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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뒤틀린, 그러나 퓨어한 사랑

<도발적 관계: M>은 추리작가 하세 세이슈의 소설을 히로키 류이치가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꽤 지명도를 가진 작가이고, 감독이지만 국내에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하세 세이슈의 작품은 <불야성>만이 출간되었지만 현재는 절판 상태다. 히로키 류이치 역시 <바이브레이터>만 개봉을 했고, 작년에 열린 부천영화제에서는 회고전 형식으로 <바쿠시> <마왕가> 등을 상영했다. <바이브레이터>가 인상적이었다면, 히로키 류이치가 섬세하고 서정적인 감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고전에서 히로키 류이치의 다양한 작품을 접했다면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바이브레이터> <걸프렌드> 같은 여성적인 영화를 만드는 히로키 류이치는 어둡고 뒤틀린 사랑 또한 잘 그리는 감독이다.

또한 <도발적 관계: M>의 원작자 하세 세이슈는 일본 작가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고 폭력적인 세계를 그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불야성>은 신주쿠의 환락가 가부키쵸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중국인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국 마피아의 틈바구니에서 온갖 모략과 거짓말, 음모를 꾸며야만 한다. 정직, 의리, 진실 같은 것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이 세계는 정글보다도 폭력적이고, 악마보다도 사악한, 지옥도 그 자체다. 선한 영웅이 존재할 곳은 없다. 이 잔인한 폭력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인공 역시 ‘악당’으로서 살아가야만 한다.

영화로 만들어진 <도발적 관계: M> 역시 어두운 세계를 보여준다. 평범한 가정주부 사토코는 만남 사이트를 통해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하필이면 그는 야쿠자였고, 누드 사진을 찍어 약점을 쥔 그는 사토코에게 매춘을 강요한다. 언젠가부터 아내의 행동에서 미묘한 변화를 느낀 남편은, 우연히 인터넷에서 아내의 누드 사진을 보게 된다. 그들의 관계는 뒤틀리기 시작하지만, 기이하게도 욕망은 점점 상승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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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어린 시절 폭력의 상처를 지니고 있던 신문배달 청년은 사토코에게 연정을 느껴 그녀의 은밀한 사생활을 추적한다. <도발적 관계: M>은 제목 그대로 남녀의 도발적인 관계를 드러낸다. 그들은 결코 일상적인 관계가 아니다.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 그들의 욕망은 뒤틀린다. <바이브레이터>에서 여성의 욕망을 내밀하게 그려냈던 감독의 작품이라고는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빛과 어둠이란 공존하는 것이다. 상대가 없으면,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세 세이슈와 히로키 류이치가 어둠을 그리는 이유는, 그것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밝고 희망적인 세계의 이면에는 절망적이고 폭력뿐인 세계가 있다. 이면을 외면하면, 이 세상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가 없다. “퓨어(pure)한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 극단의 세계도 똑같은 퓨어다. 폭력을 사용해야만 사랑을 손에 넣을 수밖에 없는 것 역시 퓨어의 세계다. 내 마음속에선 같은 세계다. 인간은 어차피 양면을 가지고 있으며 그걸 교차해서 보여주는 게 재미있다. 인간에게는 또한 전쟁으로 사람을 죽여도 되는 세계가 있는 것 아닌가. 모순을 지닌 세계를 교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도 퓨어, 저기도 퓨어일 수 있다. 영화를 볼 때 ‘이것이 해답이다’라는 식으로 관객을 설득시키는 영화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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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키 류이치는 그들이 뒤틀린 사랑 혹은 섹스에 빠져드는 과정을 치밀하게 따라간다. 그들이 폭력에 침윤당하는 과정도 그대로 묘사한다. 폭력으로 사랑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분명히 여성에게 모욕적일 수 있지만, 세상에는 그런 사랑 역시 존재한다. 김기덕의 영화가 말해왔던 것처럼. 히로키 류이치 역시 그런 뒤틀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친상간, SM, 강간 등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관계성의 에로스를 그리고 싶었다. 숨기고 싶어 하는 욕망의 표출인 것이다. 여성이 성의 대상으로 그려진다며 비판들을 한다고? 왜 그러지? 어차피 영화이지 않나. 어차피 픽션의 세계다. 남녀가 행위를 통해서 뭔가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히로키 류이치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애초에 선과 악으로 규정된 세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서 만들어진 무엇은 선도, 악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바이브레이터>와 <도발적 관계: M>의 거리는 결코 멀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에 등을 맞댄 채 존재하는 것이다.

Posted by maken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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