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재와 매력 넘치는 배우들
장르 작가들이 비장르소설로 베스트셀러를 내고 인기작가가 되면 좀 실망스럽죠. <제인 오스틴 북클럽>도 그런 구석이 있습니다. 카렌 조이 파울러가 늘 SF와 판타지만 썼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작가의 유일한 비장르 장편소설이 대표작처럼 취급받는 건 좀 그렇네요. 그 소설이 제인 오스틴의 인기에 편승한다는 다소 기회주의적인 아이디어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고. 적어도 전 그렇습니다. 전 이 소설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아요.
하여간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제인 오스틴 북 클럽 회원들입니다. 여자 다섯, 남자 한 명으로 구성된 북 클럽 회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제인 오스틴이 쓴 여섯 권의 소설들을 읽고 모여서 토론을 하는 거죠. 이들은 모두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에 나올 법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모두 그들이 책을 한 권씩 넘길 때마다 구체화됩니다. 두 책 모두 내용은 비슷해요. 영화는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프롤로그 부분을 덧붙이고 있는데, 거기 나오는 이야기도 다 책에 나왔던 거죠.
<제인 오스틴 북클럽>은 따뜻하고 기분좋은 영화입니다. 백 여 년 전에 죽은 영국 작가의 책을 읽는 북 클럽이라는 설정 자체가 그렇죠. 낡고 고리타분한 것 같지만 그만큼이나 문명적이고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들이 현대 사회의 험악한 환경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이 아직도 이들 모두에게 적합한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여전히 매력적이죠.
소설과 영화를 비교한다면, 영화 쪽이 소설의 매력을 많이 놓치고 있습니다. 사실 북클럽 회원들의 고민들은 그 자체만 따진다면 그렇게 재미있지 않죠. 부모의 죽음, 애인과의 갈등, 배우자의 불륜과 같은 것들은 흔해 빠졌으니까. 소설의 재미는 이 평범한 삶의 조각들을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연결시켜 고민해보는 것인데, 극장용 영화는 이 재미를 많이 놓칠 수밖에 없어요. 서술 과정 자체가 대부분 삭제되고 요약된 사건들만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말이 지나치게 타협적이고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죠. 하긴 다니엘은 원작가가 추가한 디테일을 추가해도 여전히 못난 남자지만요.
그 자체로 재미있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전 여전히 조슬린과 유일한 남자 멤버인 그릭의 연애담을 좋아해요. 제인 오스틴 팬인 여자와 어슐러 르 귄 팬인 남자가 밀고 당기면서 연애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차라리 클럽을 무시하고 두 사람만 주인공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하죠. 작품의 길이와 내용을 생각해보면, 영화 쪽이 그 가능성을 더 잘 살렸을 것 같아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배우들입니다. 캐시 베이커와 같은 노련한 전문 배우들과 에밀리 블런트 같은 반짝거리는 신인들이 그럴싸하게 캐스팅되어 편안한 조화를 이루고 있지요. 영화로 옮겨지면서 얄팍해진 캐릭터들이 어느 정도 살아남는 것도 배우들 덕택입니다. 이들은 모두 각본상의 캐릭터들보다 더 매력적이에요. (08/03/21)
기타등등
카렌 조이 파울러의 신작 <Wit's End>가 4월에 나온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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