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귀 (완결)
여자는 재빨리 카오디오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카오디오 속에 들어 있던 CD가 재생되자, 거친 음질과 잡음 속에서 목 쉰 노파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무슨 주문 같기도 하고, 타령조의 노래 같기도 하다. 한데 가사를 도무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이세요.”
놀랍다. 놈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먹이를 노리던 육식동물이 자기보다 더 강한 놈이 나타났을 때 머뭇거리듯 자동차를 맹렬한 기세로 뒤쫓던 놈들에게서 혼란이 인다. 여자가 카오디오의 볼륨을 최대치로 높이고 차창을 내린다. 차안을 가득 메운 노파의 목소리가 차창 밖으로 흘러나가자, 놈들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경계하는 듯 물러났다가 다가서기를 반복한다. 확실히 효과가 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머뭇머뭇 달려들던 놈들이 서서히 도로 너머로 멀어져간다. 그리고 완전히 사그라진다. 살았다. 나는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
“효과가 오래 가진 못해요. 그냥 겁만 주는 정도니까…….”
여자는 일상생활에서 ‘점심 먹은 게 소화가 안 되네요’라든가, ‘자고 일어나니 눈이 부었더라고요’라고 말하는 투로 덤덤하게 말한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한다 한들 어떤가. 잠시라도 놈들이 내 주변에서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놈들이 주위를 맴돈 후로 내 삶은 그저 한 순간 한 순간의 연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시쳇말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죽는 게 나은 삶에서 상대성은 찰나의 시간을 영원처럼 길게 늘인다. 내가 사내를 만나고 놈들의 존재를 알게 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시간은 어쩌면 불과 한 달 정도밖에 안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할머니는 무당이셨어요. 근방에서는 아주 영험하기로 유명했죠. 저보다 먼저 그것들의 존재를 아셨고요.”
여자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자못 진실하게 들린다. 여자가 차라리 정신병원의 주치의를 한다면 치료효과가 뛰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들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후 구천을 맴도는 원한령(怨恨靈)들이에요. 일말의 형태라도 있는 다른 놈들과 달리 소리로 존재한다는 게 좀 희한하죠. 놈들이 내는 소리는 제가 죽는 순간 들었던 소리들이에요. 원한령들 중에서도 악질이라 일단 놈들의 표적이 되면 누구든 죽게 되어 있어요. 싸구려 납량특집물에나 나올 법한 얘기지만 어쨌든 사실이죠.”
그리고 여자는 계기판 앞에 놓인 담배를 꺼내어 물고 달구어진 시거 잭으로 불을 붙인다.
“한 대 피울래요?”
여자가 립스틱 자국이 선명한 담배를 아무렇지 않게 내민다. 나는 그 담배를 입에 물고 폐부 깊숙이 빨아들인다. 폐 속으로 파고드는 담배연기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여자의 도톰한 입술을 빨아들여도 이렇게 달콤할까. 불순한 욕망이 고개를 든다. 곁눈질로 훑은 여자의 몸매는 매혹적이다. 뇌 속의 혈관이 오므라들며 긴장이 나른하게 풀어졌기 때문일까. 졸음이 밀려들며 아랫도리가 뿌듯해진다. 놈들이 들리기 시작한 후로 제대로 된 잠을 이룬 적이 없다. 사내를 만난 그날처럼 눈이 뻑뻑하다. 그 와중에도 운전하는 여자의 모습은 묘하게 자극적이다. 나는 여자의 앙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어린애처럼 잠들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애써 누른다.
“제 경우는 그것들이 들리기 시작한 게 일곱 살 밖에 안 되었을 때였어요. 광주항쟁 때 제 오빠가 군인들의 곤봉에 맞아 머리가 터져 죽었거든요. 그 날부터 며칠을 끙끙 앓았는데, 갑자기 그것들이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때 할머니가 저를 보시더니, 그러셨어요. 우리 애기한테 순 악질들이 들러붙은 게로구나.”
차창을 내리고 여자는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몇 번이고 굿을 하고, 별의별 애를 썼지만, 그것들은 저 대신 할머니를 데리고 간 후에야 저를 놓아주었죠. 근데 그것들이 들리는 사람들이 또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여자는 교외를 달려 고즈넉한 변두리의 별장으로 차를 몬다.
“머리가 복잡할 때 가끔 들러서 쉬다 가는 곳이에요.”
차에서 내린 나는 별장의 휘황찬란함에 입을 떡 벌린다. 불현듯 나는 어둠 너머를 돌아본다. 아무런 낌새도 없다. 이대로 놈들이 영영 사라져 버린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집처럼 편히 생각하세요.”
별장 현관에서 머뭇거리던 나를 안으로 이끌며 여자는 말한다. 인테리어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별장의 내부 장식은 고급이다. 벽난로와 샹들리에, 막눈으로는 진위를 구별할 수 없는 유명 화가의 그림들과 초대형 벽걸이 티브이, 양탄자가 깔린 바닥과 은은한 향이 맴도는 공기에 이르기까지 별장 내부는 세밀하게 공을 들이고 관리한 흔적이 역력하다.
“욕실은 저쪽이에요. 일단 먼저 깨끗이 씻고 나오세요.”
먼저? 처음으로 밤을 보내던 날 아내도 비슷한 말을 했다. 오빠가 먼저 씻어. 여자가 한 말의 묘한 느낌은 식어가던 욕망에 불을 붙인다. 욕실은 드넓고 욕조에는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채 찰랑거리고 있다. 샤워를 하고 욕조에 몸을 담그는 순간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게 바로 살맛이다. 놈들을 알게 된 후로 잊고 있었던 살맛. 머리를 감고 면도를 한다. 욕실 안에는 면도기부터 목욕 가운에 이르기까지 목욕에 필요한 모든 용품이 정갈하게 구비되어 있다. 나는 알몸에 목욕 가운만을 걸치고 욕실을 나온다. 달리 입을 게 없다.
“그렇게 씻으니까 몰라보겠어요. 쌈박한 걸요?”
그렇게 말하고 여자는 싱긋 웃는다. 미소가 맑디맑다. 나는 얼굴이 달아올라서 얼른 고개를 돌린다. 여자의 눈빛에 어리는 욕망의 그림자를 본 듯도 하다.
“급한 대로 식사를 준비해 두었어요. 식기 전에 들어요.”
여자가 이끄는 대로 주방에 가보니 새하얀 식탁보가 덮인 식탁 가운데에 촛불이 밝혀져 있고 스테이크와 와인을 비롯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향긋한 음식 냄새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나는 식탁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미친 듯이 음식들을 해치운다.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자 혀가 살살 녹는 듯한 행복감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는 준비된 음식들을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다.
“천천히 들어요. 시간은 많으니까.”
여자의 그 말에도 묘한 느낌이 든다. 나와 밤을 보내고 싶다는 유혹일까. 여자의 촉촉한 눈빛을 보는 순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식사가 끝난 후 나는 엘라 핏체랄드의 음악이 흐르는 별장의 바에서 그녀와 마주 앉아 와인을 마신다.
“샤토 무통로칠드란 와인이에요. 프랑스 보르도 메독에서 나는 최고급이죠. 맛 좋죠?”
나는 감격에 차 고개를 끄덕인다. 이게 죽음 직전의 환상은 아닐까. 어쨌든 상관없다. 세상에 천국이 있다면 바로 여기일 것이며,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바로 여자일 것이다.
“초면에 이런 대접, 이런 분위기……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진 말아 주세요. 그냥 오래된 동지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남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나만의 고통이라 생각했던 걸 또 겪고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동질감 같은 거…….”
여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가슴에 무엇보다 강한 진정제의 분말처럼 녹아든다.
“안쓰러워요. 당신의 초췌한 얼굴…….”
여자는 눈물을 글썽인다.
“당신…… 우리 오빠를 닮았어요. 클래식 기타를 무척 잘 쳤었거든요. 로망스,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눈물이 고인 여자의 눈빛이 안쓰럽다. 여자의 눈물을 핥아주고 싶다.
“저…… 참 주책이죠? 혼자 북 치구 장구 치구…….”
아니라고, 그런 모습이 오히려 매력적이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까 당신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했죠. 그걸 알려드…….”
여자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충동적으로 달려든 내 입술이 여자의 입술을 덮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당황한 듯 몸이 경직되더니, 서서히 풀어진다.
침대 위에서 나는 엘라 핏체랄드의 노래를 들으며, 여자와 사랑을 나눈다. 여자는 수줍은 듯 물러났다가도 금세 달아올라 내 온몸을 연체동물처럼 휘감는다. 생생하게 되살아난 오감이 몸을 떨며 하나로 뒤엉킨다. 여자와 내가 하나로 뒤엉켜 올라 마침내 먼 허공에서 폭죽이 되어 떨어져 내린다.
여자는 나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있다. 땀으로 엉킨 머리카락이 뺨에 붙어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잠이 온다. 내 평생 가장 깊은 잠이 될 것이다.
“자요?”
여자가 묻는다. 아직 아니라고 대답하려는데, 이상하게도 입이 열리지 않는다.
“잠드는 게 좋을 거예요. 좀 고통스러울 테니까…….”
의아하다. 여자의 얼굴을 보니, 좀 전까지의 청초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여자의 얼굴에는 사악한 귀기마저 어려 있다.
“마취제를 약간 넣었어요, 와인에. 약효가 좀 느린 놈으로……. 미안해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저…… 이해해 줄 거죠?”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여자는 알몸으로 일어나 오디오로 다가간다. 나는 경직되는 몸뚱이를 움직여볼 생각도 못하고 호리병처럼 굴곡이 완벽한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만 본다. 여자는 엘라 핏체랄드의 노래를 끄고 시디를 바꾸어 재생 단추를 누른다. 아까 들었던 노파의 웅얼거림이 다시금 들려온다. 그리고 다시 들려온다, 별장 창문 너머에 잠복하고 있던 놈들의 진격이.
“참 아까 잘못 말한 게 있는데, 정정할게요. 사실 그것들이 저 대신 할머니를 데려가서 살아난 건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서 그것들을 떼어버리려면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죠. 그것들을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을 내 대신 그것들에게 바치는 거……. 일종의 인신공회죠.”
이제 몸이 완전히 마비되어 움직일 수가 없다.
창턱을 넘어 들어온 놈들은 아주 여유 있게, 나에게 다가온다. 이제 놈들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다.
“당신과 몸을 섞었으니 내 음기(陰氣)가 충분히 당신에게 전해졌을 거예요. 저것들이 당신을 나로 오인할 만큼. 어차피 죽을 당신이었으니, 당신의 희생으로 내 삶이 좀 더 연장되는 거에 기분 나빠하진 않을 거죠? 이번엔 또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여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제 놈들은 내 귀 바로 앞에까지 다가와 있다.
들린다, 지옥에서 기어 나온 귀(鬼)들이 내 귀를 향해 다가오는 소리가.
나는 두렵다. 나는 부디 당신이 놈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는 불운이 없이 평범하게 살다 평온히 땅에 묻히길 바랄 뿐이다. 놈들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고 나서 놈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말라는 자가당착을 용서하기 바란다. 나는 두렵다.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배어 나온다.
지금, 놈들이 내 귓속으로 들어왔다.
귀들이 고막을 찢는다. 아귀처럼 내 신경을 파고든 귀들이 내 머릿속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찢어발긴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폭죽이 터진다. 혈관이 부풀어 오른다. 나는 입을 쩍 벌린다.
마침내 내 머리는 산산이 터져 나간다. 만일 내가 놈들의 일원이 되어 소리를 낸다면 그 소리는 머리가 터지는 소리일 것이다.
5. 머리카락 (1)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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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의 공포소설 (http://cafe.naver.com/kimjon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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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완결이 올라왔네요
잘 읽었습니다..
참... 작가님 손톱 책 샀어요...
오늘 밤에 읽을려구요...
다른 단편들도 물론 흥미롭지만
이번 귀의 결말이 특히 재밌네요.
익숙한 전개이긴 하지만 토속적인 설정도 끼어 있어서
무척 신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