좀 괴상하군요. 그래도 영화 후반에 언급된 모 사건에 대한 사이트 주인장의 입장은 여기서 읽을 수 있습니다. 참 못됐어요, 무어라는 인간은.
2008/03/27 - [최신개봉작 / 예정작] - 식코 - Sicko (2007) by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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