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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르르하고 얄팍한 시대극

<천일의 스캔들>은 우리가 잘 아는 헨리 8세와 앤 볼린 이야기입니다. <천일의 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필리파 그레고리의 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이 앤과 거의 같은 비중으로 메리 볼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거죠. 그레고리의 책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심지어 앤과 메리의 나이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죠. 요샌 메리가 앤의 언니라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은 모양입니다. 그런 원작을 다시 자유롭게 풀어 영화로 만든 영화이니, 역사적 정확성 따위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마시길.

영화 속에서 메리 볼린의 역할은? 원래 가문에서는 앤 볼린을 왕의 정부로 만들 계획이었는데, 그만 일이 틀어져서 왕은 막 결혼한 새색시인 메리에게 눈독을 들입니다. 왕비의 시녀가 된 메리는 왕의 사생아를 낳지만, 권력욕에 불타는 앤이 왕을 꼬시는 바람에 그만 버림을 받게 되지요. 메리를 밀쳐내고 왕비가 된 앤은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길을 걷습니다. 얼마나 사실이냐고요? 아까 역사적 정확성 따위는 기대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건들 상당수는 그냥 루멉니다. 그레고리는 적당히 작가로서의 자유를 활용한 것뿐이겠죠. (전 원작 안 읽었습니다. 읽으신 분들은 추가정보를 제공해주시길.)

근데 메리 볼린이라는 캐릭터를 도입한 것이 영화에 과연 도움이 될까요? 소설에서는 어땠는지 몰라도 영화에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차라리 메리 볼린만을 주인공으로 세웠다면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메리와 앤을 대립구도로 세우고 나니까 두 사람 다 얄팍해져버렸어요. 메리는 금발머리 천사/순교자고 앤은 이기적이고 교활한 빨간머리 여우죠. 두 사람이 서로의 대칭 이미지로 존재하기 때문에 고유의 캐릭터로 살아 숨쉬지 못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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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역시 정체됩니다. 메리와 앤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된다면 아무리 메리에 집중하려 해도 결국은 앤의 이야기에 쓸려갈 수밖에 없죠. 영화 후반은 그냥 메리가 조연으로 등장하는 앤 볼린의 이야기입니다. 단지 앤의 성격이 조금 더 얄팍해진 것뿐이죠.

캐스팅이 이상적인 영화라고도 못하겠습니다. 포트먼과 조핸슨은 모두 아름답고 재능있는 젊은 배우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상적인 사극 배우는 아니에요. 특히 포트먼은 튜더 왕조 시대에 휘말려 온 현대 미국 여성이라는 티가 너무 납니다. 하긴 다른 배우가 했어도 거의 미국 소프 오페라 수준인 캐릭터들 속에서 버텨내기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존엄성을 갖추고 퇴장한 캐릭터들은 단 두 명,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가 연기한 레이디 엘리자베스와 아나 토렌트가 연기한 아라곤의 캐서린 왕비예요. 제가 이 사람들 팬이라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정말 다른 캐릭터들에겐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요.

재미가 아주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요란하고 뻔뻔스러운 싸구려 소프 오페라의 재미를 안겨주죠. 그 정도면 페이스도 빠른 편이라 영화가 맘에 들지 않아도 지겹지는 않고. 샌디 파웰의 호사스러운 의상을 보는 재미도 있지요. 그러나 그 이상의 깊이를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천일의 스캔들>은 그냥 잡지화보처럼 번지르르하고 얄팍한 영화예요. (08/03/10)

기타등등

2004년에 나온 미니 시리즈 버전이 아직도 조금은 당깁니다. 일단 두 주연배우들의 캐스팅이 더 나아보이거든요.

Posted by DJUNA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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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천일의 스캔들: 왕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두자매의 암투이야기

    Tracked from Movie rewind 2008/03/19 15:00  삭제

    천일의 스캔들(The Other Boleyn Girl, 2008) 오랜만에 개봉되기 전에 시사용으로 온 필름을 모니터 하기 위해 혼자 장내에서 봤다. 밤새내린 눈 길에 내 발자국을 처음으로 찍는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 일반분들은 잘 못느끼실테지만 혼자서, 그것도 개봉전의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은 꽤나 상쾌하다. 스토리는... 금슬 좋던 영국의 헨리8세(에릭 바나)왕과 왕비, 왕권을 이을 아들을 사산하자 둘 사이엔 금이가고 그 틈을 노린 볼린가는 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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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극장서 예고편 볼때는 볼만한거 같았는데 아닌가 봐요.
    봄이 되니까 멜로물이 보고 싶어지는데.. 볼까 말까.. 고민이 살짝... ^^;

  2.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나오던 미드 '튜더스' 생각나던데
    그거랑은 또 다른 BBC드라마가 있나보네요.^^

  3. 그냥 저냥 볼만은 합니다
    볼거리도 풍부하구요
    싸구려 평만큼 엉성하지는 않습니다

  4. 전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책은 정말, 정말, 정말 재밌답니다.ㅋㅋㅋ책이 나왔을때 사서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고 또 읽었었죠.(한국에도 한국말로 책이 나왔나요?) 그리고 책은요...^^;; 거의 메리 이야기에요. 메리가 중심인물이고 앤은 그저 왕비가 됐기 때문에 이야기에 끊이지 않고 등장하죠. 게다가 끝부분 쯤에서는 메리의 아들까지 뺏어가 버리죠. 자기가 아들을 못 낳기 때문에 입양을 해요. 그러다가 엘리자베스를 임신하고 다시 돌려줬던 것 같네요.ㅋㅋ 영화 이야기들을 여기저기서 들어보니 책과는 내용이 많이 다른 듯 싶어 잠시 말을 꺼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