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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을 상실한 옴니버스 호러

<흑야>는 홍콩, 일본, 태국의 삼개국에서 모여 만든 옴니버스 호러물입니다. <쓰리> 시리즈와 비슷하죠. 단지 스펙면에서 심하게 떨어집니다. 양백견, 아키야마 타카히코, 타니트 지트나쿤은 모두 호러물의 경험이 별로 없죠. 경험이 없을뿐만 아니라 성의도 없습니다. <흑야>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상당히 무책임합니다. 튀는 에피소드가 하나도 없어요.

<흑야>의 세 에피소드들은 독립되어 있지만 두 가지 소재를 공유합니다. 그건 남자아이의 귀신과 물귀신이죠. 우연일 리는 없으니 아마 제작자 측에서 통일성을 갖추기 위해 감독들에게 요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홍콩이 무대인 첫 번째 이야기 <이웃 사람>에서 주인공 이첸(제인)은 잠시 대만에서 살다가 남자친구 조가 사는 아파트로 돌아옵니다. 거기서 그녀는 어린 남자아이의 귀신과 옆집에 산다는 수상쩍은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여자는 조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죠. 나중에 여자의 정체와 사연이 밝혀지고 세 사람은 모두 파국적인 결말을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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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는 그냥 긴머리 귀신 이야기입니다. 내용부터 반전까지 그냥 평범해요. 그 평범한 이야기가 어떻게 버무려졌느냐가 관건인데, 이 역시 그냥 그렇습니다. 아파트에서 기어 오르는 남자아이의 귀신처럼 효과 좋은 깜짝쇼 장면도 있어요. 하지만 분위기가 지나치게 신경질적이고 세 주인공 모두 짜증이 팍팍 나는 인물들이라 몰입하기 어렵습니다. 후반부에서는 실없는 웃음이 픽픽 나올 지경이고요.

일본이 무대인 <어둠>은 상상 속 애완동물이 소재입니다. 주인공 유키는 어린 시절 휴라는 상상 속 애완동물을 길렀는데, 이 애완동물이 나중에 유키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인다는 거죠. 물론 그 동물은 진짜일 수도 있고 정신병을 앓는 유키의 또다른 인격일 수도 있습니다.

아주 새롭지는 않아도 꽤 재미있는 설정입니다. 창고 바닥에 고인 얕은 물구덩이 속에서 기어나와 사람들을 사냥하는 괴물을 상상해보세요. 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그런 설정을 살리기엔 스토리텔링의 힘이 떨어집니다. 이야기가 전혀 정리되어 있지 않은데, 중간중간에 의무 방어를 위해 등장하는 귀신들 때문에 더 산만하거든요. 후반부에 잠시 나오는 특수효과도 비디오 영화 수준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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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이 무대인 <기억>은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 주인공이 사라진 기억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는다는 이야기인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러는 동안 계속 귀신과 마주칩니다. 그 귀신을 따라가다보면 자기가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던 죄의식이 기다리고 있고요. 네, 반전도 있습니다.

몇몇 효과적인 귀신 장면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영화도 앞의 작품들과 거의 같은 핸디캡을 안고 있습니다. 각본이 나빠요. 과거와 현재, 기억과 현실이 마구 뒤섞이는 까다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인데, 이야기가 이렇게 서투르면 관객들은 몰입하기 어렵죠. 서툰 게 꼭 각본뿐만은 아니지만요.

<흑야>는 한동안 유행했던 아시아 호러 영화들의 클리셰를 종합해 성의없이 엮은 듯한 작품입니다. 암만 생각해도 좋은 영화는 아니고 건질 것도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00년대에 나온 모든 아시아 호러 영화들을 봐야 속이 풀리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면 꼭 이 영화를 봐야 할 필요는 없어요. (08/02/28)

기타등등

세 편 모두 태국어로 더빙된 것 같더군요.

Posted by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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