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독창적인 판타지
판타지의 관건은 역시, 얼마나 그럴듯한 세계를 창조해내는가에 달려 있다. 굳이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를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적어도 그 순간만은 리얼리티라고 믿어야 한다. 절대반지를 버리기 위한 모험과 마법학교에서 배우는 마법들이 ‘진짜’라고 믿어지는 순간에, 독자는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세계가 정말로 그럴듯해야 한다. 그 세계의 구체적인 지도가 있고, 그 세계를 지탱하는 구성 원리와 철학과 신념이 있고, 기이하지만 논리적리고 신기한 세부들이 풍성하게 갖추어져야 한다. 그냥 오가잡탕을 끌어다 놓고, 무조건 마법만 쓴다고 해서 판타지가 아니다.
김이환의 <양말을 줍는 소년>은 판타지일 수도 있고, 환상 동화일 수도 있고, 일종의 우화 소설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아주 빠르게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양말 줍는 소년>은 판타지의 기본적인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고난이 주어지고, 운명에 의해 임무를 떠맡게 되고, 모험이 시작된다. 부모의 이혼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판타지에서 흔히 나오는 ‘갈등’의 시작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고뇌를 시작하고,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하는 동인인 것이다. 주인공은 당연히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런데 <양말 줍는 소년>은 좀 묘하다. 부모의 이혼이 아이에게 절박한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현재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는 부모보다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묵묵히 학교생활을 한다. 오히려 안달인 것은 부모 쪽이다.
그리고 난데없이 엄마에게서, 환상의 나라에서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이건 마치 현실의 이야기를 보는 것만 같다. 환상의 나라라는 것만 제외하면, 우리들의 이웃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양말 줍는 소년>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와 가상의 공간을 절묘하게 겹쳐놓는다. 크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처럼 두 개의 공간에 걸쳐 있는 사람에게는 두 개의 공간이 어떻게 다르고 비슷한가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던 두 개의 세계가 어떻게 닮아 있고, 결국 인간이란 존재에게 부여된 책임과 의무는 어디로 가던 마찬가지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판타지는, 꿈을 통한 현실의 치유라 할 수 있다. <양말 줍는 소년>의 현재는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운명적인 이유로 환상의 나라로 가서 그 사실을 배워야만 한다.
<양말 줍는 소년>은 아주 매혹적인 방식으로 치밀하게 환상의 나라를 묘사한다. 주워 온 양말로 장난감 병정을 만들고, 말을 하는 동물들이 동물원을 운영하고, 식물들이 자라 거대한 건물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의 기억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발전소가 있다. 세상의 중심에 있는 등대가 모든 마법을 관할하고, 사람들은 마법을 쓰는 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 저곳에 있는 세계는 환상의 나라만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 행복의 나라 등 7개로 나뉘어 있다. 그 나라들은 제각각 다르게 만들어져 있고, 사람들이 사는 법도 다르다. 김이환의 상상력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전혀 부족하지 않다. 환상의 나라에 대한 설명이 너무 유려해서, 모든 것을 더 알고 싶고, 더 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글만으로도 부족하여 더 많은 삽화를 보고 싶다.
지금까지 한국의 판타지는 서구와 일본의 판타지에 끼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세계를 만들어낼 것인가는, 서구와 일본에서 만들어낸 가상 세계의 모방이나 변형으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았다. 용과 마법, 검사와 엘프 등이 등장하는 판타지를 보는 것은 익숙하지만 어딘가 뒤틀린 구석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서구와 일본의 판타지를 받아들여도 얼마든지 독자적인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그건 결국 성취도의 문제다. 얼마큼의 경지에 올랐는가에 따라 그 작품의 가치와 재미가 결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는 결코 접을 수 없다. 익숙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험도 즐겁지만, 전혀 낯선 세계의 모든 것을 알아가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더욱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상상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상상력이라는 점에서 <양말 줍는 소년>은 확고한 성취를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다. <양말 줍는 소년>이 만들어낸 세계는 독창적일 뿐 아니라, 아주 튼튼하고 섬세하다. 이 세계만으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양말 줍는 소년>은 현재가 난데없이 환상의 나라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고,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어 커다란 임무를 맡게 되는 이야기다. 그 모든 것이, 기이하지만 우리의 세계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있는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진다. 그 이상한 세계를 만나는 것만으로 <양말 줍는 소년>은 가치가 있다. 또한 캐릭터의 개성도 돋보이고, 환상의 나라를 묘사하는 김이완 작가의 필력도 상당하다. 굳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새로운 세계의 창조는 훌륭하지만 그 세계에서의 모험이 더욱 역동적이고 진기한 모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가 매력적인 이유 하나는, 그들의 모험이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스펙터클하고 진기한 볼거리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양말 줍는 소년>은 그 세계 자체는 너무나 흥미롭지만, 현재의 모험은 다소 정적이고 관념적이다.
하지만 <양말 줍는 소년>은 이제 시작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이 세계를 더 보고 싶다. 등대가 만들어지면서 균열이 시작되는 이야기도 더 듣고 싶고, 현재가 더 이상한 모험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보고 싶다. 이 세계를 그냥 이것만으로 끝내기는 너무 아쉽다. 그만큼 <양말 줍는 소년>이 창조한 세계는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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