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정답게
피오나와 그랜트 앤더슨 부부는 44년을 함께 살아왔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기억을 하나씩 잃어가는 피오나는 그랜트에게 요양시설로 들어가겠다고 말한다. 요양시설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그랜트는 그녀의 고집 끝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요양시설의 규칙에 따라 한 달간의 적응기간 후 피오나를 찾은 그랜트는 그녀 곁에 앉아 있는 다른 남자, 오브리를 보게 된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이 이별에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비슷한 두 주인공이 나오는 <아이리스> 때도 그랬다. <어웨이 프롬 허>의 피오나와 그랜트는 <아이리스>의 실존인물인 아이리스 머독과 존 베일리처럼 고상한 노후를 즐기던 부부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큼 다가온 슬픔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진다. 한데, 기본적으로 한 남자의 회고록을 따른 <아이리스>는 두 사람의 기억과 사랑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 작품이며, 요양시설에 관한 부분은 영화의 극히 일부분만 차지한다. <어웨이 프롬 허>는 한 여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에 처한 한 남자의 고통과 이후의 여파에 초점을 맞춘다.
그랜트는 혼란스럽다. 누군가를 떠나보낼 연습을 하기가 버거운 판에, 그 누군가의 곁에 있는 다른 사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중의 고통이다. 두 사람을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랜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의 혼란은 관객의 것이기도 하다. 그랜트의 생각처럼 피오나가 그의 과거에 벌을 주는 것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피오나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관객 또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랜트를 떠나보내기 위한 연습일까, 아니면 환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런 친밀감일까. 그녀의 신비스러운 눈동자와 아이처럼 순수한 행동은 어렴풋한 답조차 들려주질 않는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어웨이 프롬 허>는 두 노인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다. 그런데 <어웨이 프롬 허>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가본다. 피오나 곁에 오브리를 배치했던 영화는 그랜트 곁으로 오브리의 부인 마리안을 배치한다. 그렇다고 복잡한 애정 곡선을 예상하지는 말 것.
<어웨이 프롬 허>의 그랜트와 <아이리스>의 존은 미래가 과거와 같기를 희망한다. 그녀와 보냈던 평범한 시간들이 미래에도 펼쳐지길 바란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이 자기 부인에게 충실했다고, 그들의 과거가 줄곧 행복했다고 착각한다. <어웨이 프롬 허>에서 한 여자가 그랜트에게 말하는 것에 따르면, 큰 불행 앞에서 남자들은 아내와의 과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만 생각한단다. 예전의 문제들은 모두 사라지고 즐거웠던 시간만 되풀이되길 기대하는 건 무슨 헛된 욕심이란 말인가. 망각이 시작된 피오나는 그랜트가 지금까지 곁을 지켜주었음에 고마워하면서도 과거에 그가 저지른 행동 - 불륜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가. 게다가 지금, 그랜트는 새로운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다.
<어웨이 프롬 허>의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노래는 닐 영의 <Helpless>다(유명한 C,S,N & Y의 버전이 아닌 K.D.랭의 것을 사용했다). 은퇴한 그랜트는 피오나와의 평온한 노후생활 외에는 별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허나 그가 오래 전 어린 여학생과 사랑을 나눌 때 그랬듯이, 그는 새로운 선택과 아내에 대한 충실한 감정 사이에서 어디론가 발을 내딛어야만 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쉽게 풀 수 없는 문제란 있는 법이고, 홀로 답을 구해야 하는 인간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결혼 서약을 하는 부부는 ‘정답게 둘이서’ 살아가길 꿈꾼다. 그러나 인생은 꿈대로 전개되지 않는 법이다.
원작소설을 읽지 않아서 영화와 원작의 결말이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채 서른이 안 된 사라 폴리가 노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이해하는 척하는 영화를 만들지 않아서 믿음이 더 간다. 사라 폴리는 세상이 궁금하다는 듯이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던 소녀였다. 그녀의 데뷔작은 그 눈동자에 어울린다. <어웨이 프롬 허>는 삶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다. 그러나 사랑과 삶을 의심하지는 않는 영화다.
* 사라 폴리와 함께 몇 편의 걸작을 만든 바 있는 아톰 에고이앙이 <어웨이 프롬 허>의 총제작을 맡아주었다.
* 줄리 크리스티는 <달링>(1965)의 그녀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아카데미에서 수상하지 못한 게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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